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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06. 2024

I call my sugar "Candy".


1.


“여행을 가야 해서, 1주 차만 도우미를 대신해줘.”

“알겠어. 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으니까. 뭐를 하면 되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출석을 확인하고 이름표를 건네주고 연습 사진과 영상 찍어주면 되는 일이니까. 수술한 다리 상태 때문이라도 이번까지는 쉬고 다음부터 수업에 참여할 요량이었던지라, 모처럼 한가해진 토요일에 이들을 도와줄 시간은 충분했다. 



2.


보호대 없이 한 동안 서 있거나 걸으면 내 다리가 아닌 것처럼 이질적인 느낌이 들다가도 계속 심기를 건드는 가볍지만 불쾌한 통증이 계속 왔다. 춤을 추거나 수업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이러한 불편한 기분이 나를 계속 주저하게 했다. 


생각해보면, 발바닥에 박힌 티눈보다도 작은 나무 조각조차도 아프고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들은 우울한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아직은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사소한 무릎의 통증도, 마찬가지로 내 어두운 감정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안 좋은 기억들, 우울한 인상들, 가지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누구도 탓할 수 없지만, 탓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싶은 기분들, 그러나 그러면 안 되는 걸 알고 있기에 조용한 침묵과 작은 미소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하루를 차분히 보내곤 했다. 일시적인 감정의 기복이라고 믿으면서. 말이 없는 춤으로 감춰가면서.



3.


수업이 끝나고 뒷풀이 장소를 섭외하고 그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매번 빠닫을 했던 터라, 실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밖으로 나온 건 오랜만이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무슨 말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뭐, 그곳에서 왁자지껄 웃으며 말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름 괜찮다 싶었다. 다만, 그 날 따라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나 자신이 부자연스러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이 들 땐 대개 어떤 형태로든 어떤 실수를 더 쉽게 하기 마련이었다. 차라리 이럴 때는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는 게 좋았다. 웃는 소리로 빈 공간 모두를 채울 것 같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는 느낌이 되려 부자연스러운 듯한 느낌도 이따금 들었지만, 그것조차 좋은 관계와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기에 나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많이 웃었고 또 웃으려고 노력했다. 


“쌤, 가지 마세요! 더 함께해요!” 


서울에 살아서 일찍 가봐야 한다던 쌤은 자리에 일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 술자리에 앉았다. 

‘저 친구들은 새벽까지 함께 있을 생각으로 저렇게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나의 책무는 오늘 하루를 도우미로서 충실히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새벽 한 두 시가 되자, 쌤의 손을 잡았던 많은 이들이 자리를 뜨고, 소수 정예의 사람들만이 2차를 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 4시까지 덤덤하게 뒤풀이를 했다. 1차의 왁자지껄함과는 달리 2차는 조금 진지한 분위기였다. 동호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어떤 일들에 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일까지. 적당히 취한 기분과 조용해진 분위기, 신나는 스윙 재즈보다 조용한 재즈가 좀 더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4.


이렇게 쌤들과 새벽까지 함께 한 적이 있던가? 기억을 떠올려보면, 지터벅 이후로 처음인 듯했다. 지터벅 이후에는 거의 외부 쌤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터벅 때 함께 했던 사람들만 있던 것도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1차만 하거나 2차를 해도 일찍 끝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춤에 좀 더 몰입하게 되고 몰입을 하면 할수록 토요일 밤의 열기를 오로지 춤에 쏟고 싶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매번 ‘빠닫’을 하고 뒤풀이에 참석하고 나면 쌤들은 이미 자리를 뜨고 없거나, 혹은 막차를 탈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술보다 토요일에 출 수 있는 이 춤이 좋았을 뿐이다. 그 밖의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나이는 그래도 될 나이였다. 모든 것들을 다 거머쥘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만한 나이였다. 뒤풀이에 늦게 참석했을 때, 남아 있을 술이 있다면, 그 한잔은 그저 이미 초라해져 버린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릴 줄 미리 알고 계셨던 하늘 위의 그분을 위하여 마시면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진 이 귀중한 시간만큼은, 음악이 들리는 이 시간만큼은 나의 어색한 몸짓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그래서 스스로 좀 더 자유로워지는 데 쓰기로 다짐했었다. 


