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여행 1일차
J와의 일본행이 결정된 것은 출국 3주 전이었다. 전부터 둘이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서로 시간이 맞아 내린 결정이었다. 홍콩과 일본을 고민하다가 일본을 가기로 했고, 이어 오사카와 도쿄 중 고민하다가 유니버셜 스튜디오(USJ)가 있는 오사카로 정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골든위크였으므로 솟구치는 비행기티켓값에 포기할까 하였지만, 결국 평소보다 비싼 가격을 받아들여야 했다. 캘린더에 표시해 놓고서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때면 다가올 여행을 떠올렸다. 내게는 애인과 처음 가는 해외여행인 데다가 첫 동양권 국가였다. 퇴근길에도 짐을 싸기 전부터 무슨 옷을 입을지를 고민하면서 일본여행을 상상했다. 출국 이틀 전에 짐을 싸면서 빠진 게 없는지 여러 번 확인했고, 오래되고 낡았지만 10년을 함께한 캐리어에 짐을 싸면서 이 녀석과는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출국 날 아침 7시 공항리무진에 탑승해야 했는데 정류장과 집이 거리가 애매하여 캐리어를 들고 버스를 탔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내게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2시간이 넘는 이동시간 동안 설레서 잠도 자지 않은 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반대로 사람이 없었기에 우리는 짐을 금방 부친 후 기념으로 모바일 보딩패스를 실물티켓으로 받아 입국장에 들어갔다.
1시간 동안 간단한 점심을 해결하고 나란히 앉아 여행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본격적으로 면세점을 구경했다. 나는 딱히 브랜드나 명품에 관심이 없어서 면세점을 보더라도 심드렁한 편이었는데, 선글라스 한 개에 마음이 뺏겨 장만하게 되었다. 이번 선글라스도 J가 우리의 공금으로 사준 것이었는데, 매번 받기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나는 열심히 공부로 보답하겠노라 답했다. 이후 여유롭게 카운터에 도착했고 드디어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날따라 기체가 유달리 흔들려서인지 나는 생전 하지도 않았던 비행기멀미를 다했고 속이 울렁거린 채로 입국수속까지 마쳐야 했다. 입국심사 중 긴장해서 여권을 심사대에 그대로 두고 가는 해프닝도 벌였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길은 여행 중 처음 맞닥뜨리는 과정이기에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를 미리 알고 있던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호텔로 가는 리무진버스에 대해선 미리 알아보았고, 다행히 크게 헤매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호텔까지 가는 길은 LA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했다. 쭉 뻗은 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달려 이윽고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접근성이 매우 좋았으나 가격에 비해 크기가 생각보다 좁아서 당황스러웠다. 간신히 캐리어를 펼칠 수 있을 정도였는데, 도심 한복판에 있고, 공항버스가 정차하는 정도의 접근성이면 수긍해야만 했다. 저녁에 도착한지라 늦을새랴 J가 알아본 식당으로 향했다. 영어권국가가 아닌 곳에서 지하철을 타는 것은 꽤나 긴장되는 일이었는데, 오히려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그 덕에 헤매지 않고 무사히 역에 내릴 수 있었다.
식당은 우리가 도착한 이후로 웨이팅이 줄을 이었고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식당이었던지라 가게에는 한국어가 더 많이 들렸다. 이미 한국에서 일식을 많이 먹어본 우리로서는 사실 첫 저녁식사가 감격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맛없을 수 없는 메뉴여서 그럭저럭 만족해했다. 이후 식당 근처 역에서 도톤보리로 가기 위해 난바역으로 향했다. 식사 후 계획은 도톤보리에서 글리코사인을 먼저 본 후에 쭉 구경하다가 신사이바시로 올라가는 루트였다. 도톤보리는 사실 화려한 간판 말고는 서울의 강남이나 명동, 홍대와는 다를 것이 없는 쇼핑거리였다.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는 우리는 연신 기 빨려하다가 불 켜진 글리코상을 보기 위해 다시 도톤보리로 향했다. 에비스 다리 위에서 바라본 도톤보리의 야경은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했다. 글리코상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팔을 위로 쭉 뻗어서 가급적이면 모든 전경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글리코사인을 보고 나니까 오사카에서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이룬 것 같았고, 이제야 명동과 같았던 도톤보리가 외국임을 실감했다.
