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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Nov 30. 2024

나는 너의 스(몰)토커

선생님귀는 당나귀귀

"선생님~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요"

"어제도 우리 엄마 아빠 또 싸웠어요. 짱나요"

"어제 할머니집 가서 김장했어요"

"이번 연휴 때 미국여행 가기로 했어요. 엄청 비싸대요. 백만 원 정도 든대요"

"목요일 제 생일이에요. 아빠가 자전거 사준대요"

"어제 친구네 집에 가서 놀았거든요, 동영상 찍었는데 선생님 한번 봐보세요"


교실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눈은 반짝거리고 참아왔던 말들을 폭포수마냥 털어놓는다.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속상하면 속상한대로 말갛게 드러내는 아이들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본다. 아이들이 하는 말에는 많은 것들이 뒤섞여있다. 진실과 거짓, 허세와 과장, 불안과 투, 픔과 기쁨, 공포와 무기력까지. 처음부터 모든 알아챌 수는 없다. 곁을 내어줄 때까지 천천히 아이들의 마음에 스며들어야 한다.


핀터레스트


첫 수업시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아이들과의 첫 대면. 서로 간의 탐색이 시작된다. 사실 아이들은 나에게 별반 관심을 주지 않는다. 또 공부해야 되네. 데면데면한 얼굴들. 과유불급이라 했으니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고 부족한 학습영역을 파악하기 위한 테스트 등으로 가볍게 끝을 낸다.


두 번째 시간부터 본격적인 설문조사 시작이다. 한때 유행했던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사실 이런 질문은 필요 없다(해서도 안되지만). "오늘 아침 맛있게 먹고 왔어?" 질문 하나면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이 된다. 아이들은 경계심없이 기상시간부터 메뉴의 종류, 좋아하는 음식에 등교방법까지 알아서 술술 대답이 길다. 심지어 부모님의 음식성향과 직업, 가족관계, 평소의 생활습관 등 정말이지 다양하고도 자세한 정보를 쏟아내는데 나만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따로 없다.


공부가르친다면서 왜 이런거까지 알려고 하냐 (문책성 어조로) 물으신다면 단지 아이들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님을 짚고 넘어가 보려 한다. 학습은 마음과 맞닿아있어서 아득히 먼 미래의 나를 위해 스스로 공부할 이유도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도 어린 마음은 찾기가 쉽지 않다. 나를 믿어주고 나를 진정 위해준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공부해 보려 시도할 뿐. 고로 나는 감히 아이들의 one person 이 되어보고자 시간을 쏟고 관심을 쏟으려는 것이다.




민지는 1학년 답지 않게 씩씩하고 당찬 아이이다.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말도 건네고 야물딱지게 자기가 할 일을 잘 챙긴다. 그런데 수업만 들어가면 집중을 못하고 손톱만 물어뜯는다. 한두 번이 아닌 듯 상처자국이 많다. 어느 날 수업을 하다 복도를 지나가는 젊고 예쁜 여자분을 보더니 달려 나가  "엄마'라고 부르며 꼭 껴안고 오길래 "민지야 너네 어머니 엄청 예쁘시네"라고 했더니 엄마 아니에요. 방과후 선생님이에요 하는 게 아닌가. 부모님 이혼 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자기 눈에 제일 예쁘게 비친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고 있다고 했다. 미혼의 선생님께서도 넓은 품으로 아이를 감싸주셨으리라.


민지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집도 아빠집도 싫고 우리 집에 살고 싶다는 아이. 한번 마음을 터놓은 아이는 수업을 올 때마다 귓속말을 건넨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무슨 말이든 열심히 들어주는 것,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같이 찾아주는 것. 수업을 마치고도 시간을 내어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숨은 그림도 찾아보고 슬라임도 주물럭거리고 별거 아닌 시간에도 해사한 웃음꽃을 피워낸다. 부모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잘못이 아님을,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복잡한 마음을 정돈할 수 있음을 깨달아갈 때 아이의 손에도 새살이 돋고 고사리같은 손에 가지런히 연필이 들린다.




3학년 수현이는 연산은 곧잘 하는 반면 도형을 어려워한다. 변이나 꼭지점, 각과 직각, 직사각형과 정사각형 이런 생소한 단어들이 머릿속에 뒤죽박죽 채워져 있어 필요할 때 바로바로 꺼내지 못한다고나 할까. 이런 수현이에게 특이한 점이 있었으니 이 아이는 늘 여행 중이다. 매주마다 여행을 간다. 캠핑에 제주도에 국내여행은 기본이요, 해외여행도 종종 등장한다. 보통 여행을 다녀온 후 본 것들과 먹었던 것을 신나게 얘기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수현이는 가기 전이 더 신나는 아이. 여행후기를 물어보면 몰라요, 기억이 안나요가 대부분이다. 선택적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일까. 수현이에게 여행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상상으로라도 채우고 싶은 지독한 결핍인 듯하다.


수현이에게 나만의 여행일지를 만들어보자고 얘기해 본다. 꼭 멀리 갈 필요는 없어. 자고 오지 않아도 즐거우면 여행이야. 부모님과 함께하는 공원나들이도 학교 가는 길에  길고양이도 집 가는 길 친구와 사 먹었던 딸기맛 아이스크림도 너의 눈에 담으면 추억이 되는 거야


수현이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쇄하여 내가 선물한 작은 수첩에 붙이고 날짜와 장소,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까지 서투르지만 꼼꼼하게 적어 기록한다. 친구들에게도 자랑거리가 생겼다며 좋아하는 아이. 이제 공부할 차례가 왔군. 자신만의 방법으로 평면도형을 그리고 개념과 특징까지 적어놓으면 여행일지에 이은 도형일지 완성이다. 앞으로 많은 일지들이 이 아이의 손에서 나고 자라겠지. 그만큼 수현이도 힘껏 성장해 나가리라 믿어본다.



아이들의 마음은 투명하게 흘러가는 시냇물과 같아서 가만히 천천히 바라만 봐도 저 깊은 곳 숨겨놓은 감정까지 볼 수가 있다. 때론 강렬한 햇빛에 바싹 마를 수도 있고 또 다른 날엔 세찬 바람에 흙탕물이 되어 흘러넘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원한 물이 없다고 섣불리 속상해하거나 물이 너무 더럽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발길을 끊지 않고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 그거면 된다.


나는 아이들을 관찰하는 스토커이자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언제든 찾아와 떠들 수 있는 스(몰)토커이다.  




게다가 완벽비밀보장은 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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