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두세 번 정도, 나는 스스로에게 향수를 선물하곤 한다. 그리고 내 가방 안엔 늘 조그만 향수가 한두 개씩 들어있다. 기분이나 자리에 따라 맞게 뿌리고 다니곤 하는데, 가끔 누가 어떤 향수를 쓰냐고 물어볼 때마다 과한 친절으로 알려주곤 한다. 이건 **사에서 나온 **라는 제품인데 첫 향은 이렇고, 시간이 지나면 이런 향이 되고 마지막에 남는 향은 이러이러한데 지금은 뿌린지 몇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이러이러한 향이 나는 거라고. 그리고 덧붙여서 상대방에게는 어떠한 향수가 어울릴 것 같다는 쓸데없는 조언까지 할 때도 있다.
향수를 고를 때 당연히 먼저 시향을 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인지, 기존에 가지고 있는 향수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비교해보면서 꼼꼼하게 고르는 편이다. 최근에 알게 된 향수 중에서 굉장히 자연에 가까운 향이 난다고 생각했던 브랜드가 있었고, 그 매장을 찾아서 직원 분과 한참 얘기를 나누던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브랜드는 자연의 향을 구현하기 위해서 컴퓨터로 향을 분석해서 아주 정밀하게 조향하고 있다는 것. 로봇이 튀긴 치킨에서 예전에 아빠가 사다 주셨던 시장통닭 맛이 정확하게 난다고 하면 이런 느낌일까. 여튼 그날은 시향만 쭉 해보다가 몇몇 제품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나와 어울린다거나 확 끌리는 제품은 없어서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예전에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꽤 비싼 향수만을 고집하는 몇몇 분들이 계셨다. 어느 날은 그분들과 향수 얘기를 하다가 내가 이런저런 제품에 대해 정보를 많이 갖고 있다는 부분에서 굉장히 신기해하시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리고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쓰는 제품이 거의 10만 원대 미만의 싸구려(?) 코롱 제품이라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셨다. 하나를 사도 비싼 걸 써라, 자고로 향수는 향이 오래 가는 퍼퓸 종류를 사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시며 코롱 제품은 화장실 방향제 같다는 평가도 해주셨다. 여태까지 향수 뭐 쓰냐고 물었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내 앞에는 고급 브랜드 향수를 고집하는 두 사람이 남아있었다. 물론 그분들이 쓰는 향수의 향은 훌륭했다. 한 분은 남들에게 자신이 어떤 향수를 쓰는지 절대 가르쳐주지 않고 싶다며 늘 공병에다가 향수를 덜어서 사용하셨는데, 공병의 잔향에서 열대우림 느낌이 나서 어떤 제품인지 단박에 알아맞혔다. 그 뒤로 그분은 다른 제품을 섞어 써가며 열심히 향수 레이어드를 시도하셨는데 그분의 이미지와는 매칭되지 않는 아빠 스킨 향을 풍길 때마다 약간은 안타까웠다. 강렬한 향보다는 중성적인 이미지의 향이 어울릴 것 같아서 시향해 본 향수 중에서 한 개를 추천해 드렸는데 10만 원 대여서 싫다고 하셨다. 두세 개를 사면 3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데 몇 개를 더 추천해드릴 걸 그랬나보다.
최근에 취업을 하게 되면서 지인분께 향수 미니어처 키트를 선물 받았다. 향수라기보다는 코롱에 가까운 제품으로 지속력이 퍼퓸만큼 오래 가지는 않지만 샤워하고 나서 산뜻하게 뿌릴 수 있는 제품들이 많았고 조금 더 큰 용량은 10만 원 미만대로 가격도 착한 편이었다. 8개의 향수 중에서 제법 마음에 드는 향이 많아 만족스러웠고 그 중에서 하나는 큰 용량으로 구매해서 향수처럼 사용하고 있었는데, 네 살 난 친척 동생이 누나한테서 ‘꽃사탕 냄새’가 난다며 좋아해줬다.
앞으로도 고급 향수를 살 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하얀 장갑을 낀 직원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향지에 아낌없이 향수를 뿌린 다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는 고급 매장도 좋지만, 로드샵이나 백화점 향수 편집 매대를 기웃거리며 다양한 향들을 모으는 게 아직까지는 더 재밌으니까. 꽃사탕 냄새가 좋다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내 취향을 존중해주는 꼬마 시인에게 감탄하게 된다. 다음 번에 만날 땐 다른 걸 뿌리고 갈 생각인데 그땐 또 어떤 향이 난다고 해줄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