사실 나는 치마와 깔맞춤을 한다며 불편한 운동화를 신은 탓에 아픈 발을 이끌며 돌아다녀야 했다. 신사이바시 백화점을 대충 둘러보다가 파르코로 넘어갔는데, 운동화 뒤축 천이 벗겨져 양말도 이미 구멍 난 상태였다. J에게 발이 아프다고 말하면 분명 그는 내 걱정을 하느라 관광을 제대로 못할 것이기에 애써 통증은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파르코는 일반 백화점같았던 신사이바시 다이마루 백화점보다도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고 이 날 처음 스타벅스에 들려 일본어로 주문도 해보았다. 여행오기 전부터 일본어로 이야기해 보는 것이 로망이었는데, 말할 줄만 알고 돌아오는 대답을 듣지를 못해서 3일째부터는 일본어쓰기를 포기했었다. 다만 이때까지는 내 일본어를 직원이 알아듣는다는 것에 대해 꽤 뿌듯해했고, 한국에선 보지 못했던 음료를 주문했다.
파르코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곳이었다. 산리오, 스누피, 짱구, 리락쿠마 등 남녀노소 모두 좋아할 캐릭터상품들이 있었고 당장이라도 쓸어 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했다. 산리오를 좋아하는 나는 특히나 산리오매장에서 오래 머물렀는데 다음날 산리오 기프트 게이트를 갈 생각이었기에 구입충동을 억누르고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돈키호테로 향했다. J는 가족에게 하달받은 심부름 목록이 있었고 나는 크게 관심은 없어서 J가 사는 것을 몇 개 따라 사다가 이왕이면 면세를 받을 수 있도록 가격을 맞추려 여러 가지를 쓸어 담았다.
대부분 J가 고른 것을 따라 담은 것이었지만 아빠를 위한 견과류와 엄마를 위한 젤리, 그리고 두 분 모두를 위한 파스는 내 쇼핑목록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큰 짐을 들고서 호텔에 돌아온 우리는 돈키호테에서 사 온 보따리를 캐리어에 넣기 위해 다시 짐을 싸야만 했다. 하도 많이 걸어서 가만히 있어도 발바닥이 욱신거릴 정도였고 거지 같던 운동화는 결국 버리고 왔다.
영어권 국가가 아닌 것이 오히려 불편할 거라 생각해 걱정했던 일본은 사실 여행초보자가 오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원체 많은 덕에 도처에 한국어가 있었고, 영어실력이 오히려 능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서로 같은 수준끼리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다. 영어가 능숙한 J는 오히려 한자로 가득한 일본이 어려워 둘이서 미국여행을 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나는 엉터리문법이라도 말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J는 말하기와 더불어 읽기, 쓰기, 듣기가 다 되는 친구이니 일본여행보다 더욱 편할 것이다.
더불어 부모님과 여행하기에는 서구권 국가보다 일본이 더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음식이 어른들 입에 잘 맞을 것 같고 모시고 다니는 입장에서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많은 일본이 더욱 안심되기 때문이다. 여행 첫날에 글리코사인에 불이 켜진 야경도 보았고, 돈키호테에서 보따리 가득 쇼핑도 하였으니 오사카 시내에서 중요한 것은 첫날에 다 이룬 셈이었다. 저번 제주도여행에서 내가 딱히 한 것이 없어 미안했기에 이번 여행만큼은 주도적으로 길을 알아보기로 다짐했다. 다행히 내 다짐은 첫날엔 잘 이루어져, 여행의 시작을 기분 좋게 열 수 있었다. 다음날 나보다 짐을 더 들은 J를 질질 끌고서 지하철역을 한창 헤매게 될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