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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를 구성하려면, 음악을 먼저 정하는 게 좋아요. 음악이 정해져야 그에 맞는 안무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전에 단톡방에 2개씩 올려서 그중에서 투표로 선택했어요."
응원하러 방문한 식식과 남맹 커플은 우리에게 이러한 조언을 주었다. 팔뤄가 1절, 2절 구분해서 하기로 방향을 정했지만, 그에 맞는 음악을 정하거나 하진 않았고 주차별로 배웠던 것들만 며칠간 연습했기에 다들 말하진 않았지만, 약간의 불안감이 있는 듯했다. 졸업 공연의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어떤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이었다.
과거에 쌤들이 안무를 짜 주었을 땐, 일주일도 남지 않았어도 안무를 외우기만 하면 끝이니 불안할 게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음악을 선택하고 안무를 짜는 것부터 어떠한 것도 완료된 게 없었다. 더군다나 수업 때 배운 것들을 팔뤄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약간 착오가 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졸업 공연을 한다면, 공연을 위한 안무와 그에 따른 연습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제한된 시간에 기본기를 다진다고 주차별 안되는 것들을 며칠간 연습하고 있던 것이다. 시험이 있다면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하듯, 졸공이 있다면 졸공을 위한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게 당연함에도 마치 시간이 많은 것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음악을 찾고 그에 맞는 안무를 넣는 게 우선이지.'
이 당연한 게 우선되어야 할 건데, 게으르게도 아직은 괜찮겠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실은 어쩌면, 기존에 비록 안무를 1주 차 음악에 맞춰 영상을 짜깁기 한 것일지라도 뭔가 음악에 맞춰 안무를 구성했다는 착각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생각해보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수정할 수도 있고 고쳐 나갈 수도 있다. 아예 이렇게 안 해도 상관없다.'라고 머릿속에서는 계속 생각과 다짐을 반복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관여한 것이 아예 사장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아쉬움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안무를 짜면, 그 안무가 내 새끼 같을 때가 있어. 그래서 조금이라도 고쳐지거나 삭제되면 불쾌함을 느끼는 때도 있지. 실제로 그걸로 많이 싸우기도 하고."
불현듯, 가까운 동료 하나가 오래전에 내게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선택했다는 것, 내가 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애착을 느끼게 되는 과정과 그게 거부되었을 때 마치 자신이 공격받는다는 느낌과 허탈함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 역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내 안에서 느껴지는 아주 흐릿하면서 뭔지 모를 멜랑콜리는 바로 그런 데에서 온 게 아닐까 싶었다.
주식시장에서 명언처럼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있는데, 바로 자신이 선택한 종목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안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좀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려면 때로는 난도질도 필요했고 버릴 것들은 버릴 필요도 있었다. 그보다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것은 함께 고민하고 연습할 사람들이고 그들과 함께 겪어나가는 과정이었다. 좀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사람들, 나뿐 아니라 모두가 서로 잘되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이들을 사랑하면 될 일이다. 좀 더 나은 것들이 나온다면, 이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짐했다. 유치한 생각 같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자, 조금 환기가 되는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