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들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김초엽, 장강명이 쓴 에세이를 특히 재밌게 읽었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직업군의 에세이도 읽어볼 작정이다. 평소 SNS도 팔로우하면서 게시물을 꾸준히 읽고 있던 황석희번역가의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그의 개인홈페이지에서 작업물에 대한 뒷이야기를 다 읽을 정도이니 어쩌면 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는 번역가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번역가이기에 팬을 자청하는 이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그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읽을 때마다 그가 언젠가는 책을 써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의 제목(혹은 주제)을 필기체로 종이에 적은 흑백사진을 올리고 자신의 생각을 길게 적는 그가 작가로 데뷔하지 않을 리 만무했다. <번역: 황석희>는 직업인으로서의 황석희와 인간 황석희의 철학이 고루 담겼다. 영화번역가로서의 그는 무척이나 겸손한 사람이었고, 인간 황석희로서의 그는 후진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영화번역가에 대한 어떤 고원한 것들을 어려운 단어로 적는 대신 그는 쉬운 단어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글로써 충분히 드러낸다. 영화번역가의 내밀한 속사정도 엿볼 수 있으니, 전문가로서의 면모 역시 톡톡히 드러나는 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저자인 황석희번역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먼저 읽어보았다. 몇몇 이들은 이 책이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읽고 나니 깊이가 없다는 평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구어체에 익숙한 저자의 문체가 물 흐르듯이 읽힌다는 이유로 그러한 평을 받는 것 같았고, 그런 연유로 이 책의 깊이가 얕다는 것에선 동의할 수 없었다.
<번역: 황석희>의 에세이는 대체로 끝이 두루뭉술한 편이기도 하고, 한 편 당 글의 내용이 많지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편이다. 유명세가 높은 평범한 직업인이 최대한 적을 수 있는 솔직한 글이자, 그가 일상에서 품는 상념들이 충분히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되려 쉽게 읽힌 글이라 하여 결코 쉽게 쓰여지기도, 얕은 글이 아님을 보여주기에 좋은 예시가 되는 책이다. 나는 그가 지금처럼 후지지 않는 번역가로 오래도록 남아 계속해서 읽기 쉬운 글을 써주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