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춤 한번 춰 볼래?”
대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후배와 생일 축하 겸 송년회 자리에서 대화를 나눴다.
“좋은 취미 활동도 할 수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어.”
“오빠가 추는 거, 남녀가 함께 추는 춤이잖아요? 아직 자신이 없어서 못 하겠어요. 소질도 없고요.”
“에이, 별거 아니야. 강습도 많고, 바로 가입하지 말고 원데이 클래스부터 해봐. 맛만 보고 결정해도 돼.”
1년 전에는 단호히 거절하던 녀석이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결국 원데이 클래스에 등록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녀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어제 춤춘 게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배워서 잘 추고 싶어.”
“배우면 더 재미있지. 잘 추면 더 재미있고.”
“너무 빠질까 봐 걱정이에요.”
“걱정하지 말고 해봐. 지금 가르쳐주는 쌤들이 경력도 있고, 성격도 좋아서 잘 배울 수 있을 거야.”
“응. 아주 편하게 잘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적당히 활발해서 좋았어요.”
“그럼 가입 신청하면 도우미들이 다 알려줄 거야. 댄스화는 이미 있는 걸 활용하거나 새로 살 거면 나한테 물어봐. 괜히 두 번 사지 않게 알려줄게.”
“스윙 댄스가 마음에 들어서 좀 진지하게 배우고 싶어요. 더 집중하고 싶어.”
옛 친구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게 되니 반가웠다. 새로운 연결은 언제나 설렜다.
이렇게 새로운 연결이 있는가 하면, 또 스윙 댄스와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게 되는 게 세상사지만, 때로는 아쉽기도 했다. 한동안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그 빈자리를 또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채웠다.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멀어지는 게 다반사인 듯했다. 자연스레 대화가 끊기고, 멀어진 관계는 다시 좁혀지지 않았다. 뭐, 익숙한 일이었기에 크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내버려 두면 떠나고, 내버려 두면 돌아오는 것이 관계의 흐름이었다. ‘그저 현실에 충실하자.’ 그것뿐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유입 인구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었다. 스윙 댄스는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유행이 지난 데다 코로나와 같은 격리 생활의 영향으로 단체 활동보다 개인 활동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았다. 소셜 댄스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았다.
“이미 소개로 올 사람들은 다 왔죠. 라라 랜드 같은 영화가 빵 터져야 다시 관심을 끌 텐데, 아니면 흥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한 동료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도 소개를 통한 대량 유입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다시금 스윙 댄스를 활성화하려면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서로 머리를 맞대봐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었다.
“형, 트리커레이션으로 가자.”
라인 워크숍을 홍보에 열을 올리던 동생이 말했다. 한 가지 라인만을 주제로 삼는 대신, 식당 메뉴처럼 여러 동작을 나열해 고르게 했더니, 신청자마다 원하는 것이 달랐다. 결국, 적당히 어렵고 강습에서 자주 다루지 않는 트리커레이션과 캐리비안 심샘을 메인으로 정했다. 추가적으로 자니비굿, 마마스튜, 빅애플 등 다른 동작도 간단히 문답식으로 다룰 계획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다행히 아직 잊지 않은 동작들이야.’
강습을 준비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동작 하나하나를 복기하며, 계속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주어진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강습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래서 정말 가르치는 게 최고의 공부이며 복습인 건가?’
내가 배운 것들은 대부분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모임을 주최하며 얻은 결과물이었다. 영어 공부도, 운동도, 독서도 그랬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일단 시작하면 두렵지 않다”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가르칠 때 느껴지는 두근거림이 더 컸다.
내가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과정은 항상 나를 더 성장케 했다. 이번 수요일에 진행할 마마스튜 수업도 그리고 명절 워크숍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동작들을 어떻게 설명할지, 카운트를 어떻게 나눌지, 참가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 자체 큰 배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스윙 댄스는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되고 있었다. 춤은 사람들을 연결했고, 비교적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되고 있었다. 또한, 매 순간, 다른 사람과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지루함을 깨고 열정을 되살리는 일은 춤을 배우는 데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도전이 나를 좀 더 설레게 한다.