그렇기에 새벽까지 함께 있어 주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노력이었든 혹은 진짜 즐거워서 즉흥적으로 밤을 지새웠든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뒤풀이에 있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인 것보다 ‘함께’라는 시그널을 전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신호는 그 뒤에도 계속 반복이 되었다. 그 다음주 수요일에도, 토요일에도, 그리고 졸업 공연 때까지도. 



5.


‘사랑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그것을 정의할 말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성 관계의 불타는 사랑을 떠올리면서 이야기할 것이고, 다른 이들은 어머니나 신의 자애로움을 떠올리며 이야기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오래 두고 사귄 벗처럼 된 연인을 보면서 사랑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 실제로 어느 사회 심리학 연구에서는 설문을 통해 사랑에 대해 정의하는 여러 단어를 뽑아냈는데, 정리하여 보니 크게 세 형태로 구분된다고 했다. 바로 ‘열정, 헌신, 신뢰’였다.


사실 이건 이성 혹은 동성 간의 사랑만을 두고 이야기할 건 아니었다. 그 까닭은, 이따금 우리는 여러 관계에서도 사랑의 여러 키워드에서 적용되는 것과 그것을 암시하는 여러 신호를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그널, 수업과 이어진 뒤풀이에서 바로 그 신호를 느꼈다고 하면 과언일까? 수업의 열정과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새벽까지 함께 하고 또 바쁘실 텐데도 수요일까지 먼 곳에서 오겠다고 말하는 헌신, 그리고 실제로 그 말들을 지켜내면서 쌓여가는 신뢰. 새벽 4시 넘어서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던 그 날을 떠올리면, 실로 그러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쌤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그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6.


어떤 선택과 고민은 때로는 칭얼거림의 다른 말이라고 본다. ‘다른 조금 더 생각해줘. 나를 조금 더 이해해줘. 나도 잘 모르는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뭔가 서글퍼지는, 원하면서도 동시에 원망하는 그런 마음을 헤아려줘.’ 등등…. 어른은 동시에 어린아이다. 고급스러운 언어로 포장하지만, 그 안에는 어린아이가 자리 잡고 있다. 칭얼거리고 또 울고 싶은데 소변을 참듯 꾹 참을 뿐이다. 


어쩌면, 나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1주차가 지났음에도 수업을 들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말할 때, 어쩌면 내 마음에는 ‘조금만 나를 헤아려줘. 너와 함께 하기를 원해.’ 뭐, 이런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른들의 고급스러운 말로는 함께할 ‘명분’이라는 것, 뭐 그런 것을 필요로 했던 것일까?


“형, 같이 해야지. 얼른 신청해.” 

“에이, 오빠, 같이 해요.” 

“너 안 할 거야? 얼른 같이하자.” 


뻐근함, 미미한 통증, 그리고 보호대의 압박감이 한 두달 전보다 덜해진 상황에도 나의 아픈 상황은 이에 대한 응답을 계속 부정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쌤들이 늦게까지 있는 게 인상이 깊었다고 하더라도 단지 열정, 헌신, 신뢰의 가능성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고 그들이 이러한 말이 하나, 둘, 셋, 넷… 안쓰러워하는 얼굴과 밝은 얼굴과 반가워하는 얼굴과 진지한 얼굴로 물을 때, 그 하나하나가 눈처럼 쌓여 부정적이던 대답과 표정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7.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한다는 말은 얼마나 좋은가, 여러 이유를 대어 종이 한 장을 온통 좋아한다는 말로 뒤덮어도 그 말은 질리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말처럼 설레는 게 또 있을까? 2달간의 수업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리고 아니 이미 가득하면서도 더 좋아지는 것들이 많아지는 세상이었다. 좋아할수록 더 좋아지는 것들. 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좋아하는 것들을 향해 온몸을 다해 으스러지도록 껴안아 주고 싶다가도, 어른스럽지 않다는 생각에 짐짓 점잖을 떤다. (지금이라도 연기나 해볼까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질 것 같은 쌤들과 함께 좋아하는 스윙 댄스 수업을 듣는다. 좋아하는 째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좋은 느낌의 그립으로 좋아하는 턴을 한번 하고 좋아하는 그 눈을 바라보며 좋은 웃음을 짓는 상대가 좋아진다. 그 좋아지는 기분에 상대를 바라보며 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본다. 배운 것들을 신나게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몸풀기로 배웠던 여러 스텝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기도 한다. 그러다 음악이 끝나고 나면, 너무 어른스럽지 않다는 생각에 또다시 점잖을 떤다. 아무도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영화를 찍으면, 진짜 금방 천만 배우가 되는 거 아닐까 싶다. 



