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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31. 2024

한여름 밤의 꿈이었으며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6)

6.

토요일 연습과 수업, 그리고 소셜, 일요일 연습, 그리고 월요일 연습은 어렵고….


실제로 졸공까지 실제로 연습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았다. 팔뤄도 많았고 해야 할 것도 생각보다 많았다. 리보가 나오지 않는 날에 나까지 안 나오면 아예 연습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 자신의 연습도 그렇지만, 팔뤄들 4명의 연습에 맞춰 리더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기존에 연습을 위해 비워둔 일정 이외에도 아예 가능한 모든 저녁 일정을 미루거나 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보통 저녁 시간을 할애해야만 하는 것들인데, 돈이야 나중에 벌면 된다고 생각하니 결정을 내리기가 비교적 쉬웠다. 지금 당장은 이 연습이 우선 순위였다. 다른 것보다 난 바로 지금이 중요했다. 


결정을 내리고 며칠을 연이어 연습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일어나 다리를 바닥에 딛는데, 왼발 뒤꿈치에 뭔가 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종아리나 아킬레스건 주변의 근육 등이 붓는 느낌은 예전에 종종 있었는데,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걸을 때마다 뒤꿈치의 고통이 올라와 계속 절뚝이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연습 어떻게 하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서글퍼졌다. 나이 탓을 하고 싶지 않은데, 나이를 먹어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동시에, 나 자신에 화가 나면서 오기가 생겼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건 날 강하게 할 뿐이야.' 이 또한 유치하다면 유치한 생각이지만, 이 다짐이 다시금 날 살아 움직이게 했다. 


“컨디션 괜찮아요? 몸살 난 거 아니쥬… ㅋㅋㅋㅋ”


그때 마침 임미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내 상황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 안무를 묻는 그녀의 말이 위안이 되었다. 그녀가 마음을 바꾸고 졸업 공연에 합류한 건 정말로 다행이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동작 순서 외우는 것도 힘들고 발도 꼬이쥬?”

“할만해. 너는 몸 어때?” 

“진도는 쭉쭉 나가는데, 못 따라가서 조금 스트레스에요. 오빠도 연습 많이 해서 좋다고는 하는데, 잘 안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까 봐….”


나의 첫 쌤이었던 그녀는 2년이라는 동호회의 시간 동안 가장 처음 알게 된 사람이며, 친밀하게 여기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스스럼없이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같은 공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안정감을 느낄만한 사람이었다. 심리적인 것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다른 팔뤄 친구들과는 달리 경험이 월등히 많았고, 6주간의 중급 수업 동안 나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사람이라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늘 말하지만, 수업 내용과 루틴의 거의 모든 것을 암기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팔뤄들을 적절하고도 무례하지 않게 코치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문득 그녀가 혹시나 자기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하여 혹시나 부담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대화를 해보니 우리보다 배 이상 경력이 긴 팔뤄 경력자로서 좀 더 잘 도와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러한 마음만큼 되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 등을 토로했다. 그녀가 어떠한 마음을 먹고 다시 합류했는지는 모르나, 이런 저런 대화중에 그런 마음이 엿보여서 미안하고 그리고 고마웠다. 


임미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찾아서 하고 있었다. 누구는 이끄는 역할을, 누구는 안무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누구는 적절히 의견을 내는 역할을, 누구는 구성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누군가는 따라가는 역할과 전체를 예쁘게 꾸며주는 역할을, 그리고 누구는 뒤에서 정리하는 역할을. 각자 서로의 역할이 무엇인지 주장하거나 요구하기보다 조심스럽게 더듬거려가며 찾아가고 있었다. 


가령, 루시는 생각보다 더 욕망(?)의 팔뤄였다. 와우포인트를 비롯하여 여러 안무들 사이사이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계속 생각했고 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다니는 의상에 대한 고려에 신경을 써주는가 하면, 동생들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면서 아프고 힘든 와중에도 어떻게든 참여했다. 은근 개그캐(?)인 덕분에 팀에 강력한 윤활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리보는 또 어떤가? 역시 오랜 경력과 더불어 여러 안무를 많이 짜본 경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음악을 듣고 표현하거나 음악과 안무에 따른 전체적인 구성을 바라보는 능력은 우리 중 제일이었다고 본다. 하로는 대장이었다. 그녀는 총대를 메고 졸공의 방향을 전두지휘했다. 졸공 준비 기간동안 보였던 그녀의 모습에 대한 칭찬은 몇 번을 해도 아깝지 않다. 임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안무를 보고 우리들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쌤들이 없을 때에도 교정해줄 수 있는 사려깊은 선생님이었다. 아무리봐도 그녀의 능력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오빠! 이번에 배운 게 많아. 내가 가장 어린데도 다들 의견을 따라주는 것도 그렇고. 각자 다들 뭔가를 해주려는 것도 그렇고.”


연습이 끝나고 집이 같은 방향이라 차로 태우고 가면서, 하로는 이런 말을 건넸다.


“다들 네가 노력하는 거 아니까 그렇겠지. 다들 사회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고 이미 경험을 해봤기에, 뭔가를 이끌어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고생스러운 거라는 것도 알고. 네가 그걸 맡아서 해주니 고마운 거지.”


물론 사람의 마음이 이따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도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마음을 다스리다가도 파도처럼 밀려올 수도 있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유치하게나마 웃을 일을 만들었던 건지, 함께 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던 것인지, “하하!” 하고 웃어버렸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은 각자 나름의 유머 감각이 있다는 점과 더불어 힘들 때조차도 그것에 웃을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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