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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Feb 13. 2023

빈 페이지를 만들어두고, 시간이 흘러 채워둔 글 하나

2막 x장

나는 이 공간을 지배하는 평화로움 속에서 그냥 흔적 없이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책을 읽다가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평화로움 속에서 나의 자취 따윈 감추고 사라져버리고 싶은 욕망! 아무 상관도 없는 이 글귀 위로, 어둠 속에 가려져 춤을 추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 장면에는 누군가가 내미는 손을 따라 어둠으로 수줍게 들어간다. 주변 따위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뱅글뱅글 도는 환희 속에서 서로의 눈동자만 바라본다. 초승달처럼 웃고 있는 상대 앞에서 나는 그날까지도 품었던 고민과 서글픈 감정 따윈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그 때에 이르면 왜 원시 벽화에서조차 춤이 그려있는지 깨닫는다. 결국, 환희다. 당장에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환희가 바로 그곳에 있다. 그 용광로 같은 환희 속에서 나의 상념 따윈 녹아 자취를 감추고 희열감만이 여운으로 남는다.

마약에 중독되면 현실이 더 거지같이 느껴져 갈수록 더 마약을 찾는다고 한다. 나는 이 춤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 약간은 두렵기까지 하다. 음악이 끝나고 서로만 존재하던 어둠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실은 없어지지 않았던 현실 세계에서의 상념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주는 고작 3분의 시간, 가벼운 인사 후 결국 다른 인연을 찾아 떠나가는 상대를 말없이 바라보는 그 시간에, 떠나갈 모든 것들에 대한 여운과 허무함마저 떠올리게 된다. 담배라도 필 줄 안다면 담배 한 개비의 연기에 모든 걸 털어버리기라도 하겠지만, 이 머저리는 이때까지 평생 담배 한 대 피워 본 적 없어, 그저 보이지도 않는 한숨만으로 대체할 뿐이다. 형상은 점점 사라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나를 숨기고 있다가 다시 몸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청한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3분의 시간 동안이라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꼭 그만큼의 허전함이 마음 한쪽을 차지하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위안은 3분의 흥겨운 음악과 어색한 춤과 멋쩍은 미소로 만족하면서.

나는 춤을 추러 온 거지 위안을 받고자 온 게 아니라고 되뇌지만, 결국 이곳에서 춤이 아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위안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실낱같은 위안을 느끼게 될 때면, 가벼운 인사와 미소 뒤로 ‘나는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라고 생각하다가 찬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붙잡았던 마음이 조금 무너져 버리고 만다.

‘생활 체육처럼 생각하자. 마음을 주지 말자. 평범하게 조용히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자. 뭔가를 바라지 말자. 언제든 무가치하다고 여기게 될 때 놓아버릴 수 있도록 그렇게 지내자.’

이제는 세찬 바람에도 제법 버틸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약간에 따스함에 녹아버리고 말았다. 약간의 따스함, 약간의 행복, 약간의 희망이 되려 사람을 서글프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야 말았다. 또다시 깨닫고야 말았다.


아! 이 모든 글은 거짓이다. 나를 어떻게든 속이고 포장하고 있는 글이다. 나는 사랑을 갈망한다. 지독히도 갈망하면서도 아무것도 나서지 않는 거짓으로 똘똘 뭉친 어느 머저리의 글일 뿐이다. 지독한 겁쟁이다.


They always say that time changes things, but you actually have to change them yourself. - Andy Warhol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변한다고들 하지만, 나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 앤디 워홀

아무것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실은 그러함에도 누군가가 운명처럼 나타나, 나를 이끌고 일으켜 세우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소망을 품은 채 살고 있었다. ‘얼어붙은 내 마음을 깨뜨려 줄 어느 누군가가 나온다면, 그 속에 존재하는 다 꺼져가는 불씨는 다시 화르르 타오를 텐데….’ 라고. 그 소망이 헛된 것이라는 것조차 이미 알고 있는데도 나는 아이처럼 꿈을 꾼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야 이 빈페이지에 뭔가를 채워 넣는다. 어쩌면 아무도 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보물찾기처럼 꼭꼭 숨겨놓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발견하게 될 것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누군가가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런 서글픔마저 말없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읽기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날 향해 미소지어 주기만을 바라면서…. 그래서 그 미소 속에서 이 춤이 조금 더 신이 나길 바라면서. 이 글을 통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뜻모를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저 아주 조금 더, 전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문득, 아주 오래전 썼던 시 한편이 떠올라 여기에 두고 간다. 그 때에도 행복은 없다고 여겼구나 싶지만, 실은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행복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느 이는 오후 3시를 일컬어

나태와 초조의 시간이라 했다.

새벽 3시, 나는 밤 잠을 청하지 못한 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생각하고 있을까

새벽 3시의 나는 모든 나태와 초조 속에서도

이 시간의 습관과 어둠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이리저리 몸을 뒤척일 뿐이다.

차라리, 어느 이가 말한 오후 3시의 그 한탄처럼

아직도 나는 행복해질 거라는 나쁜 믿음이라도 있었더라면,

온갖 나태와 초조 속에서라도 해를 보며 살아갔을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뒤척이며 한숨 쉬는 일뿐이다.

다시 불을 켜, 잡히지 않는 책과 씨름할까 하다가도

허망한 마음이 앞서, 어둠 속에서 공허를 맞이한다

지금 나는 잠들지 못하고

허기짐과 같은 공허를 지워가는 중이다.

허섭쓰레기 같은 무력감을 느끼며

무언가 남겨보는 중이다.

새벽 3시의 나는, 더 이상 행복하리라는 믿음의 가면은 벗어버리고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 있다.

새벽 3시에도 역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들장 같은, 마음을 나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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