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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이방인> 인생 리셋에 대한 동감

by 사서 유

내가 26살 때 호주워홀을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서였다. 게임처럼 인생도 저장 없이 초기화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고민할 터였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커리어, 대인관계, 환경을 모두 0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다. 책 <다른 삶>의 부제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이는 기꺼이 이방인이 된다'인 것을 보면 외국에서의 삶이 다른 삶이 맞기는 한가 보다. 그렇게 나는 1년간 기존과는 철저히 다른 인생을 살고 돌아왔다. 돌아온 후 나에도 여전히 나였지만 분명 어딘가 예전과 달라졌다.


소설 <친밀한 이방인>의 리뷰를 종종 보다 보면 거짓말과 리플리증후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그녀의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았다고 믿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꾸며낸 거짓 삶은 가짜이면서도 그녀에게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실제로는 거짓말로 시작했으나 자신의 몫을 때마다 톡톡히 해내며 몇 가지 인생을 살았다. 그녀의 거짓말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닌 외국에서의 삶처럼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어떤 방법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렇게 거짓된 삶을 살아가다가, 또 다른 거짓삶을 사는 사람에게 진짜의 삶을 주기 위하여 마지막 거짓말에 동참한다. 그 후 그녀의 행적은 알 수 없으나 실은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거짓말로 살았던 때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테니까. 내가 1년간의 호주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처럼.


그녀가 만든 거짓말들은 대체로 한국사회에서 '다시 태어나야' 실현가능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런 환경적 요소를 뛰어넘어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만 현실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긴 힘들뿐더러 이제는 개천 주변조차도 땅값이 올라 들어가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의 재능이 거짓말을 토대로 쌓아진 것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사실 그것은 그녀가 쉬운 길을 가기 위해 자초한 것이므로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지난한 길을 통과하여 진짜를 얻는 대신, 쉬운 길을 택하여 모래성과도 같은 삶을 사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부를 보면 그녀의 삶은 분명 그녀에게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다른 삶에 대한 욕망이 공감되면서도, 미처 동질감까지는 못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에 있다. 그녀에게 속은 피해는 그녀를 향한 진심의 비례했기에, 이처럼 타인에게 잔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녀에 대한 진심은 그녀 본인이 가장 클테니 자신에게도 이루 말할 수 없도록 무정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소설 자체에 있어선 흡입력이 매우 뛰어나 앉은 자리에서 책 한권을 다 읽을 정도였다.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면서도, 후반부 결말에 이르러 조금 맥이빠지는 감은 없지않아있다. 그러나 드라마 <안나>가 맘에 남던, 보지않던 안나의 삶에 조금이나마 안타까움을 느낀 이라면 필히 읽어볼 좋은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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