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저널> 2018년 여름호 게재
(글을 넘길 때 제목은 '미투 운동과 명예훼손: 사회변혁과 법 사이의 간극 메우기'이었는데
관훈저널 편집진에 의해 바뀐 제목은 '미투 보도의 명예훼손, 언론의 대응전략'이다)
미투 운동과 명예훼손 문제는 크게 두 가지 갈래에서 논의할 수 있다. 하나는 미투를 통해 성폭력을 고발한 자가 명예훼손으로 피소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미투를 보도한 언론이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전자 관련 주요 쟁점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간략히 짚어 본 후, 언론의 명예훼손성 보도에 적용되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미투 보도에서 어떻게 적용될 지에 대해 유추해 보고 언론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논의한다.
한국 사회에서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1)운동을 폭발시킨 것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JTBC 뉴스룸> 인터뷰를 통한 고발이었다. 그러나 이전에도 미투는 존재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6년 10월 시작된 ‘OO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hashtag)를 통한 폭로가 대표적 사례이다. 시작이래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문단, 영화계, 미술계, 대학 등에서 자행되어 온 성폭력 및 젠더 폭력에 대한 고발이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그 전에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즉, 한국사회에서 ‘미투는 없었던 게 아니라, 사라지고 지워진 것’2)이라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미투를 사라지게 하는, 성폭력 고발을 어렵게 하는 다양한 요인들 중 하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제1항, 형법 제309조 제1항,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이다. 미투의 내용이 진실한 사실인데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을 위축시킨다.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사유(형법 제310조)가 적용되어 최종적으로 불기소, 무죄판결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미투 운동에 참여하여 성폭력 피해사실을 알린 후 오히려 성폭력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당하여 수사와 재판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감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미투 운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높으므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나,3) 헌법재판소는 2016년에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처벌 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한 바 있다.4) 미투 운동과 관련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촉구하는 법률가 선언문이 발표되고 청와대 국민청원이 여럿 접수되는 등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고, 지난 3월 국회에 제출된 형법 제307조 제1항 개정안들은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한 고발인 경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적용에서 제외하거나5) 적용이 어렵도록 하는 장치6)를 담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악용으로 미투 운동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법 개정 혹은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며 언론 역시 이 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언론의 자유와 명예훼손 소송은 오랫동안 항시적 긴장관계에 있어 왔다. 특정인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하고 범죄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의 성격상, 그 긴장 관계는 미투 보도에서 더욱 고조된다.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이 조각되는 사유로는 (1) 형법 제310조에 규정된 ‘진실성’ 및 ‘공공의 이익’ 요건과 (2) 판례를 통해 인정되어 온 ‘상당성’ 요건이 있다. 상당성 요건이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위법성이 부정된다’는 것으로, 법률상 요구되는 진실성 요건은 실제 판결에서 상당성 요건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떤 사실이 진실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진실성 여부 판별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진실이 아니면 무조건 명예훼손죄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언론이 자유롭게 숨 쉴 공간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법원은 진실성 여부를 따지는 대신 상당성 요건 충족 여부를 판별하는 것으로 명예훼손 책임의 인정 여부를 결정해왔다. 즉, 보도 당시에 보도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추후에 해당 내용이 허위로 밝혀진다 할지라도 언론에게 명예훼손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상당성 요건이다.
