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Pass Over The Pass of the Basics2
어느 정도 연습이 끝나고 다시 소셜을 했지만, 좀처럼 즐거운 마음이 올라오지 않았다. 흥이 올라오도록 막 웃어도 봤지만, 마음이 잡히질 않았다. '돌리고, 돌리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누나, 춤을 추는데 흥이 올라오질 않네요."
"이게 흥이 안 올라온 거야? 충분히 올라온 것 같은데? 그만 신나도 될 것 같은데?"
나의 뜬금없는 말에 넬리님이 웃으면서 반문을 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희열이 없었다. 뭔가가 쑥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흥의 불씨가 조금이라도 지펴질까 봐 쉬지 않고 춤을 췄다.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춤을 췄다. 하지만 한번 꺼진 마음은 쉽게 불붙지 않았다.
‘소위, 춤태기라는 게 나한테도 오려는 걸까?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이 좀처럼 솟아나지 않았다.
'이런 시간에 차라리 다시 기본 바운스와 스텝부터 점검해보자.'
소셜은 잠시 미뤄두고 잠깐 혼자 연습을 했다. 문득 린디합에 처음 발을 디디던 시절, 춤추는 게 어렵고 흥도 올라오지 않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춤이 좋았지만 동시에 상대와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벽곰팡이마냥 시간을 흘러 보내기가 아까워 거울 앞에서 연습에 몰두했었다.
'다시 초심으로 가자. 깝죽대지도 말고 감정의 변화를 춤태기랍시고 그런 태도로도 만들지도 말고. 다음부턴 무얼 어떻게 연습할지도 다시 적어봐야겠어. 한동안 안 했더니 다 까먹고 있었네.'
가빠진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조바심도 아직은 줄일 수 없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결심을 하자 눈 앞에 펼쳐진 자욱한 안개가 조금은 걷히는 듯했다. 오른발과 왼발도 구분 못 하고 장갑과 모자도 구분 못 할 때는 이제 지나야만 했다. (Ella Fitzgerald - Misty 가사의 일부 中)
'난 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만 연습한 사람은 무섭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무섭다.' - 이소룡
다시 거울 앞에 서서 복습할 때 항상 잠언으로 삼던 이 말을 속으로 삼켰다.
연습 후 다시, 빠닫을 하고 뒤풀이 장소로 갔다. 쌤들과 함께 수업을 들은 동료들이 보였다. 때마침 쌤들은 수강생들에게 피드백을 해주고 있었다.
한쪽 자리에 조용히 앉아 쌤과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다.
"쌤, 저는 어때요?"
"크리스님은 혹시 다른 춤 배우셨어요?"
"아뇨. 따로 배운 건 없어요."
그때 술자리가 여기저기서 쌤에게 물어보고 대화하던 터라 적절하게 한 사람과 진득하게 대화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나씨 쌤께서 해줬던 말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움직임 등이 깔끔하지 않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것 같다. (이것도 어쩌면 쌤의 말씀을 내가 그렇게 해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운동을 배웠냐는 질문은 여러 번 들었어도 다른 춤을 배운 적 있는지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왜 다른 춤에 관해서 물어보셨는지도 여쭙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대화가 계속되면서 물어볼 기회를 놓치고야 말았다.
이날은 오랜만에 동생이 우리 빠로 놀러 온 날이기에,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는 이야기, 춤 이야기, 그리고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 내일, 일요일이니까 출빠 가자. 가서 신나게 놀고 오자.”
조금은 머뭇거리다가, 알겠다고 했다. 머뭇거린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런 기분으로 가면 즐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다른 분위기에 있다 보면 흥이 다시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기대가 뒤엉켜 있었다.
“형, 내일 연습하자.”
동생이 오늘날이면 종종 이렇게 연습실을 잡고 이런저런 솔로 재즈 무브나 라인 연습을 하곤 했다.
“무슨 연습? 하고 싶은 거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일단 가서 아무거나 해보게.”
“오! 좋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연습실이 있어.”
휴대폰으로 부리나케 검색해보니, 오전 9시에서 11시까지 예약할 수 있었다.
“9시에 일찍 일어나서 연습하자.”
“너무 이른데? 그냥 돈 내고 가까운 곳 쓰자.”
“무료 있는데, 뭐하러 그래. 내일 일찍 일어나면 되지.”
“그래 그럼.”
다음 날이 되자, 밤사이 폭설이 내려 바닥이 미끄러운 상태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일어나 연습을 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형제간에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오전 연습을 마치고 저녁이 되자, 우리는 서울로 차를 몰았다.
