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연상호감독에 대해 갖고 있는 자원은 많으나 이를 잘 요리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구미를 당겼으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는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그가 돈을 들이고 힘을 들일수록 작품이 끝에 가서 산으로 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영화 <얼굴>은 그런 나의 가설을 좋은 의미로 입증하는 작품이었다.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내가 그리워한 그의 세계에서는 자비란 없었음을 알았다. 그의 초기작에서 느낀 그 처연하고도 서슬 퍼런 감각. 불쌍하고도 어리석은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무지한 우리들까지.
시각장애인이지만 도장장인인 아버지를 둔 동환은 어느 날 경찰로부터 어머니로 추정되는 한 구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가 어린 시절 홀연히 가출했다고만 알고 있는 어머니의 과거를 찾아갈수록 의구심은 점점 짙어져 가고,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는 점점 혼란스럽기만 하다.
영화 <얼굴>은 영화가 가진 기본에 충실히 의지하는 영화이다. 그 어떤 특수효과라던지 휘향 찬란한 오락적 요소는 전부 배제된 채 그저 각본, 연기, 연출 이 삼박자에 의해 굴러간다. 연상호감독의 작품이 으레 그렇듯 <얼굴> 역시 초반에 미스터리한 사건을 던지며 극이 시작된다. 다만 대체로 실망스러웠던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얼굴>은 가볍게 시작하여 무겁게 끝난다. 단순히 실종된 어머니의 과거를 찾는다는 화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극이 점점 진행될수록 온갖 인간군상과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세상을 만든다. 이 세상 속에서 순수한 영혼인 동환의 어머니 '영희'는 주변에 의해 폄하되고 짓눌려도 끝끝내 으스러지지 않는다. 되려 짓이겨지는 것은 그런 영희를 대하는 주변인들이다.
영희를 대하는 극 중 인물들은 인간의 악심이 의인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권력과 폭력, 자격지심, 무시, 폄하, 조롱 등. 영희와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남편 영규이다. 평생 장님으로 살아오며 온갖 풍파를 겪으며 형성된 그의 비뚤어진 자격지심은, 그런 그를 배려하지 않는 또 다른 악심에 의해 폭발되고 만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외적인 아름다움을 쫓지 않을 것이다라는 어떤 클리셰를 비튼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실은 그가 볼 수 없던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도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 어머니 영희를 대하는 아들 동환은 선한 어머니와 비뚤어진 아버지의 정확히 반쪽씩 닮아 참으로 인간적인 인물이다. 인간적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삶을 동정하고 분노하면서도 현실의 이익을 챙겨 그런 어머니의 과거를 덮는다. 극 중 유일하게 제 갈길을 못 찾고 갈팡질팡하며 장치적으로 소모되는 인물은 영규(동환의 아버지)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PD이다. 처음에는 재밌는 사건거리를 찾았다며 이기심을 보이지만, 영희의 과거를 알아갈수록 그녀의 슬픔에 동화된다. 생판 피도 섞이지 않는 남도 공감되는 그녀의 아픔을 자식이 덮는다는 점은 어찌 보면 남이 아니기에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삶은 과거이고, 남은 아버지의 생은 현재이다. 과거의 정의로움보다 현재의 이익을 챙기는 동환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이는 판타지영화에 등장하는 히어로일 뿐이다.
평생 괴물같이 못생겼다며 폄하받던 영희의 얼굴은 영화 말미에 과감하게 공개된다. 실제로 배우 신현빈의 얼굴과 당대 여성들의 평균외모를 합성하여 만들었다는 그 얼굴은 낯익다. 어쩌다 보니 운이 지지리도 없어 평생 멸시받던 한 여자의 생애에 그의 아들이 보이는 눈물은 참회가 조금 섞인 연민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이 영화는 철저히 닫혀있으면서도 열린 결말이다. 마지막에 공개된 영희의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까지가 이 영화를 완결 짓기 때문이다. 각자가 내린 결말이 살아가며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 점까지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는 실로 날카롭고, 자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