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한 Jan 14. 2023

인생은 코미디, 근데 블랙을 가미한

다시 백수 취준생을 준비하는 인턴

누군가 요즘 내가 사는 게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잔잔한데 스펙터클하고 그래서 좀 울고 싶기도 한데 재밌을 때도 많다고 대답하고 싶다.(물론 그렇게 물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란 걸 잘 안다.)

2주 전부터 다니게 된 회사 업무의 특성상, 연구직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별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보니 내가 하는 말이 주로 출근과 동시에 "안녕하십니까" 밖에 없다. 퇴근은 각자 알아서 하는 분위기이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시간 늦게 하기 때문에 따로 퇴근 인사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이렇게 고요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며 곧 내 인생 또한 조용하게 서서히 안정감에 젖어들거란 기대를 했었다. 월급이 많은 편은 '절대' 아니지만 정규직으로 고용되고 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연차를 쓸 수도 있을거고, 연차를 쓰면 금요일에 쓸까, 월요일에 쓸까, 그것도 아니면 수요일에 연차를 써서 이틀 근무하고 하루 쉬고 또 이틀을 근무하는 주를 만들어볼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근데 전부 다 쓸모없는 일이 되었다.

근무시간 30분 전에 출근을 해서 컴퓨터를 켜고 막 자리에 앉는데 대표님께서 좀 있다가 전체 회의를 하자고 하셨다. 전체라고 해봐야 5명이 전부인 회사에서 전체 회의를 하자는 건 저번처럼 티타임을 갖자는 뜻인가 싶기도 했지만 저번처럼 카드를 주시며 커피를 사오라고 하시진 않으셨다. 뭔가 고민하는 듯 이마를 벅벅 긁어대는 대표님을 보면서 나 말고도 다른 직원들도 쎄함을 느꼈을 것이다. 전체 회의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회사가 올해 새롭게 진행하고자 하는 사업이 잘 돌아가지 않게 되었고, 원래는 그 사업에서 내 인건비가 나와야 하는 거라고 하셨다.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으셨지만 내가 또 나가게 되거나 정규직이 되지도 못하고 짤릴 수도 있다는 뜻이라는 걸 캐치해냈다. 어떻게든 그 전에 내가 선수를 쳐야했다. 회사를 나가던지, 아니면 지금 이 회사에 나의 쓸모있음을 증명하던지. 일단 후자를 한다고 한들, 나에게 줄 돈이 없는 회사에서 충성심을 발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나는 당장 하고 있는 업무를 때려치고 구직 사이트를 열고 싶었는데,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암담하기만 했다.


이 모든 사정을 부모님껜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이번 명절 연휴도 꼼짝없이 자소서를 쓰고 있을 모습이 그려져서 갑갑했다. 솔직히 말해서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만 나이로 계산을 해도 나이 앞자리가 3이 되자 딱 그만큼 자신감이 없어졌고 2년의 공백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지금 근로계약서도 주지 않고 나를 부려먹는 회사에서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취준 기간 철칙 중 하나는 부모님 앞에서 울거나 기죽는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긴 적이 몇 번 있기 하지만 대부분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었다. 전체회의를 마친 날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 위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금요일인데 기분 좀 내자며 치킨을 시켰다. 오늘 회사는 어땠냐는 부모님의 물음에 씹고 있던 닭이 목에 걸릴 뻔 했지만, 그냥 어제처럼 아무 말 안하고 일만 했다고 둘러댔다. 곧 짤릴 수도 있겠단 말을 들었다거나 취준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단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야 좀 안정감을 찾아가는 나를 보며 안심하는 부모님 앞에서 차마 회사에서 나한테 줄 돈이 없어서 짤릴 수도 있을 것 같단 말은 하지 못했다.



치킨을 쉬엄쉬엄 남김없이 다 먹고 배가 빵빵해져서야 구직 사이트 생각이 났다. 확실히 작년보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의 개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연봉 수준도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과 비슷한 수준인 일자리가 전부였다. 하지만 여기저기 넣어도 모자랄 판에 가리거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고민해서 회사 두 곳에 지원을 했고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어젯밤을 하얗게 불태웠으니 나는 불금을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잘 풀려가나 싶던 인생에 갑자기 돌덩이가 투척될 때, 내 잘못이 아닌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환경 변화로 인해 힘들어질 때 예전처럼 주저 앉아서 자책하기 보다는,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더니 어제의 내가 꼭 그랬다. 치킨은 맛있었고 거의 한 달만에 쓰는 입사지원서는 짜증이 나다가도 요리조리 수정해서 제출할 땐 재밌기도 했다.

그래, 인생은 뭐 하나 내뜻대로 되는 게 없고 쉬운 것도 없지만 받아들일 일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법이다. 작년 초의 나보다 한 뼘 성장한 지금의 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저녁 드라마를 보니 원래 주인공은 별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뺨을 맞기도 하고 물도 뒤집어 쓰고, 거저 주는 돈봉투도 거절하며 집에 와선 펑펑 울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지만, 결국 끝끝내는 잘먹고 잘살게 되더라. 내 인생 시나리오 또한 그럴 거라고 믿어야겠다. 그러니 나는 주인공으로써 좀 더 유쾌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야지. 인생은 코미디, 근데 약간은 씁쓸한 블랙을 가미한 거.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성취로 내일을 살아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