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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Dec 07. 2024

나의 공주님 나의 왕자님

벌칙과 사랑은 같은 거래요

공주님~ 문제 다 풀었어? 이번엔 집중해서 풀어야 돼!

왕자님~ 어째서 3×8이 22가 됐을까? 다시 풀어보자.


우리 반 아이들이 공주님, 왕자님으로 신분상승하는 순간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에 덜컥 콩깍지가 씌어 이뻐 이쩔줄을 모르겠어서는 분명 아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곳곳에서 불리우는 그들의 애칭은 다름아닌 벌칙이다.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려보면 틀리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 하나는 정말 몰라서다. 배운 지 얼마 안되었거나 어려운 개념이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 약간의 응용이 가미되었거나 주관식인 경우가 이에 속한다. 몰라도 당당빤스를 외칠수 있는 경우다. 이럴 땐 혼을 내거나 핀잔을 주는 건 금물. 고객이 OK를 외칠 때까지 무제한 무상AS가 제공된다. 친절한 태도에 미소장착 또한 필수다. 


안타깝게도 기초학력반 아이들에게는 자신은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모드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저 공부 못해요가 정체성으로 확립된 아이들. 나는 아이들에게 말해준다. 너희는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며 모르는 건 결코 잘못이 아니라고. 잘 모르니 알려달라 당당하게 말하라고.


문제는 두번째, 뻔한 실수를 계속 반복하거나 당연히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를 하기 싫어 무조건 모른다고 하는 경우, 같은  유형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틀리는 경우이다.

선생님 진짜 몰라요.

처음 보는 거에요. 안 배웠어요

어디 보자 요것들. 뉘 앞에서 뻥튀기더냐. 빛보다 빠른 나의 레이더망에 걸렸군. 이 순간 그들은 나에게로 와서 공주님, 왕자님이 되신다.


자 공주님/왕자님 문제 당첨되셨습니다. 선포와 함께 시작되는 벌칙타임. 스스로 문제해결을 하면 끝나는 잠깐의 벌칙타임이지만 근데 왜일까 아이들의 눈치가 싫지만은 않아 보이는 것은. 입으로는 하지 말라 하면서도 반달눈동자에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가며 이리저리 나를 불러 세운다. (아 맞다 이 순간에도 손톱먹은 쥐가 필요하겠군. 저의 또 다른 글- 손톱을  어버린 쥐- 을 참고해주세용).


인어공주, 백설공주, 엄지공주의 개성이 다 다르듯 아이들마다 해결의 방식도 다 다르게 제공해줘야 한다. 실수가 많은 아이들에겐 꼼꼼함이 필요하기에 적은 양의 문제를 다 맞히는데 초점을 두고 칭찬해 주며, 문제풀이를 귀찮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단축하게끔 격려해 준다. 매번의 기록을 정리해 눈으로 보이는 그래프로 제공해 주면 올림픽에라도 참가한 선수들마냥 기록단축에 여념이 없다. 그들에겐 벌칙마저 사랑이 되는 마법의 순간이다. 공주님 이거 아는 문제 맞지? 나의 추궁에 헤헤 웃으며 금세 자백하는 아이들. 백 마디 야단보다 만배 효과적이다.




수업할 때 내가 신경쓰는 부분은 수업규칙은 아이들과 함께 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타협할 수 없는 대원칙도 있다. 우리반의 경우는 거짓말하지 않기와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기. 그 외에 풀어야 할 문제의 양이나 난이도, 국어같은 경우는 읽고 싶은 독해지문까지 아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받아들여주려 애쓴다. 자신이 정했기에 책임지려 노력할 수 있고 끝냈을 때의 뿌듯함도 아이의 마음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가리라는 믿음.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벌칙을 스스로 정해야 억울함없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당당하게 인정하지 않을까? 벌칙은 아이들을 혼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한 내 사랑의 또다른 방식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반의 절대원칙 "거짓말하지 않기"에 예외적인 순간이 하나 있음을 수줍게 고백할게요.


선생님 몇살이에요?

글쎄, 몇살처럼 보여?

30살이요

어머 어떻게 알았지? 대단한데~ 딩동댕동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던 시기이니 양해부탁드릴게요.

저 그 정도로 뻔뻔한 사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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