이러한 위법성 조각사유가 언론의 미투 보도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우선, ‘공공의 이익’ 요건은 쉽게 충족된다고 하겠다. 언론의 미투 보도에 담겨지는 내용이 범죄사실에 대한 폭로이거나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발이라는 점에서 공적 사안에 관한 보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공공의 이익 요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형법 제310조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법원은 행위자의 주요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부수적으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더라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보고 있다.7) 또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 사회 그 밖에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특정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된다.8) 한편,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형법 제309조)과 사이버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 제70조)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을 범죄성립의 추가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은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언론의 미투 보도에 대해 ‘비방 목적’이 인정되거나 공공의 이익 요건이 부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미투 보도에서 명예훼손 책임을 판별하는데 핵심이 될 부분은 상당성 요건 충족 여부이다. 상당성 판단 기준은 크게 (1) 언론이 보도 시점에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했는지와 (2) 보도 내용의 진실성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따라 뒷받침되는지로 나뉘는데, 이러한 기준들과 더불어 법원은 보도 매체의 특성, 신속성을 요하는 보도인지, 취재원이 누구인지, 사실 확인에 어려움이 있는 지 등의 요소를 추가적으로 고려하여 상당성 여부를 판단한다. 또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공적 인물 또는 공적 관심사안에 대한 보도에서는 상당성 요건을 따지는 기준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특히 보도의 대상이 공직자와 언론사인 경우에는, 문제가 된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상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적 관심사안에 대한 보도라는 미투 보도의 성격상 미투 보도에 있어서는 법원의 상당성 잣대가 다른 유형의 보도에 적용되는 것 보다 덜 엄격할 것이라 유추할 수 있고, 특히 공직자 관련 미투 보도에 있어서는 더욱 더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성폭력 범죄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할 때, 피해 사실을 증명해 줄 제3자나 피해 사실을 뒷받침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취재기자는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에 주요하게 의존하여 폭로된 내용의 진위여부를 판별해야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복수의 피해자가 한 명의 가해자를 지목하는 경우나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시인하는 경우에는 진위여부 판별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본인을 드러내면서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대단한 행위’라는 점을 감안, 성폭력 피해자의 고발은 다른 종류의 제보보다 신빙성이 높다고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법원은 미투 보도의 상당성을 판별함에 있어 미투 고발이 갖는 고유의 속성과 맥락, 사실 확인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언론은 불필요한 소송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미투 관련 보도에서 다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취재과정에서 기자는 통상적인 취재에서와 마찬가지로 미투 고발 내용의 진위 여부 판별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만, 취재과정에서의 질문이 미투 고발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유발하는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되며, 가해자의 반론을 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원 정보가 가해자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미투 보도가 불러올 파장에 대해 미투 고발자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보도 시점 이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미투 고발자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등과 연결시켜주는 것도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취재의 결과물인 기사에 혹은 피해자와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성폭력 범죄의 수법과 과정, 양태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진술을 보도하거나 관련 답변을 요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유발하는 비윤리적 보도 방식일 뿐만 아니라, 자칫 불필요한 논란과 법적 분쟁을 야기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경우 과거에 있었던 트라우마 경험에 대한 세부적 기억이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한 부분에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데, 보도기사 혹은 인터뷰 답변 내용에 일부 부정확한 진술이 담길 경우 미투 고발 내용의 진위가 의심받게 될 수도 있고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책임까지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종석 사건 판결에서 드러났듯이 성폭력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방식의 보도에 대해서 언론은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언론은 개별 성폭력 범죄, 특정 가해자와 피해자에 집중하는 파편화된 보도가 아니라 미투 운동이 제기하고 있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개선책 제시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내는 보도를 지향해야 한다. 이는 언론이 미투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책임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지는 방법이자, 2018년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문화 혁명에서 언론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부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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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언론이 간혹 ‘미투’를 ‘나도 당했다’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번역은 피해자를 대상화하면서 무력한 느낌을 전달하고 자칫 미투 운동의 본질을 벗어나 성폭력 사건에 논의를 집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혁명이라고도 지칭되는 미투 운동이 사회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적극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미투’의 보다 적확한 번역은 ‘나도 고발한다’ 혹은 ‘나도 말한다’라 하겠다.
2) 일례로 닷페이스는 조직 내 성희롱 피해를 고발한 후 징계, 따돌림, 비난을 받아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 영상을 제작했다(닷페이스, 2018.2.15. “미투는 없었던 게 아니라, 사라지고 지워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3hyiQ64LwA0).
3) 해외의 경우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고,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또한, 제20대 국회에는 미투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이전인 2016년도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관련 조항을 폐지토록 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금태섭 의원 대표발의와 유승희의원 대표발의로 각각 제출된 바 있다.
4) 헌재 2016.2.25. 2013헌바105, 2015헌바234(병합). 이 결정에는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이 ‘비방 목적’을 추가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합헌 결정의 중요 근거 중의 하나였다.
5) 2018년 3월 9일에 제출된 진선미의원 대표발의안(의안번호 12397)은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다음과 같은 단서를 신설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다만, 적시한 사실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제2호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사실에 관한 경우 2.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제1항의 성폭력범죄 피해사실에 관한 경우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제2호의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피해사실에 관한 경우”
6) 2018년 3월 16일에 제출된 표창원의원 대표발의안(의안번호 12510)은 형법 제307조 제1항에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를 추가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러한 요건을 추가함으로써 ‘성폭력 피해자들의 정당한 문제제기가 범죄로 치부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입법 목적이라 밝히고 있다.
7) 대법원 2005. 10. 14. 선고 2005도5068 판결; 대법원 2011. 11. 24. 선고 2010도10864 판결;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도10392 판결 등
8) 대법원 2012. 1. 26. 선고 2010도8143 판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