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라인이라도..
엊그제 갑자기 '아, 나도 시누이긴 한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여자인 입장에서 '시'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의 존재가 여자들에게 얼마나 벽이 쳐지고 어려운지 알고 있다. 그리고 곧 나도 누군가의 며느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작년에 우리 집 사람으로 와준 새언니에게 최대한 편하고 마음을 헤아려주는 시누이가 되고 싶었다. 근데 그게 참 잘 되지 않는다는 걸 찰나의 순간마다 느낀다.
이미 새언니가 우리 가족이 된 지 1년 반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데 생각보다 그 안에도 고부 갈등이 많았다. 거듭되는 고부 갈등에 시누 동생인 나는 새언니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고, 엄마에게는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사실 나는 엄마의 딸로서 산 지 30년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분인지, 어떻게 대해야 좋아하는지 반 이상은 안다고 생각한다.(완전히 다 안다고는 못 한다. 딸내미인 나도 엄마와 트러블은 생기기 때문.) 그리고 엄마를 그만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완벽하게 다른 곳에서 다른 가치관과 생활양식으로 살아온 새언니를 이해 못 할 때가 더 많다. 그래도 보통은 엄마에게 언니 두둔을 하다가 나도 같이 혼날 때가 있다. 내가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지언정 우리 집에 홀로 가족이 되겠다고 온 언니에게 마땅히 해야만 하는 예의라고 생각했다.
여느 드라마나 영화, 아니면 실화 바탕의 재연 등처럼 막장 스토리의 트러블은 없다.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라 느낄 수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고부 갈등이 짙어진다. 이를테면,
엄마: OO아~오이무침이라 가지볶음, 멸치볶음, 겉절이 했는데 이것 좀 가져다 먹을래?
새언니: 아, 저는 가지랑 오이무침은 싫어서요~겉절이랑 멸치볶음만 주세요!
엄마: 그래, 그래라
언니는 안 먹는 반찬을 굳이 가져올 필요가 없기도 하고 의사 표현이 정확한 사람이라서 한 말일뿐이지만 엄마는 안 먹으면 아예 가져다 먹지 말지 해주는 음식도 자기가 좋다는 것만 골라 가져간다고 서운해한다. 그럼 나에게 서운해서 호박씨 아닌 호박씨를 까지만 '다 가져가서 버리는 것보단 낫지 뭐~'라고 하고 넘기려 한다. 물론 나도 엄마 밑에서 자라와서 어떻게 그래도 먹고 싶은 것들만 골라서 달라고 할까 라는 의문은 갖지만 나쁜 의도를 갖고 그런 건 아닐 테니 엄마를 다독이고 말리는 편이다.
새언니: 이거 가져가면 돼요?
엄마: 응~
새언니: 네~내려가 볼게요~
반찬을 가져갈 때도 엄마 상상에는 새언니가 고맙다는 표현을 말로도 하고 표정도 밝아질 예정이었는데 표현이 서툰 언니는 그냥 내려간다.(오빠와 새언니는 부모님이 살고 계신 다가구 주택의 아래층에서 신혼집을 차렸다.) 그럼 또 엄마는 언니가 고맙다는 말도 없이 가져갔다며 표현하지 않은 것에 서운해하신다. 이 또한 나도 엄마 입장이 더 이해는 가지만 '언니가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가 봐, 자꾸 그러면 그냥 반찬은 해주지 마 엄마도 힘드니까~' 이러고 만다. 뭐라 할 말이 없기 때문에 내 입장이 참 난감하다.
이렇게 '나름' 신세대 시누이가 되려고 이해도 해보고 엄마도 다독이면서 고부 사이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생각해서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시누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건방진 생각을 했다. 근데 며칠 전에 터진 고부 갈등을 보며 나도 역시 '시'자가 들어가는 동생이 맞구나 싶었다.
사건은 이랬다. 오빠네 첫째 아가가 이제 갓 돌이 되었는데 새언니가 어린이집에 보낼 거라고 했다. 새언니는 사실 첫째 아이가 돌이 되자마자 둘째를 가져서 지금 임신 4주 정도 된 상태다. 희한하게도 혼자서도 장난감 갖고 잘 놀던 첫째가 동생이 생긴다는 것을 아는 것인지 언니 배에도 자꾸 달라붙고 땡깡이 심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새언니가 배 나오기 시작하면 힘들 것 같다며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엄마는 아직 걷지도, 말도 못 하는 손녀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그것도 새언니는 첫째 아이를 갖고 결혼을 해서 결혼 후에 단 한 번도 일을 나간 적이 없었다. 전문직이 아니라 식음료 가게에서 직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복직이라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아이가 돌이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자리를 다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둘째 아이가 들어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적어도 1년은 쉬게 된 것인데 엄마 눈에는 요즘 세상에 아이 가졌다고 애초에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남편 혼자서 일을 하면 여자는 살림과 육아를 잘 담당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더구나 새언니가 맘카페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면서 집에 붙어있는 때가 별로 없으니 엄마는 남편이 엄청나게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돈은 누가 벌고 쓰는 건 며느리가 다 쓴다는 생각을 하시는 듯하다. 그 와중에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손녀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하니 화가 잔뜩 나셨다.
