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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Aug 01. 2024

먼지가 쌓여도 괜찮아. 내려놓고 용기를 가지렴.

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일상과 관련한 두 번째 질문은 살림, 그러니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반복적인 노동을 어떻게 견디어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일인가구로서의 일상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실감한 괴로움이 바로 살림이라는 끝없는 반복적인 노동이었다. 나 자신을 건사하는 것조차 버거운데, 사빈은 어땠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떨까. 일을 하는 와중에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님을 돌보는 와중에도 그리고 이제 은퇴를 하고 건강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도 여전히 설거지와 빨래, 청소는 매일같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그녀는 어떻게 그것들을 견뎌왔을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는 시간 속에서, 세끼를 준비하고 또 설거지하고 옷을 세탁하고 침대시트를 빨고 집안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등의 일상을 챙기는 일은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끊임없이 손이 가지만 잘해도 티가 나지 않고 조금만 게을러지면 굉장히 잘 못한 것처럼 느껴져서 괴롭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당신은 의, 식, 주 살림을 건사하는 일이 힘들진 않았나요? 익숙해져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가요 아니면 여전히 힘든가요? 어떤 마음으로 해나가는지,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일상적인 노동, 살림을 한다는 것

이거 정말 큰 주제지, 특히 우리 여자들에게,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도 돌봄 노동의 대부분을 맡고 있잖아. 그리고 맞아, 그건 정말 부담이었어. 그런데 난 그걸 지난 몇 년 동안에야 깨닫고 이해했어. 나랑 남편은 둘 다 일을 했고, 난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사, 식사, 학교 일 등등 여러 가지를 추가로 돌봐야 했단다.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와줄 수 없었지. 근데 요즘처럼 많은 방해 요소가 주위에 있진 않았어.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세계 여행, 이런 것들은 나중에야 우리 삶에 들어왔거든.

동독에서는 젊은 가족들을 지원했단다. 젊은 가족들은 저렴한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많은 유치원이 있어서 여자들도 일을 할 수 있었지. 우리는 돈이 부족해서 일을 해야 했어. 당시 두 아이를 가지는 게 일반적이었어. 이런 지원은 국가의 정치적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이었지. (당시 젊은 여자로서 아이들이 있는 상태에서 주당 42-40시간을 일했는데, 오늘날에는 40-35시간이야. 4일 근무 주와 같은 새로운 근무 모델도 생겼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여자들에게는 엄청난 일이었지만, 우리는 아마도 그것에 익숙해졌던 것 같아. 난 당시 그것을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고, 에너지가 넘쳤지. 부모님도 집에서도 일하는 모습이 일상이었고 일단 역할을 하는 것이 우선했지. 물론 이게 항상 좋은 건 아니었어.
일상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동독 시절에 더 어려웠단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많은 것들을 위해 많이 걸어 다니고 줄을 서야 했어.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일상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했단다. 모두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익숙해졌고 그에 맞춰 생활을 조정하고 서로 도왔지. 가족 내에서의 돌봄 노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일상은 더 쉬워졌고, 모든 것을 살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새로운 삶은 다른 방식으로 더 복잡해졌고 그로 인해 더 힘들어졌어.

그리고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어떤 유행을 따르고 있는가, 어떤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가? 얼마나 청소하고 요리하고 빨래해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이 정말로 필요한가?
오늘날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해. 이는 정말로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고, 종종 스스로에게 묻게 돼지: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가, 모든 요구와 기대를 충족하고 있는가?
그다음으론 가족의 영향과 주변 환경 및 사회의 요구가 더해져 자신의 함정에 빠질 수 있지. 나 역시 외부의 요구에 너무 많이 영향을 받았단다. 잘 기능하는 가족, 가정, 일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했었지. 나 역시 두려움과 의심이 있었어.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감정적으로도 투자하고 더 많은 지원도 제공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러한 과업을 해냈을 때도 기분이 좋았어. 어머니께서도 내가 많은 일을 해냈다고 말씀하셨고, 나도 이 성과를 매우 당연하게 여겼지. 아마도 일정량의 돌봄 노동은 완전히 정상적이고 필요한 일이고, 의문을 제기하면 그것이 문제로 보일 수 있고, 어려워지고 부담스러워질 수 있었을 거야.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필요한 양을 찾고, 가능하다면 이 일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는 거야. 가사 일을 조금 미루더라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지. 이건 작은 시작일 수 있어.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있다면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거야. 이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바람이기도 하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해결책은 없단다. 아마도 자신의 요구를 조금 낮추고 여전히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해결책일 수 있겠지. 하지만 이것도 배워야 한단다. 때로는 큰 책장을 정리했을 때 매우 만족할 수 있지. 때로는 친구들과 멋진 저녁을 보내고 집에서 주방을 치우지 않은 것도 괜찮아. 둘 다 괜찮아. 지금의 나는 먼지가 조금 더 오래 쌓여도 괜찮고, 창문을 덜 닦고,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단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여유로움, 얼마나 큰 선물인지! 나는 젊은 여성들이 이러한 깨달음을 더 일찍 얻기를 바란다. 오래 걸릴 필요는 없어. 내려놓고 용기를 가지렴.  
 꽃과 벌 ©Sabine

사빈이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은 내 마음에도 꽂혔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있었던가. 어떤 사회적 요구 혹은 사회적 유행을 따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혹은 가족이나 주변환경의 요구나 기대를 나의 욕구보다 우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것들이 사빈처럼 나에게도 성취감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겐 다른 욕구가 우선인 걸까.

자문자답을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을 통해서 조절해 나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리라고. 그럼에도 더는 견뎌내야 한다는 괴로움을 앞세우지 않기로 했다. 해결책은 없어도 괜찮다는,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내려놓고 용기를 가지라는 그녀의 격려가 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짐과도 같았던 부담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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