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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Jun 23. 2024

관계의 기준

고민의 여부

' 나는 한참 멀었구나. 아직도 이런 일로 고민을 하다니. ' 하던 일을 멈추고 문득 든 생각이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이웃에 대한 나의 태도는 이제 확실히 최적화되었다고 생각했다. 인사를 할 사이, 인사만 하는 사이, 인사도 안 하는 사이, 인사도 하는 사이. 이렇게 네 가지 카테고리를 두면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인사도 하는 사이와 인사만 하는 사이는 가끔씩 칼로 딱 자르기가 모호할 때가 있다. 결국 그 어딘가에 확실하게 던져놓을 수 있기에는 은근히 변수가 있다. 아니, 내가 변수로 보고 상대방을 허용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럴 때는 내 선 긋는 기준이 아직 물러서 분명하지 못함을 깨닫는다. 그냥 딱 부러지고 군더더기 없이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어 시간의 커피타임으로도 충분하다.


최근 나는 인사도 하는 사이와 인사만 하는 사이의 경계에 있는 이웃에 대하여 폴더의 위치를 재조정했다. 인사도 하는 사이에서 추방령을 내린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도 오며 가며 볼 사이기 때문에 내게는 합당한 것이었다. 이렇게 고민을 할 사이는 애초에 내 안쪽 폴더에 넣을 필요가 없다. 화살의 과녁처럼, 동심원 바깥 어딘가에 두면 되는 것이다. 그 과녁 역시 매우 좁고 깊다. 고민이 필요 없는 사이들에게 집중하고 고민이 되는 사이는 추방한다. 그걸 상대방이 알 턱이 있나. 그냥 그 테두리 안에서 나는 평온하다. 예전에는 내 마음을 야생의 사파리, 세렝게티 초원으로 둬야 원만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올시다. 내 마음의 정원에는 초대받은 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 야생은 안녕, 하이에나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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