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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부 라인 워크샵을 준비하다.

by Chris

“형, 명절에 대전에서 라인 강습 해줄 수 있어? 2시간 정도이고 안모아도 5명은 넘을거야.”


“어떤 거? 원하는 거 있어?”

“일단은 타이트로프! 라인 할 수 있는 거 나열을 해줬는데, 다 배우고 싶데.”


동호회에서 50분 간 타이트로프 첫 강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그 소식을 듣고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어느 분이 동생이 자기 인스타그램에 올린 내 영상을 보고 연락온 DM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오 한국 댄서분들이 올리신 타이트로프 중에 제일 느낌이 좋아요!”


부끄럽고 몸들바를 몰랐지만, 이렇게 서슴없이 칭찬을 해주다니, 동시에 감동이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줘!”

“반응이 좋아서 나도 좋네. 진짜 꾸준함의 보답이다. 라인 20개는 진짜 대단해.”


같은 동호회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긴 했지만, 명절이 되려면 아직 2달은 남았기에 일단은 알겠다고 하고 잊고 지내고 있었다.


“홍보 자료 완성했다! 만드는데, 2시간 걸렸어.”


명절이 일주일 후로 다가오자, 동생은 오늘 인스타용 라인 워크샵 홍보 영상을 만들어 내게 보냈다. 사진과 타이트로프 써머리영상, 지난 주 바에서 춘 트랭키두 영상이 함께 있었다. 당당히 20 Lines in Daejeon 이라고 써 있는 홍보물을 보면서 또다시 부끄러움이 일었다.


“영상은 부끄러워. 20라인이라고 써 있는 것도 지워줘.”

“안돼. 거부권 없어. 내 시간과 노력을 앗아가지 말아줘. 그리고 어차피 형은 나 팔로잉 안해서 못봐.”

“제발, 잘한 거면 모를까, 진짜 부끄러워.”

“형이 누군지를 모르는데, 아무것도 안보고 어떻게 강습을 신청하냐? 판단은 강습생들에게 맡겨.”

“그런데 까먹은 것도 좀 있는데....”

“괜찮아. 결정해서 말해줄테니까! 뭐, 츄토바 레그 같은 거 하자고 하겠어? 끽해야 타이트로프지. 매니저의 존재 의의를 보여주겠어!”

“쌤들처럼 잘하면 모를까, 뭔가 많이 부끄럽네.”

“상관없어. 이런 과정으로 선생님이 되는 거잖아. 쌤들이 강습신청을 하겠어? 형보다 못하는 사람이 하는 거야. 판단은 언제나 강습생 몫! 기회 살피다가는 못해. 나도 하고자 할 때 했으면, 디제이 못했어.”

“알겠어.”


동생의 말에 문득 내 재능을 칭찬하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크리스도 라인 강습 해봐.”

“에이,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하기에는 아직 이르지.”

“그게 무슨 상관이람. 원래 51등이 59등 가르치는 거야. 일단은 5천원이든 1만원이든 시작은 작게 하고 그 이상으로 해주면 되는 거지. 대충 하는 사람도 아니잖아? 그리고 진짜 잘 춰!”


확신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무슨...’ 이라는 말을 하려다가도 쏙 들어가게 만드는 그런 눈이었다.


“판단은 크리스가 하는 게 아니라 강습생들이 할거니까, 신경쓰지 말고 일단 해봐. 내가 들어보니까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어서 그래. 일단 그러니까 해봐. 진짜 할 수 있어.


나는 실로 나를 믿지 못하는데, 이들은 나를 믿어주고 있었다.


최근에 본 유튜브 쇼츠는 불과 40초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내 뒤통수를 때릴만한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강풀이라는 만화가가 나와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 하는 이야기였다.


“만화를 그리면서 배운 게 뭐냐면은, 작업실 들어오잖아? 그러면 고양이가 바닥에 토를 해놨건, 똥을 바닥에 싸놓든 바로 작업을 해. 그게 형, 진짜 중요하다. 우리가 컴퓨터를 켜놓고 딴짓을 하다 보잖아? 뭐 SNS하고 커뮤니티 올리다 보면 1~2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4시에 출근을 했지? 이럴 때가 있어서 한 10년 됐어. 작업실 들어가면 거두 절미하고 바로 작업을 해. 1시간 작업하잖아? 그러고 나서 뭐 고양이 똥 치워주고 커피 내려마시고 하잖아? 그러면 돌아올 수가 있더라고. 시작을 안해놓으면 돌아오지를 못해. 그거 진짜 중요해.”


‘무언가를 해낼 수 있고 없고가 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시작을 위한 완벽한 순간이나 환경은 영영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냥 일단 시작하자. 시작을 하면 어떻게든 끝맺음을 하기 위해 돌아올 수 있지만,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돌아오지를 못한다.’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뭐든 일단 그냥 시작해 보련다.’


지금껏 나를 믿어준 이들에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첫 번째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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