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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Nov 13. 2023

도슨트Docent 2023년 단상들

2023 ART·CULTURE PROJECT

1.

2013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의 도슨트로 활동해 왔다. 처음 지원을 하게 된 건 남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작품들 곁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때문이었다. 6개월간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고 시연을 거쳐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매개자로서 관람객들의 감상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관람객과 만나는 것은 일종의 공연처럼 현장감, 예기치 못한 상호작용과 교감, 때로는 깊은 여운과 감동을 주기도 했다. 연구와 조사를 치밀하게 하길 마음먹는다면 끝도 없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준비과정이 필요했고 관람객과의 만남에서는 전문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의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줄을 타며 관람객과 호흡해야 했다. 어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즐겁기도 했고 이따금 수줍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는 관람객들 덕분에 벅찬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2.

도슨트 활동을 그 무엇보다도 오래 해왔음에도 활동에 대해서 적지 않았던 까닭은, 활동의 와중에 글을 적는다는 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몸을 담고 있는 자리 혹은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다 보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 멈춰 서곤 했다. 더불어 숲의 한복판에서 온갖 종류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펼쳐내기보다는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상태에서 적는 것이 글을 쓰는 이로서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차라리 적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더 정제된 언어로 더 잘 표현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도슨트를 주제로 질적연구를 하며 멋진 도슨트 선배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또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고 결국은 석사논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다. 이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우리는 왜 예술을> 시리즈의 첫 꼭지로 인터뷰들을 한번 더 업데이트해서 정리했다. 그렇게 도슨트에 대한 한 생각들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고 나의 관점도 전하고 나니 이제는 오히려 도슨트 활동도 도슨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좀 더 자유롭게 여겨진다. 이제 편안하게 현장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졌으니 말이다.


3.  

올해 전시 세 개에 도슨트로 참여했다. 도슨트로서 꽤 성실히 매년 여러 전시에 참여한 편이었지만 학예직군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는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부족해서 매번 전시 일정을 기다리고 스케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도슨트의 입장에서 답답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이해가 이해가 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도슨트로서의 경험이 큐레이터로서의 업무를 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따금 전시실에서의 순간들이 그립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도 자주 그리고 오래 작품을 마주하며 미묘하게 달라지던 감상의 순간들, 작품 곁에 서서 관람객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또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을 지켜보던 순간들, 관람객과 대화를 나누고 또 관람객과 설레는 마음으로 작품들 속에서 걷던 순간들. 그래서 올해에는 어렵더라도 조금 더 여력을 내보자는 마음으로 상설컬렉션- 80 도시현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그리고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에 참여해 하반기 내내 주말마다 관람객들을 만났고 이제 다음 일요일 마지막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아마도 마지막 날에도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인사를 나누고 농담을 하며 함께 작품들을 여행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4.

이따금 선물처럼 도슨트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받을 때가 있다. 가만히 그 장면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전시실에서 관람객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나도 몰랐던 내 표정 그리고 관람객들의 모습 속에서 다시금 작품들이 그리고 관람객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여기 2023년 세 개의 전시에서 경험한 그 순간들을 그리고 그때의 단상을 적어본다. 특히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규모면에서도 내용면에서도 한국의 현대미술작품들도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보게 해주는 가나아트컬렉션, 동양화가이자 동양화의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새롭게 개척하며 독보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여성화가로 근현대사를 지나온 한국미술작품의 한 방향을 제시한 천경자컬렉션은 한국현대미술이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게 해 준다. 더불어 서울을 배경으로 뉴미디어를 소개해온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이제 관광과 이주, 다문화가 익숙해진 세계적인 도시로서의 서울뿐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곳곳의 대도시, 기술과 긴밀히 결합해 뻗어나가는 현대미술을 선보이고 그와 관련한 담론과 실험의 장을 다양히 펼쳐내며 현대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게 해 준다. 여기 남기는 단상과 사진들에 홍미가 인다면, 추운 겨울 스산한 가로수길 대신 작품의 숲을 거닐어 보는 건 어떨는지. :)



[가나아트컬렉션 상설전] 80 도시현실

늘 작품을 소개하기 직전 관람객을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설레기도 하고 가장 긴장되기도 한다. 도슨트시간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하고 전시실 앞에서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미리 시간을 체크하고 나보다 먼저 전시실을 서성이는 관람객도 있고 나를 보고 채비를 하고 마주서는 이들도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몇 분의 침묵의 순간, 기대나 호기심 혹은 물음을 안고 선 이들의 눈빛이 읽힐 때 설렘과 긴장을 넘는 반가움에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를, 작품이 주는 감흥을, 더 잘 전달하고 싶어 진다.

