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수 Aug 20. 2016

흐레호리 판 데르 빌: 10명 중 한 명

2010 월드컵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던 그가 전하는 이야기

나는 그 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 2010 월드컵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필드 위에 들어가자 수많은 카메라와 핸드폰 플래시가 터져 완전히 넋이 나간 경험을 기억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기장에는 84,000명이 있었다. 밤 하늘을 봤는데 84,000개의 플래시가 한 번에 터지는 광경을 상상해 보아라. 꿈만 같다.

터널에서 걸어 나올 때 작은 여자아이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모든 경기 전에는 아주 운이 좋은 아이들이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기회를 얻는다. 그 여자아이는 전혀 떨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긴장을 너무 한 나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을 거다, 이 사람은 왜 내 손을 이렇게 꽉 잡지?

일곱 살 정도 되는 이 아이들은 전 세계에서 왔다. 경기장에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공을 차고 월드컵 결승전에 뛰는 걸 꿈꾸는지. 하루는 검색을 통해 전 세계에 약 20억 명의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최소한 10억 명은 되겠지? 나는 월드컵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는 22명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좋았을까? 아직도 그 기분은 나를 압도한다.


사진: AP IMAGES


나는 쉽게 제어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엄마가 나에게 “Ajax Talent Week” 신청서를 주자 당시 일곱 살이었던 나는 온 집안을 뛰어다녔는데, 아마도 소파 위를 점프하고 다녔을 거다. 엄마는 단순히 내가 집을 벗어나 넘쳐나는 에너지를 방출하길 바랐다.


네덜란드의 톱 축구 클럽인 아약스는 매년 유스팀 트라이 아웃(“tryout”)을 진행한다. 사실은 그냥 오디션 같은데, 1,000명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아주, 아주 작은 확률로 선택될 기회를 위해 나타난다.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다. 그 시간 동안 뛰고, 드리블하고, 오렌지색 콘 위를 뛰어다니며 눈에 띄기를 바라야 한다. 즐기기 위해 트라이 아웃에 갔던 나는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그리고 그다음 라운드에 진출했고, 그다음 라운드의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결국 나는 아약스 아카데미에 합격한 15명 중 한 명이 됐다. 나의 부모님은 큰 스포츠 팬이 아니다. 내 생각에 엄마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이제야 축구에 대한 열정이 생기고 있는 미국 독자들에게 유스 아카데미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 주겠다. 모든 톱 클럽들(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아직 면도도 안 한 아이들을 팀에 모집한다. 그 팀들은 선택받은 아이들이 팀의 시스템에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 라 마시아라는 전설적인 아카데미를 가지고 있는 바르셀로나를 한 번 봐라. 스타팅 일레븐 중 절반 가까이 되는 선수들이 라 마시아를 거쳐갔다 — 샤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피케, 그리고 메시.

아약스 아카데미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카데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어렵고, 특히 나 같은 아이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학교가 반쯤 끝나면 차 한 대가 나를 아카데미로 데려갔다. 꾸준히 연습을 해야 했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해야 했다. 첫 번째로는 몸을 더 강하게 키웠다. 그리고 공을 이용해 테크닉을 키웠다(드리블에 가장 큰 포커스를 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술이었다. 아약스의 유명한 시스템(4-3-3)이 주입되었다. 일곱 살이나 여덟 살이어도 이 복잡한 철학을 매일 배운다.



하지만 사실이 하나 있다: 아카데미에 합격해도 꿈의 10% 밖에 이루지 못한 것이다.

고통받는 삶이다. 매년 평가를 받는다. 트레이너와 코치들은 아이들을 따로따로 만나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매년 몇몇 아이들이 방출된다. 눈이 빠지도록 우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꿈이 끝나는 거니까. 아약스는 모든 경기에서 이기기를 원한다. 두 번째로 최고인 아이들은 원치 않는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정말 힘들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뛰어야 된다. 코치들은 라커룸에서 소리치고, 압박을 견뎌내지 못해 무너지는 아이들이 항상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최고의 선수였던 적이 없었다. 항상 생존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사춘기가 왔다. 13살이 됐을 때 반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의 비판도 납득하지 않았고, 코치들에게 말대꾸하기 시작했다. 나는 터프한 사람처럼 행동했고, 나를 아카데미에서 방출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방출했다. 아마도 내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아약스는 네덜란드 최고의 클럽일 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유일한 프로페셔널 클럽이다. 따라서 방출당한 아이들 중 대부분은 꿈을 접고 파티를 하러 다니거나 수업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나에게는 축구가 전부였다.

