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제시하는 학예사 자격인정 기준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에서 발간한 학예전문인력 업무 표준안을 바탕으로 구분한 학예 업무네 가지 중에서 이번에는 세 번째, 뮤지엄의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을 학예업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및 문화체육관광부의 표준안에서 교육과 행사라고 묶어 칭하고 있는 업무를 찬찬히 살펴보면, 사실은 교육이라는 용어로 전시 이외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모두 포괄해서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규교육과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부터 대학생을 위한 직업탐색프로그램, 성인과 노년기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감상프로그램, 참여형 예술프로그램까지도 '교육'이라는 단어로 묶어버리는 것은 예술과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을 교육으로 여기고 있는 현재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정규교육과정을 넘어 평생교육의 개념이 일반화되고 재사회화를 위한 교육과정이나 문화예술교육의 요구가 높아지며 뮤지엄 역시 공공재로서 교양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현재의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정규교육과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교육에 방점을 두고 있으나 대학생을 비롯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소장품, 전시, 뮤지엄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예술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예술향유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들은 관람객 친화 프로그램, 혹은 예술과 관람객 사이의 다리를 놓고자 하는 접근성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술의 저변을 넓히고 예술을 통해 소통하며 예술에,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공공재로서 문화예술기관의 역할이자 활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육 및 행사가 아니라 교육과 행사를 포괄하는 프로그램 기획이라 하는 것이 더 타당하기에 이 글에서는 교육 및 행사를 프로그램으로 칭하고자 한다.
2. 뮤지엄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관리 업무의 과정
실제 뮤지엄의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업무도 앞서 살펴본 수집·소장 업무나 전시업무와 마찬가지로 일련의 과정 혹은 흐름으로 이어지는 작업으로 학예업무표준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교육 및 행사 기획하기
교육 및 행사 프로그램 개발하기
교육 및 행사 프로그램 실행관리, 운영하기
평가 및 환류하기
이는 역시 다른 업무와 마찬가지로 뮤지엄의 미션과 비전, 요컨대 뮤지엄의 지향에 따라 프로그램의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뮤지엄의 내부자원과 주변환경, 예산과 외부 지원 등을 고려하여 기획하되 특히 뮤지엄의 소장품과 전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기의 외적인 사회문화적인 맥락과 뮤지엄의 주요 관람객, 혹은 중점을 두고 자하는 대상 군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이에 특화된 기획과 운영이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하게 된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참여자를 고려하여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타깃군을 설정하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참여를 유도하고 또 참여과정과 사후 피드백까지도 고려해야 하며 이는 수집·소장 관리 업무나 전시 업무와 비교했을 때 특히 참여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고려되어 진행되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획단계에서부터 타깃 참여자와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서 주제가 선정되어야 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단계에서도 역시 이들의 욕구와 기대치, 반응과 성취를 고려하여 콘텐츠를 선정하고 조사와 시연, 피드백을 통해서 교구재를 개발하게 된다. 운영 단계에서도 홍보와 실제 운영과정에서의 의사소통, 참여의 독려를 위한 다양한 관리, 참여 후의 피드백과 자체적, 대외적인 평가를 통해서 참여자의 흥미와 관심을 최대화하고 프로그램의 만족도가 높을 수 있도록 보완하고 개선하게 된다.
3. 뮤지엄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을 좌우하는 요소들
물론 뮤지엄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에서도 앞서 수집소장, 전시기획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역시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의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 업무임에는 변함이 없다.
뮤지엄의 미션과 비전
뮤지엄의 주요 연구주제여부
뮤지엄의 예산
뮤지엄의 공간과 자원(물적자원, 인적자원)
다만 이 같은 조건들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뮤지엄의 관람객 혹은 프로그램의 참여자라는 대상이라는 가장 상위의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의 주제와 소재, 방향과 방법, 결과물과 평가의 목표까지 설정하게 되며 예산과 자원이라는 물질적인 조건에 의해서 운영의 규모와 방법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실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엿본다면, 다양한 조건과 맥락을 고려하며 중층적으로 조율과 선택을 반복하는 협업의 과정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상설 전의 운영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경우, 기존 전시의 취지와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프로그램에 참여할 대상자를 학교연계 교육에 참여할 학생으로 설정하느냐 혹은 일반 관람객 중에서도 프로그램에 참여할 만큼 예술에 관심이 높은 일반 성인 관람객을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프로그램의 주제, 방향성이 달라지며 당연히 소재와 이를 다루는 방법도 그리고 프로그램 결과를 평가하는 요소들도 달라지게 된다. 더불어 예산과 활용할 수 있는 공간, 교구, 매체, 강사 등의 물적, 인적 자원의 조건에 따라서 프로그램의 횟수, 참여인원 등의 규모까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문화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상호작용에 기여하는, 진정한 공공재로서 뮤지엄 프로그램 만들기
조심스럽게 문제제기를 하자면, 뮤지엄의 프로그램과 행사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는 것을 그만두고 뮤지엄프로그램 혹은 차라리 그냥 프로그램으로 명명하는 것이 어떨까.
뮤지엄은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 아니라 예술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고 예술과 교육의 접점에서 교육의 일부를 담당할 수 있으나 예술을 소개한다는 이유로 모든 프로그램을 교육으로 환원시켜서는 안 된다. 물론 예술이 사회의 산물이고 문화적인 정수이기에 뮤지엄은 예술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노력해 왔으며 이 일부에 교육이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뮤지엄에서 진행되는 수집, 소장, 전시 이외에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행사들이 모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기보다는 오히려 예술프로그램 혹은 예술매개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래야 뮤지엄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그리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학예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과 성취적 결과물로 평가받는 오류를 벗어나서 예술을 매개로 소통하며 예술을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하고 향유하며 예술 자체가, 예술을 통해서, 사회구성원들이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진정 필요한 예술의 역할에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관람객 친화 프로그램, 예술을 어렵게 느끼는 관람객에게 다리를 놓아주고자 하는 다양한 접근성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예술의 대중적 향유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강화되는 추세이고 이들 프로그램의 성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만족도 조사와 같은 관람객 피드백과 참여관람객 수를 주요 평가지표로 삼으면서도 이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뮤지엄프로그램 중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연계교육, 진로탐색을 위한 진로교육 외의 일반인들,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층을 위한 예술감상프로그램 등 예술접근성 강화 프로그램, 작가들과 참여적 작품이나 작업으로서 벌어지는 예술프로그램들 모두 아울러 뮤지엄프로그램으로 부른다면, 예술과 교육을 혼동하는 오류를줄일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프로그램의 성과를 참여자의 숫자로 판단하거나 5점 척도로 만들어진 만족도 조사 결과가 교육프로그램의 성공적인 교육적 성취로 둔갑하는 해프닝도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평가와 환류를 넘어서야 예술가와 관람객의 거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좁힐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야 말로 관람객들은 좀 더 깊은 향유를 그리고 작가들은 좀 더 관람객을 이해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도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