'민중미술'은 이제 미술사를 논하는 연구자들도, 작품비평을 하는 비평가들도, 작품을 사고파는 갤러리스트들과 옥션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한국현대미술사조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궤를 같이하는 민중운동의 일환으로 미술을 통해서 우리의 근현대사, 정치와 사회, 문화를 적극적으로 주제로 끌어들이고 또 작품을 통해서 사회현실에 대해 발언하며 이를 더욱 많은 관람객들, 민중과 나누고자 했던 미술운동 사조. 하여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은 구상계열에 당대의 현실, 사회적인 부조리나 실제 사람들의 일상들을 소재로 삼은 것들이 많다. 물론 주제에 천착하여 더욱 추상적으로 나아가거나 실험적인 작업들을 선보인 작가들도 있었고 이후에는 각자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간 이들도 있다.

현재 상설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특히나 70년대의 사회현실을 바탕으로 폭발적으로 흘러갔던 80년대의 사회적인 양상들이 반영된 작품들, 이후 90년대까지도 그 영향하에 만들어진 작품들이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달동네 이주민들의 지역, 정오의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민방위 훈련의 현장을 담은 화폭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선과 색채, 구조로 전해지는 감흥을 곱씹어보게 된다.


[천경자컬렉션 상설전]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80 도시현실을 둘러보고 나란히 자리한 천경자컬렉션 전시실로 들어서면, 작가의 생애를 간단히 담은 약력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70년대부터 90년대의 한국현대사는 물론이고 그 이전의 일제강점기부터 밀레니엄 이후까지 그야말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 온 천경자 작가의 삶은 그 자체로 많은 감흥과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서 몇 걸음 앞에 작가 생전에 작업했던 모습을 기증받은 물건들로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작가의 방. 작가가 동양화가로서 재료와 도구, 작업방식에 얼마나 철저히 공과 정성을 들였는지 느껴지는 다양한 작업도구들.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 특유의 화풍을 보여주는 자화상, 여인의 모습들, 몇 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들과 작가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여행지의 풍경들.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와 화폭의 구성, 이미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혹독한 인생을 그리고 한국사회를 겪어오면서 생에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한 인간의 삶을 엿본다. 그리고 늘 관람객들 역시 천경자 작가의 삶에 빨려 들어가듯 경청하는 모습에 어쩐지 숙연함을 느끼곤 한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이번 비엔날레에는 늘 전시장 입구의 '나는 그 거리에 소속된다3' 작품에서 관람객들을 기다리는 것으로 도슨트를 시작했다. 미술관에 들어오자마자 버티고 있는 토크와세 다이슨의 육중한 건축적인 조각들 앞에서 사람들은 당황하기도 하고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기도 하고 우선은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 육중한 존재감에 대한 농담- 왜 이런 걸 여기에 갖다 놓았을까요, 제목은 더더욱 이해하기가 어렵죠?-으로 관람객들은 조금씩 현대미술에 대한 불편함과 어려움을 내려놓고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들과 함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작가의 이력을, 인터뷰를, 작품의 정보들을 풀어나가다 보면 관람객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눈을 맞추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하며 작품을 탐색하기도 한다. 그들의 변화무쌍한 표정들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응답하듯 미소를 짓게 되고 또 호응하며 대화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즐겁게.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팔레스타인, 태국, 인도, 중국, 티베트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의 40여 개인/팀 작가들의 70여 점의 작품들. 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국제적인 전시축제의 장이기에 대규모로 현재 작가들의 관심사와 작품들, 새로운 실험과 그것들을 두고 벌어지는 다양한 강연, 대담, 토론 등의 담론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나 현대미술을 통해서 동시대의 이슈와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고 논의하고자 하는 일종의 어젠다 설정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에 비엔날레의 제목과 주제를 주의 깊게 확인하고 전시실의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구나, 때로는 조용히 속삭이듯이 때로는 나란히 바라보듯이 때로는 강렬히 외치듯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구나 느껴질 때가 있다.

아르헨티나 북부지방의 수변풍경을 천에 직조해 낸 지도나 아프리카대륙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공동체로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카펫으로 만들어낸 지도는 여러분이 보고 느끼고 함께하기를 기다린다.

팔레스타인의 풍경을, 열대지역의 음악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나누기를 기다린다. 작가들의 시선을, 그들이 경험한 그들의 역사, 문화,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속의 웃음과 눈물, 기쁨과 슬픔, 놀람과 환희를. 이따금 마이크를 고쳐 잡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숨을 들이마시며 관람객들의 눈을 바라본다. 더욱 정성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관람객들에게 닿기를 바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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