수요일 마마스튜를 강습하기로 한 날이 오자, 아무래도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연습실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잡았다. 하는 김에 다음 주 월요일에 있을 워크숍 준비도 함께 할 생각이었다. 노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스쿼트 찰스턴을 어떻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기에 여러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특히 해외 영상들을 주로 찾아봤는데, 국내 영상들은 대체로 안무 전체를 카운트에 따라 시범을 보이는 영상이 많았다면, 해외 영상들에서는 스퀏 찰스턴 방법들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서 이제 막 스윙 댄스에 입문한 지터벅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방법들을 고려했다. 또한, 몇 번이고 카운트를 세어가면서 설명을 하고자 했다. 특히, 지난번에 넬리님과 함께 연습할 때, 스퀏 찰스턴의 카운트와 부기백 이전의 박수에 대한 카운트가 애매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카운트를 세며 세 번 이상 안 틀리자,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 다른 것들을 다시 연습했다. 일단, 트리커레이션과 캐리비안 심샘을 연이어 연습하고, 빅애플과 베이비 캔 댄스 등을 추가로 연습했다. 확실히 누군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런 관점으로 각 동작을 분석하거나 카운트를 맞춰가며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일찍 끝나서 7시쯤 빠에 먼저 들어가 추가적인 연습을 했다. 누군들 안 그러겠느냐마는, 기왕 강습하는 거라면 탁월하게 잘하고 싶었다. 조금 하고 있으니, 몬타나가 들어와서 인사를 건넨다.
“형, DJ도 요즘에 음악도 많이 듣는 것 같던데, 슬슬 해보셔야죠.”
“오, 그래. 한번 경험해보고 싶네.”
작년부터 한번 해보라고 계속 요청을 했었지만, 자신이 없기도 하거니와 DJ보다는 춤에 관한 관심이 더 컸기에 고사했지만, 동생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 덕분에 하나씩 도전해보는 용기가 생겼다. 워크숍을 잡았다고 말했던 그때(3주차-2 참조),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쌤들처럼 잘하면 모를까. 뭔가 많이 부끄럽네.”
“상관없어. 다시 말하지만, 이런 과정으로 선생님이 되는 거지. 쌤들이 강습신청하겠어? 형보다 못하는 사람이 하는 거야. 판단은 언제나 강습생의 몫! 기회 살피다가 못해. 나도 하고자 할 때 했으면, 디제이 못했어.”
시도조차 안 하고 기회 살피다가 놓친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왜 이리 부끄러움이 많아졌는가?
20대 때, 아니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언제부턴가 나서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대학 시절에는 나서거나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게 다반사였던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지?’나 도 모르겠다.
아무튼, DJ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자마자, 머릿속에는 벌써 DJ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셜이 끝나고 10시쯤 관심 있는 분들에 한해서 보강을 할게요. 연습을 더 하고 싶으신 분은 남아주세요.”
8시 30분부터 9시까지 30분 동호회 무료 강습이 끝났지만, 그 시간에 마마스튜를 다 배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10시 이후에 함께 연습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10시가 되어도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않았고 결국 10시 20분이 되어서야 보충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디테일을 잡아가면서 강습하고 나니 11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특히 지터벅 사람들이 꽤 많이 남아 있었는데, 제법 잘 따라 하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0.8배속으로 시작했던 음악을 결국 1배속으로까지 올리며 연습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도전, 도전, 도전.
일단 시작, 시작, 시작.
일단 뭐든 시작을 해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자. 부끄러워 말자. 두려워도 말자.
한 달에 하나씩 뭐라도 도전과제를 만들자. 할 수 있을까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
판단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주변인들에게 맡기자.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필시 동생을 비롯하여 내가 아끼는 이들의 도움이 컸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또 기다려 준 이들 그리고 나를 믿어준 이들이 내게 있었다. 나는 실로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이들이 보여준 노력의 집합체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