8.


https://youtu.be/E6G8NTkoy9E


"Candy"

캔디

I call my sugar "Candy"

난 내 사랑을 '캔디'이라고 불러

Because I'm sweet on "Candy"

왜냐면, 나는 '캔디'를 좋아하니까

And "Candy" is sweet on me

그리고 '캔디'도 날 좋아해.


She understands me,

그녀는 나를 아껴,

My understanding "Candy"

나를 아껴주는 '캔디'

And "Candy"'s always handy

그리고 '캔디'은 항상 내 곁에 있어

When I need sympathy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

I wish that there were four of her

그녀가 4명이었으면 좋겠어

So I could love much more of her

그래서 훨씬 더 사랑할 수 있게 말이야.

She has taken my complete heart,

그녀는 내 마음을 모두 가져갔어,

Got a sweet tooth for my sweetheart

난 내 연인을 위해 달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지.


"Candy"

'캔디'

Its gonna be just dandy

정말 멋질 거야

The day I take my "Candy"

내가 나의 '캔디'을 가질 그 날

And make her mine all mine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거야.

Mine

나의 것으로.



저곳에서 저들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것들이 캔디가 되어버린다. 가지고 싶은 욕심이 나는 그런 캔디가 되어버린다. 그 달콤함에 취해 더 즐겁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사랑하면 더 알고 싶어 하는 법이니까. 수업이 끝나고도 거울 앞에 서서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하게 된다. 내가 받은 ‘캔디’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으니까. 이번 생에는 진짜 어른이 되긴 그른 듯하다.



9.


몇 살을 더 먹으면 진짜 어른이 될까? 어느 시의 구절처럼,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을 겪고 나야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그러한 밤에,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웃어주고 울어줄 수 있는 시기가 되어야, 난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어느 밤에 혼자일 때에는 외롭고 또 다른 밤, 혼자가 아닐 때는 외롭지 않은 척을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음을 숨기는 데에는 익숙해진 반쪽짜리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함께 노래를 듣고 함께 춤을 출 때는 그 마음의 엉킨 실타래가 풀리고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솔직한 마음들이 어린아이처럼 드러나고 만다. 어린아이와 같은 해맑은 미소를 띤 마음들이 드러난다. 캔디와 같은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슬픔마저도 달디단 리듬에 버무려진 밤양갱이 되어버린다. 


어느 날 동생은 이 노래를 들으면 슬프다고 했다. 엘라의 노래였는지, 혹은 조니의 노래였는지 모르겠다. 달콤한 이 노래에 슬픔을 붙이고 나서, 나도 조금은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 함께 차를 타고 내려가던 그 장면과 함께 슬픔이 떠오른다. 어쩌면 내 동생에게는 매번 먼 길을 올라와서 행복하게 춤을 추고 내려갈 때 느껴지는 그 여운과도 같은 슬픔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캔디도 그러할까? 달지만 녹아 없어질 캔디처럼 입속에 감도는 여운으로 남아, 되려 서글퍼지는 날들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지난 두달을 회상하면서 문득 이 노래가 떠오르고 내 동생의 그 덤덤하나 조금은 서글펐던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일까? 기쁘고 행복한 것들은 되려 슬픈 법이다. 



10.


좋은 만남과 아쉬운 헤어짐의 반복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우리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그 안에서 함께 연습했던 날들은 칼을 뜨겁게 달구고 식히며 단련하는 것처럼 춤에 관한 우리의 무기를 좀 더 날카롭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아주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11.


그래, 나의 수업은 캔디였다. 

이 춤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든, 달콤한 캔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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