이에 새언니는 어차피 나라에서 지원금도 나오고, 요즘 어린이집은 실시간으로 cctv를 보며 아이가 잘 지내고 있나 지켜볼 수 있으니 보내도 큰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언니가 집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서만큼 다양하게 놀아줄 수 없으니 일찌감치 보내서 촉감놀이부터 여러 가지 감각 놀이들을 하게 하면 오히려 아이에게도 더 좋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두 입장이 다 이해는 가지만 나는 솔직히 엄마 말에 좀 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워낙 나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최대한 내가 키워야지' 하며 아이한테 해주고 싶은 게 많을 정도로 아가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더욱 엄마 입장에 고개를 끄덕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데다가 조카가 이제는 새언니를 찾는 일이 많아졌는데 어린이집에서 자기 엄마만 찾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이 컸던 것 같다.
그래도 엄마한테 얘기할 때는 감정이 더 커지지 않게 누르며 최대한 새언니 입장에서 얘기를 했지만 종종 부정적인 말도 새어 나오기도 했다.
"요즘에 어린이집 사고도 많은데 언니는 겁도 안 나나.. 근데 주변에 들어보니까 또 어린이집 보내고 개인 시간 보내고 싶어 하는 엄마들 많다고는 하더라고.."
이런 식으로 앞뒤가 모순되는(?) 그냥 누구의 편들기도 모한 상황이라 횡설수설한 말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엊그제 바꿔 생각을 해봤다. 내가 아이 없는 건 물론이고 결혼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새언니가 되어볼 수는 없고, 만일 내 동생(나에겐 여동생이 있다.)이 새언니처럼 '나 힘들어서 애기 어린이집에 보내려고.'라고 한다면 정말 안 좋게 볼까? 정말 '아이가 지금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하는데'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상상을 실감 나게 잘하는 나의 결론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였다. 만약 동생이 같은 입장이라서 새언니랑 비슷한 이유들로 아이를 맡긴다고 하면 '그래 한 번 보내보고 어린이집이 별로인 것 같다고 하면 다시 안보내면 되니까 너의 개인 시간을 가져봐'라고 했을 것 같다.
이 상상을 마친 후 무언가에 탕 하고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나름 새언니에게 힘이 되는 시누이가 되고 싶었는데 정말 '나름'이었고, 나는 역시 '시'누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드는 미안한 마음 혹은 창피함, 또는 경솔했구나 하는 마음들이 훅 몰려왔다.
세상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것을 인지해 두려고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체력도, 심적 부담도, 감정도, 그 모든 것들에는 '기준'이라는 게 없다. 각자 본인의 힘닿는 만큼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버텨보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그 모든 선택들 중에는 '안 되는 것'이란 것도 없는 것인데 내가 너무 경솔했다. 아직까지도 새언니의 선택에 내가 공감하거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찬성이나 반대를 선택할 자격도 없다. 나는 나인 것이고, 새언니는 새언니인 것일 뿐.
다시금 엄마가 새언니에게 '아이 엄마가 알아서 하는 거니까' 하고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나에게는 반성 혹은 민망함이 조금 동반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진짜 '시'자가 들어가는 동생이라서 그렇게 한 건지, 실제로 내 동생의 입장이었어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해줄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한 번쯤은 더 새언니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남 모를 나만의 약속이랄까?
누군가의 여동생으로 살고 있다는 이유로 시누이가 되었고, 시댁이 되었지만 난 무조건 시댁이라면 치를 떠는 문화 아닌 문화의 모습을 보면 참 씁쓸하다. 악의를 갖고 새언니를 대한 적도, 그런 마음을 먹은 적도 없지만 난 어쨌든 시누이. 그냥 자연스럽게 시누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지 나에겐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자격증도 없다. 차라리 자격증이 따로 있는 거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자격증이 있었다면 취득하지 않고 '시누이' 자리를 그냥 포기하고 싶단 생각도 든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