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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것들이라고 여기는 건, 그냥 하자.

by Chris

토요일, 아침 9시가 되자 연습실로 향했다. 원래라면 좀 더 일찍 일어났어야 했는데, 주말이라고 조금 밍기적거리다보니 금새 시간이 흘러버렸다. 오늘 연습할 것은 다음주 수요일에 강연할 마마스튜와 넬리님이 보내주신 스텝과 중심이동 연습을 위한 영상이었다. 마마스튜는 하도 오래 전에 배운 거라 세부 동작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카운트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오래전에 배운 영상을 토대로 카운트부터 다시 연습해보기로 했다.


"최고의 배움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던가?


작년 말부터 시작한 라인 강습들은 내게 복습의 기회를 주었을 뿐 아니라, 원리를 어떻게 해야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지 다각도로 고민하게 했다. 수준이 다른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가? 그들이 가진 지식의 범주가 어디까지 합의가 되어 있는가? 제한된 시간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나는 이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얼마만큼 잘 알고 있는가? 이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아무래도 30분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운영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수요 정모가 끝날 10시 무렵부터 30분간 더 연습 모임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연습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의 일정을 보내니 4시가 다 되었다.


“이번주 강습은 4시 45분부터 시작할 예정이니 늦지말고 와주세요. 스윙아웃 스텝, 스트레치, 스위블 정도 할 거 같아요.”


쌤들이 전날 이렇게 글을 남겼기에 지금 움직여야 제시간에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일찍 움직였던 터라 여유가 있어서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늦지 않게 들어갔다.


습실 안에는 쌤들을 비롯하여 몇몇 분이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나 역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일찍온 15분 동안 스윙 아웃을 쉐도잉으로 연습하면서 스윙 아웃 스텝을 정리했다. 그 다음에는 2주차에 배운 스윙아웃들을 복습하면서 잘 안되던 동작들을 다시 연습했다. 그 중에 하나는 백워드 스윙아웃이라는 동작이었다. 원리는 직선 방향으로 보내는 일반적인 스윙아웃과 유사하나 리더가 5 카운트를 빠르게 디디고 6에 확실하게 보내줘야 했다. 백워드 스윙아웃이 끝나자 오버로테이트를 알려주셨다. 오버로테이트는 4카운트에서 깊게 들어가는 게 관건이었는데, 처음에는 가까이 붙어서 구심력을 만든 다음 원심력으로 보내서 스위치까지 들어가는 연습이 필요했다.


그 다음 배운 서클 동작은 오버로테이트처럼 깊게 들어가되 가운데에 어떤 축이 있다고 가정하고 도는 동작이었다. 서클 동작을 배우면서 쌤들은 팔의 위치에 대한 말과 서로를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오른손은 기존의 방식대로 허리에, 왼손은 상대의 어깨를 잡고 돌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단박에 쉽게 서클을 돌 수 있었다. 이걸 깨우치기 위해서 오랫동안 연습했었는데, 어깨를 하나 잡았다고 바로 될 줄이야? 좋은 코치라면, 이런 교수법에 관한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끝으로는 서클과 프리턴까지의 연결 동작이나 J 리딩에서 스위치까지 하는 연결동작을 보여주면서 다양한 형태의 응용을 보여줬다.


수업이 끝난 이후, 소셜 시간이 되자, 워밍업과 여러 스텝 연습, 스윙 아웃 스텝 연습 등을 마치고 한동안 여름님과 팔뤄와 함께 오늘 배웠던 것들을 복습해봤다. 30~40분 가량 연습하고 또 모르는 건 쌤한테 가서 묻고 또 연습하면서 하나씩 익혀갔다. 그리고 소셜을 하면서 실제로 해보는 연습을 하고 모두가 떠날 무렵 랑유님과 다시 한 20분간 반복했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나에게 나무를 베는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도끼를 가는데 45분을 쓸 것이다."


“우리 100기가 생각했던 크리스님은 칼을 다듬는 장인의 이미지였지요. 장인 그대로의 마음가짐을 보는 후기입니다.”