선릉에 있는 타임바에는 이미 사람들로 넘쳐났다. 많은 빠를 방문 하진 않았지만, 여러 지역의 빠들은 각자 자기만의 색이 있는 듯했는데, 타임바는 어쩌면 그중에서 가장 색이 없어 보이는 느낌도 들었다. 가령, 인천의 비밥바의 경우에는 플로어와 조명 때문에 갈색의 느낌이 강하다면, 합정의 소셜 클럽은 붉은 커튼 등으로 로트랙의 물랑가의 살롱에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해피홀의 경우는 뭐랄까? 반짝이는 화려한 조명과 깔끔한 플로어 때문인지, 약간은 파스텔 계통의 느낌이고, 사보이는 조금은 좀 더 어두운 느낌 때문인지 왜인지 몰라도 뭔가 좀 더 무게감이 있어 보였다.
그렇기에 타임바에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강남 근처의 비교적 큰 빠라는 입지와 일요일이라는 시간, 많은 이들을 오도록 한 빠 사장님의 여러 운영상의 노력 등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저마다의 개성으로 비치는 색의 느낌이 부담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개성이 강하면, 호불호도 있는 법이니까. 물론 이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빠에 들어서서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풀려는데, 조금 다리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나올 때도 ‘보호대를 차야 할까?’ 생각했다. 그래서 토요일도 보호대를 차고 수업을 듣고 소셜을 했지만, 그날은 눈앞에 보호대를 보고 있으면서도,
‘에이 괜찮겠지. 격렬한 운동을 할 때도 이젠 괜찮았고 수술도 잘 되어 이제 1년이 넘었는데, 설마 무슨 문제야 나겠어?’
라고 생각을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늘 그렇듯, 많은 문제는 순간의 방심으로 시작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바 안에서 여러 사람과 춤을 춰도 좀처럼 흥이 솟아나지 않았다. 그나마 해맑은 미소를 띠거나 자기표현을 잘하는 팔뤄와 춤을 추면 괜찮아졌지만, 그때뿐이었다.
잠시 계속 추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일단 3분의 음악 속에서 의식적으로 내가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시도해볼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우선 기존 수업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한번 연습해보자.’
가장 최근의 순서대로 영상으로 찍어놓은 졸업 공연과 수업 써머리들을 살펴보았다. 한때, 가장 많이 연습했던 동작과 루틴들이 있었다.
‘그래, 이때 이런 걸 했었지? 그때 주의할 점이 무엇이었더라?’
잊고 있던 기억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번에는 이러한 루틴들을 해보자.’
예전에 졸공으로 익혔던 동작과 루틴들을 쉐도잉 해보자, 다시 기억이 솟아났다. 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해보고 그다음 팔뤄와 춤을 추면서 시도를 했다. 그렇게 몇 번을 했지만, 아직도 흥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춤이라는 게 뭐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거 아닌가? 상대와 균형을 맞추며 즐겁게 흔들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지금 뭐 하고 있지? 잘 추는 것이고 뭐고 이 춤의 본질은 상대와 즐겁고 재밌게 추는 거잖아? 패턴 말고 재밌는 것들을 해보자고! 뭐가 있지?’
문득 지난 린디 입문 졸업 공연에서 했던 펙킹 동작과 루틴들이 떠올랐다. 졸업 공연을 도와준다고 함께 연습할 때에도 이 동작만 나오면 팔뤄와 서로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났다. ‘어떤 거였더라? 이걸 해보자. 나와 상대가 웃을 수 있는 걸 해보자. 나는 지금 내 춤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너무 안 웃고 있는지도 몰라.’
영상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깔깔 웃고 있는 팔뤄와 내가 있었다. 이번에는 이걸 해보자.
때마침 밝은 얼굴을 하는 팔뤄가 있었다. 노래도 졸업 공연 때의 노래와 비슷한 빠른 템포의 노래였기에 잘됐다 싶었다.
그분과 펙킹을 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상대도 내가 하는 걸 보자 웃고 따라 했다. 뭔가 상대와 교감을 하며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다른 뮤지컬리티도 해보자.
펙킹 하나를 시도하고 나자, 다른 뮤지컬리티 동작들도 덩달아 기억이 났다. 과거의 텐션은 아니지만, 뭔가 막힌 기분이 조금을 뚫리는 것 같았다.
“엄청 재밌게 잘 췄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이 기분이었어. 함께 추면서 느끼는 이런 희열감에 춤을 췄던 거야.’
노래가 끝나가 팔뤄가 신나 보이는 얼굴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했다. 이 흐름을 받아 연이어 춤을 계속 췄다. 그래, 춤이라는 건 이런 거지. 뭔가 한동안 잊고 있던 춤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몸으로 알아가는 듯했다. 다시 춤을 추니, 심장이 뛰고 몸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거야! 이런 마음으로, 다시 제대로 해보자.'
그 순간,
뚝, 뚝!
두 번의 소리가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무릎 쪽이었다.
‘뭔가 안 좋은데?’
잠깐 쉬면서 다시 무릎 주변을 만져보았다. 무릎 내측 인대가 좀 이상한 듯했다. 조금 쉬고 있으니 홀딩 신청이 왔다. 모처럼 즐거워진 기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또 신나게 춤을 췄다. 늘 그렇듯 불같은 마음과 사소한 방심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