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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02. 2023

한동안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더니 사랑인 걸 알았더라.

한동안 수술로 춤을 출 수 없는 자의 후기.

한동안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더니 사랑인 걸 알았더라.


사랑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간절히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아마도 몇 주간 춤과 떨어져 있던 바로 지금이 춤에 대한 사랑이 가장 가득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한가운데 뭔가 맺히는 것 같은 이 마음을 낭만적인 춤을 통해 털어내고, 또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곤 했는데, 이제는 마음을 씻겨낼 게 없으니 쌓여가는 것만 잔뜩이었다. 아니 되려 쌓여간다는 표현보다도 쌓아두었던 어떤 따뜻한 마음들이 사라지고 빈 공간만 차츰 넓어져가는 듯 했다. 한숨 크게 들이쉬면 그 공간 안으로 찬 공기가 들어왔다 나갔고 나는 그 안에 있는 돋보기처럼 볼록하게 얼어붙은 우울감을 이따금 깊게 들여다보곤 했다. 얼마 전까지 나의 세상은 갈색과 갈색에 가까운 노란빛과 그리고 그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색을 가진 얼굴들이 웃음을 띠며 뱅글뱅글 공존하는 세상이었다면, 지금은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빛이 방을 온통 적시고 이윽고 나의 이불 위로 음습이 올라와 모든 것들을 그 빛 안으로 숨겨버리곤 했다. 더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코끝과 발끝으로 느껴지는 추위는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나는 사람이 그리운 것일까? 이 춤이 그리운 것일까? 춤을 생각하면 사람이 떠오르고 사람을 떠올리면 그녀와 닮은 음악이 떠오르고 그러다 가을을 닮았던 갈색의 바닥이 떠오르고 별을 닮은 천장의 등불이 떠오른다. 모든 것들이 모여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나면, 우리의 뱅글뱅글 빠른 움직임에 모든 것들은 잔상만을 남기고 앞에 있는 사람만을 보게 된다.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의 비트에 맞춰서 그 사람의 얼굴과 동작만을 보게 된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 中>


이렇게 선명하게 새겨진 시간의 점으로 인해 수십 번, 수백 번이고 저 장면은 재생된다. 내 마음이 서글픔으로 가득 차 언제라도 스스로 추락하기를 소망하는 바로 이 순간에 저 기억들이 나를 굳건히 일으켜 세워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리움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나 자신을 무감각 상태로 만들고, 마음을 죽이고 살아갔으면 하게 된다. '어려운 일 아니잖아? 무감각해지는 것.'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 계획이 조금은 성공한 것 같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음악을 틀다가 나도 모르게 들리는 스윙 음악이 들리면, 몹시 한가해진 틈을 타 카페로 들어가 새로 올라온 글에 그리운 이들의 이름이 있나 둘러본다. 새로 올라온 건 아무것도 없지만, 하루에도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한다. 생각할 틈을 주면 안 되는데, 틈만 나면 빠져나오는 생각들이 좋은 것일수록 그 후폭풍은 더 크다.


가장 행복한 것들을 그리워할 때 느끼는 배신감으로부터 다시 또, '나 같은 놈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며 의심마저 하게 된다. 어느 날 밤, 단 한 번도 확신해본 적 없던 바로 그 의심이 가장 행복했던 것들로부터 그렇게 쏟아져 나온다. 지독한 패배주의…. 바로 이것이 이따금 날 옹졸하게 만든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아니 끔찍이도 나쁜 것이었다면 그리워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을 텐데…….'

이젠 어쩌면 일생 동안 못 잊을 것이 되어버린 건가 하는 생각에 당장 서글픔이 앞선다. 아예 다시 못 만나는 것도 아닐진대, 나는 참을성 없는 아이처럼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렇게 내 인내가 한계에 이르러 넘칠 것 같으면, 그냥 불도 켜지 않은 채 익숙한 음악을 틀어 놓고 가장 즐거웠던 낭만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홀로, 천천히, 조용한 스텝을 밟는다.


그 정도로 좋아하진 않는다 생각했는데,

한동안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더니

사랑이었구나, 많이 보고 싶구나.


한 발자국 간신히 디딜 때마다,

그 흔한 깨달음이 날 서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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