네이버 카페에 남긴 글에 이러한 댓글이 달려 있었다. ‘칼을 다듬는 장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과분하게 느껴졌지만, 자기 실현적 예언 같기도 했다. 이런 칭찬의 말들이 조금씩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듯 했다.


사실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몸 둘 바를 모를 때가 있었다.(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이따금 나를 그렇게 봐 주고 또 칭찬을 하는 게 부끄러웠다. 그 까닭은 곰곰이 살펴보면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서 그런 듯 했다. 부정이 겸손의 미덕이라고 배운 것도 있지만, “내가 이 정도로 칭찬받을 만큼 잘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어느 영상에서 칭찬 받는 것이 어색한 어느 연예인이 나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대략 이렇게 말했다.


“내 자신이 타인을 조종할 수 없듯, 타인의 판단도 내가 조종할 수는 없어요. 게다가,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쳐서 상대를 무안하게 할 필요도 없죠.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럴 때는 그냥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된다고요”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말에 굳이 부정문으로 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진정성이 있게 듣고 성의있게 답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아직도 갑작스러운 칭찬이나 긍정적인 평가에는 얼굴이 달아오르지만, 그래도 손사래 치기보다는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생긴 듯 했다.


“잘하시네요. 많이 좋아지셨어요.”


“제가 가르치는 어느 분께서 춤추는 크리스님을 보니 보법이 다르대요.”


3주차 수업과 소셜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는 길에 사복님을 비롯한 몇 분께서 이런 따뜻한 말들을 건네셨다. 여전히 부끄럽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더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갑작스러운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눈을 떴지만 일어나기가 버거웠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켜고 하릴없이 인스타 쇼츠만 보았다. 일요일이라서 더 그런 걸지도 몰랐지만, 요즘 아침마다 눈을 뜨고는 있지만, 일어나는 일이 어려웠다. 그리고 어느 시기부턴가 한 번 지각하니, 두 번, 세 번은 더 쉬워졌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를 찾아주는 사람 없고 또 혼자라는 느낌, 어떤 의무(하다못해 출근같이)도 없다는 것, 그리고 우울감이나 게으름이 시시각각 나를 찾아올 때마다, 그 모든 걸, 내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은 아침 루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쉽게 벗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어제 들었던 칭찬들을 속에 품고 연습실로 향했다.


‘하기로 한 건 그냥 하자. 무슨 생각일랑 말고 그냥 해야 할 것들이라고 여기는 건, 그냥 하자.’


자전거를 타며 찬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기본 스텝과 3주차에 배운 스윙아웃들을 쉐도잉으로 연습했다. 그러고는 수요일에 강습할 마마스튜를 카운트에 맞춰 연습했다. 각 부분 디테일을 점검하고 잘 되지 않는 동작을 반복했다. 유튜브의 국내외 여러 선생님들이 어떻게 강의하는지 보고, 같은 동작을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그다음에는 다시 연습, 연습, 연습.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반복했다.


“혼자 하려 하지 말고, 잘하고 싶으면 쌤들 찾아가서 배워. 솔째든 뭐든 잘하고 싶으면 연습팀에 들어가. 혼자해서 오랜 시간 걸리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야.”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 혼자서 이렇게 하는 것일까?’


스스로 물었다. 서울이라는 거리의 압박, 돈에 대한 고민, 개인적인 사정 등이 뒤섞여 있겠지만, 돌아보니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잘하고 싶은 마음 이상으로 뭔가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대기업 컴퓨터를 사는 대신, 시간은 걸리지만 부품 하나 하나의 정보를 얻어가며, 또 발품을 팔아가며 구매해 조립하는 컴퓨터처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하나 하나 알아가면서 조립해 나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매일, 같은 시간의 공백을 충실히 메꾸는 루틴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 과정속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공짜 연습실을 아침마다 잡고, 배운 것들을 연습하며, 또 해외나 국내의 영상들을 보면서 따라 하고,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며 연습하는 것이었다.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이러한 루틴조차 없다면 나는 매일 아침을 더욱 서럽게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루틴과 장소가 더할 나위 없이 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이런 다짐에 이르렀다.


“뭐, 어느 정도는 ‘열심히’는 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제 기왕 하는 거, ‘잘’만 하면 되겠다. 올해는 working hard 보다 doing wel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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