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듣게 되는 질문이다. 설명을 듣다가 문제를 풀다가 느닷없는 얼굴로 무심하게 물어온다. 옆친구의 "야 몰라서 물어? 공부 못해서 온 거잖아." 서로의 같은 처지를 장난으로 웃어넘기는 아이들이지만내 마음은 먹먹해진다. 글쎄 뭐라고 해줘야 할까? 사실 가장 확실한 답은 하나다. 공부 열심히 해서 시험 잘 보면 돼. 그러나 차마 이 말을 내뱉을 순 없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알맞은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초학력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전년도 학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들이다. 새 학년이 되면 학기 초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향상도평가시험을 치르는데 기준점수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이 오게 되는 것이다. 비교적 쉬운 문제들이지만 한번 구멍이 뚫린 아이들은 좀처럼 구멍을 메꾸기가 쉽지 않아 악순환의 고리 속에 속절없이 빠져들고스스로 빠져나오기는 갓쪄낸 호빵을 크게 한입 베어무는 것만큼이나 쉽지가 않다.
공부를 못하는 나의 아이들.
공부를 안하는 나의 아이들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나의 아이들.
언제였을까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때는. 그 순간 알았더라면 누군가 알아채고 아이를 불러 다시 끼워주었더라면, 그랬다면 "야 너 단추 잘못 끼웠어"라는 비난과 창피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어른이 되면서 부모가 되면서 우리는 더욱 정의를 부르짖는다. 아동학대, 아동성폭력과 같은 아이들의 문제에 나의 일처럼 마음아파하고 입시비리, 취업청탁같은 사회부조리에 함께 분노하며 사회적 약자에 눈길을 건네고 환경문제에 공감한다. 나의 일이 아니라는 무관심과 귀찮은 마음에 외면하지 않는 것.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한데 마음을 모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지 고민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그래도 살만해지고 있다는 위로를 찾아가는 셈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직까진 내가 겪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겪을 수도 있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혹여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직결되는 일이라면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처사이자 세상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가능성이 아니라 과거 혹은 현재에 이미일어난 일로 크고 작은 어려움을겪고 있는아이들이 분명히존재한다. 사회적, 구조적 이유일수도 있고 가정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아이 개개인의 문제일수도 있다. 너무나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고 술래잡기라도 하듯 곳곳에꼭꼭 숨어있어 그들을 다 찾아내기란 쉽지 않으며 다 품어줄 수도 없다.
그저 길을 걷다 우연히 단추를 잘못 끼운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면 외면하지 말고 슬쩍 다가가 다정한 미소와 친절한 손길로 단추를 다시 푸르고 첫단추를 잘 끼워주면 된다. 첫단추만 제대로 시작했다면 다음 단추부턴아이의 몫, 아마도 아이 스스로 차근차근 끼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