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알고 행복한 가을이 또 한번 올까?
가을 하면 생각나는 사진이 있다. 대학생 새내기 시절 엄마랑 한국학중앙연구소로 단풍 구경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분홍색 투피스를 입고 단발 머리를 한 내가 웃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1:1 비율로 찍힌 그 사진은 오랫동안 내 카톡 프로필을 장식했다.
한국학중앙연구소는 평일에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라 이후에는 한 번도 시기를 맞춰서 방문하지 못했다. ‘진짜 예전에 분당에서 단풍 사진 찍은 곳’ 을 엄마에게 물었더니 단번에 “너 니트 입고 사진 찍은 곳?” 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우리는 거의 매년 단풍 구경을 가는데, 엄마에게도 그 기억은 꽤 선명하게 나나 보다.
왜 가을 하면 그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가장 걱정이 없을 때라서가 아닐까 싶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소극적인 성격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나는 친구에게 나름 전전긍긍하는 편이었는데, 소통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그런 경향이 사라졌다.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 는 압박이 항상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는 안 맞는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으니, 내가 생긴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걱정이 없었고, 너처럼 걱정이 없는 게 부럽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취업 걱정이 시작되던 시기에 엄마의 수술이 잡혔다. 암인지 아닌지 수술 전에는 모르는데, 만약 암이면 5년 생존율이 매우 낮단다. 기적적으로 암이 다른 질병이라 수술 후 엄마는 회복기에 들어갔으나 내 불면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상담에서는 트라우마 증상이라고 했다. 과하게 예민해진 성격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안정되었지만 성격의 결이 달라졌다. 과거의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막연히 세상이 아름다운 줄 알던 나는 세상의 불합리한 부분, 안타까운 부분 같은 부정적인 면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그리고 여러 경험과 우울 극복 과정을 통해 나를 알아가면서 나름의 가치관이 생기게 되었다. 엄마의 병은 회복되었으나 행복해지기보단 갈등이 더 많아졌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의 가치관은 변화하며 형성되는데, 엄마의 가치관은 옛날 그대로다. 나도 아쉬움을 느끼는데, 엄마가 그때가 더 행복했다고 말할 때는 슬프다.
지금 그해 가을 사진을 생각하면, 라라랜드에서 여자 주인공이 재즈바에서 남자 주인공을 마주쳐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호평이 자자했던 영화의 이 장면을 나는 정말 싫어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과거의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졌으면서 함께 있음을 가정하는 모습이 싫어서. 하지만 나의 행복했던 가을 풍경을 회상하는 지금, 찬란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제 다시 가을이다. 순진하고 행복했던 가을은 그해에 영원히 머무르겠지만, 새롭고 안정된 내 모습으로 또 한번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만들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