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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모 Apr 01. 2018

워라벨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친구들 7명과 같이 창업을 했고 이 업계에 몸담은지 6년차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워크와 라이프를 구분짓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 자신을 일과 떨어져 생각하려니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내가 어떤 의미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 8명뿐인 회사에서 누군가 일을 안한다는건 곧 회사 전체가 느려진다는 뜻이다. 우리 8명은 지난 6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스스로 회사를 대표하면서 일을 해 왔다. 일보다는 노는게 좋다며 외치고 다니는 나지만 돌이켜보면 주말에 일을 한 시간이 안 한 시간보다 많은 것 같다. 6년이 지나 현재 하고 있는 회사가 돈이 다 떨어져가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다 보니 내 자신을 일로부터 엄격히 떨어뜨리지 못한 점이 가장 후회가 된다. 아니, 좀 더 워크를 라이프처럼 생각했어야 하는걸까. 그래서 회사가 어려워지지 않게 애초에 내가 막았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회사가 어려워 지는게 꼭 내 자신의 삶이 실패하는것 같아 너무 우울하다.

일과 삶이 정확히 나눠져 있는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삶과 일을 나누어 밸런스를 맞추는 일따위 하지 않을꺼라고 생각했다. 일과 삶 둘 중에 한쪽을 미워해야만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그 둘을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것 사이에 수많은 선택지가 있는건데 왜 그렇게 극단적이었을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6년동안 끌고 온 회사가 곧 폐업하게 된다. 폐업이라는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입에 담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이게 나의 실패가 아님을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실패가 아니라고 계속 되뇌이고 있다. 한번의 실패에 너무 몰입해서 평생을 내가 실패자인것처럼 살고 싶지 않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안됐다고 도전하기를 멈추고 싶지도 않다.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건 나에게 삶이 남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당장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나아갈 힘까지 놔버리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조차 모르게 워라벨을 되게 잘 맞추고 살아왔던 것일 수도 있다. 쓰고 있는 시간은 전혀 벨런스에 맞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가치는 벨런스가 잘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좀 더 버텨서 폐업까지 잘 하고 끝내고 싶다. 스타트업의 모든 단계가 정말 힘들지만 폐업하는 것 조차 힘들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그냥 여기서 끝 이러고 셔터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빌린 돈과 그 돈을 빌려준 사람들의 관계가 여기저기 얽혀있다. 처음에 사람들은 우리를 비전으로 봤지만 끝나가는 순간에는 숫자로만 본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와버렸을뿐. 열심히 폐업을 하자는게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말 힘을 다해야 잘 문을 닫을 수 있다. 유종의 미라는게 이런 거겠지. 정말 힘 안나는 일이지만 시작했던 마음을 가지고 끝을 맺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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