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로잉 May 29. 2024

계획 없이 엄마가 되었다

30대 직장인에게 임신이 미치는 파장에 대하여


인생 첫 회사 생활은 6개월만에 끝을 냈다. 두 번째인 지금 회사에서 일한지 11년하고도 6개월 째다. 

사이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모두 퇴사를 했고 나는 공채 13기 최후의 1인이 됐다.


아무튼 올해 나는 차장 승진을 앞두고 있다. 

6월부턴 지주사에서 메인 계열사 브랜드팀으로 소속을 옮겨 더 열정적인 조직장 아래 많은 프로젝트를 꾸려나가야 한다지난달엔 팀장이 되었고 신규팀이라 이제 조직 기반도 꾸려야 한다. 어찌보면 서른 일곱살의 여자 직장인 치고 순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뭐, 인생은 멀리 보면 희극이라지 않던가. 


안정적으로 보이는 표면적 상황과 달리, 사실 퇴근 후의 나는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즐겁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주말에 이력서도 업데이트해두었더랬다. 반면 근무시간에는 맡게 될 어려운 업무들과 함께할 조직을 꾸려나가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복잡한 나날들이었다. 당연하게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동료들은 내게 더 좋은 기회가 왔다며 축하해주었지만, 나는 혼자만 느끼는 격차에서 조금씩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내게 얼마 전 차원이 다른 고민이 찾아와버렸다.

갑작스럽고도 강력하게 등장해버린 나의 임신 이슈. 이 녀석은 그간의 모든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민의 판도를 깡그리 뒤집어놓았다. 나에게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라니...!



임테기의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한 순간,

헛웃음과 당황스러움이 내 감정을 지배하던 순간의 기억이

책갈피처럼 뇌리 속에 남아있다.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한 남편과 나이지만 우리 부부가 100% 딩크 선언을 하지 않았던 건 마음 한켠에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은 어떤 모습과 성격일까?'

그러나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에 비해 그 궁금함은 한없이도 가벼운 알기에 우리 부부는 3년의 결혼생활 동안 아이에 대한 계획이나 준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아왔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지난달 산책길에 남편에게 건넸던 나의 말이 너무도 무색해졌다. 

"이젠 아이를 안 갖겠다는 마음이 더 확실해진 것 같아."

그 말을 하던 순간조차 내 뱃속엔 이미 생명이 자리잡고 있었다는게 당황스러웠다. 

방심해버린 나의 선택과 세상의 뜻이 만들어낸 환상의 콜라보였지만, 머릿 속은 환장할 지경이다.  

내 차장 승진은? 팀장 직책은? 내 커리어는? 내 개인 시간은? 경제적 문제는?


문득 되지도 않은 상상력을 발휘해본다. 

"부문장님, 드디어 함께 일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전 임신을 했답니다? 

연말에 육아휴직을 들어가야 하니 1년 반 뒤에 뵙겠습니다."

"우리 회사에 온 걸 환영해요. 하지만 난 몇개월 뒤 육아휴직에 들어가야 하니

팀원들에게 내 뒤를 잘 부탁할게요!" 


헛웃음 나는 상상이지만 이건 닥쳐올 현실이었다. 

'XXX는 팀장 되자마자 임신했데'라며 구설수에 오르내릴 것도 걱정되었다. 발령과 임신이 한달도 차이나지 않는 이 원망스러운 타이밍이 억울하다. 나도 발령 후 알게 된건데.. 연말에 휴직을 하면 차장 승진은 물건너가고 팀장직이 해제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자명하다. 1년간 팀장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주는 회사가 어디 있을까. 


계획에 없었더라도 한 생명의 방문은 고결하고 소중한 일이다. 이 축복과 같은 일을 온전히 기쁨으로 맞이하지 못한다 생각하니 엄마로서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인생은 정말이지 내 맘대로 되지 않는구나...

앞으로의 직장 계획과 관련해 주위에 물어볼만한 지인들을 통해 보았지만 육아휴직에 대한 내 고민을 해결하진 못했다. 브런치 스토리도 뒤져보았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 있던 직장 선배들도 있을거야···.

더 치열하고 고민스러운 애환들이 있을거야···.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보았지만 아쉽게도 육아휴직한 아빠들의 이야기가 더 많았고, 직장인으로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어떻게 겪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글은 많지 않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내가 정작 궁금한 것들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청첩장은 어디까지 돌려야 하는지, 예비시댁에 어떤 선물을 들고 찾아가야 하는지 등 말이다. 임신과 육아도 비슷할 것 같다. 정보들은 유튜브에 많은데 사소하고 하찮지만 고민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 어렵다. 언제쯤 임밍아웃을 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육아휴직 희망 기간을 밝혀야 하는지, 육휴예정자로서 슬슬 업무에 배제되기 시작하면 욕심 많은 이걸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면 되는 것인지 등등 사소한 물음표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래, 없다면 내가 경험하고 공유해봐야겠다. 

추후에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겠지..!





                                                           에필로그의 시작 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