축구가 하고 싶었던 나는 자부심을 포기하고 하를렘이라는 작은 클럽에서 뛰기 시작했다 (하를렘은 암스테르담과 버스로 한 시간 거리였다). 하를렘은 훨씬 더 가난했고 — 사실 파산이 돼서 이제는 없다 — 덜 경쟁적이었다. 또, 더 자유롭고 재밌었다. 훈련이 끝나고 목이 마를 때에는 베테랑들이 주는 레몬에이드를 마실 수 있었다.

아, 차가운 레몬에이드만큼 좋은 게 어딨을까?

똑똑한 애들은 물병의 온도를 이용해 내용물이 뭔지 판단했다. 노란색이었지만 절대로 레몬에이드는 아니었다. 

유치한 장난. 클래식하다.


사진: AP IMAGES


하를렘에서 뛰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나는 다시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매일 나가서 동료들과 웃는 걸 사랑했다. 당시 나에게 필요한 게 그거였다. 엄격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소리치는 걸 듣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더 성숙해져야만 그런 환경에서 뛸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태도도 훨씬 더 좋아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아약스는 다시 나를 원했다. 아약스의 최대 라이벌인 페예노르트도 나를 원했는데, 그들은 아약스가 제시하지 않은 프로 계약까지 제시했다.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아약스는 잊어. 그들은 나를 방출했고, 나는 그곳에 안 갈꺼야.” 하지만 나는 알았다. 아약스가 나의 클럽이라는 것을. 나는 집에 돌아가기로 선택했다.

17살에 아카데미로 돌아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주장으로 임명될 정도였으니까. 2년 후에는 성인 팀에 포함됐다. 나는 수비수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엄마는 아직도 내가 뛰어다니길 좋아하는 어린 애라고 말한다), 아약스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의 일원이 되어 2010 월드컵 결승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나와 함께 아약스에 들어간 아이들 중 나를 포함해 오직 세 명만이 프로 레벨에 진출했다. 트라이 아웃에 나타난 1,000명 중 오직 세 명이. 나는 최고였던 적이 없다. 어떤 때도. 나보다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지만 결국은 내가 됐다. 지난 5년은 환상적이었다. 두 번의 네덜란드 리그 타이틀과 세 번의 프랑스 리그 타이틀. 10년까지만 해도 하를렘 소속으로 3,000명 앞에서 경기했고, 내가 최고의 선수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 했다. 그러나 이제는 PSG와 함께 세계적인 레벨에서 뛴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은 아직도 신기하다. 이 꿈만 같은 기분이 언제 끝날까?

아이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물어본다: “어떻게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어요?” 나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일 훈련하라고 말해야 하나? 빨리 달리고 키피-어피(“keepy-uppy”)를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수는 몇 만 명이 된다. 코치들의 말을 항상 들으라고 말해야 하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은 즐기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 그 비밀이 점점 잊히고 있다. 이제는 너무 많은 부모와 코치들이 아이들에게 프로처럼 뛰라고 요구한다. 여덟, 아홉, 열 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내 진정한 조언은 축구가 재밌어야 하는 거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동료들의 물병에 오줌 싸지 마라. 그건 약하다. PSG에서 하는 것처럼 인터넷에서 수치스러운 사진을 찾고 라커에 붙여라. 즐라탄은 제외하고. 인터넷에 즐라탄의 수치스러운 사진 같은 건 없다.

원본: http://www.theplayerstribune.com/gregory-van-der-wiel-netherlands-world-cup/

매거진의 이전글 펠레: 어린 나에게 보내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