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하고 우울한날
"요새 뭐하고 지내?"
"나 그냥 집에만 있어"
"몸은 좀 괜찮구?"
"그냥 저냥, 아팠다 안아팠다 그래. 별일없이산다~ 요즘 내 생활이 딱 그거야.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근데 밖에 안나가다 보면 점점더 나가기 힘들지 않아?"
"어, 내가 지금 딱 그래"
"나두 그랬어. 작년에 초에. 나 재택할때 기억나? 우리 회사가 월급을 못 줘서 사무실도 없어지고 집에서 일해야 됐었잖아"
"너 그렇게 살던게 벌써 일년도 넘었네"
"응 일년 반 지났네 하하"
"그땐 너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나중에 너가 그때 힘들었다고 말해줘서 알았잖아."
"사실 그땐 힘들다고 생각 안했어. 사람이 너무 큰일이 닥치면 오히려 똑똑해진다? 평상시에 있지도 않던 집중력이나 판단력같은게 생겨. 살려고 생겨나는 본능같은 거야. 그래서 그땐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갈지에만 집중했어. 우울하거나 무기력같은게 들어올 여유도 없었어. 그렇다고 막 씩씩하게만 있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평상시보다 더 힘내려고 노력했어. 집밖에 나가면 다 돈이니까 집에 앉아서 이마트로 식재료 배달해서 요리해 먹구. 이마트 배달할때 진짜 겁나 꼼꼼해져서 대체 재료는 없는지 어떤 싼게 있는지 다 따져보고, 어떻게 하면 안 남기도 다 먹을 수 있는지 계산하고 그랬지. 첨엔 답답했는데 점점 익숙해져서 나가는게 싫어지더라구."
"너랑 집순이랑 너무 안 어울리는데? 너같이 활동적인 애가?"
"근데 인간이 적응하더라. 하하. 진짜 집에만 있었어. 일주일에 한번 나갈까 말까. 그렇게 8개월 버텼다. 후아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네. 월급도 없이 모아둔 돈 쪼개서 쓰는거 진짜 피말렸다. 근데도 그땐 괜찮았어. 아니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게 지금와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난 상상도 못하겠어. 지금 받고 있는 월급이 사라진다는게. 이 월급이 너무 안전해서 그만두고 싶다가도 월급 생각만 하면 그 생각이 싹 사라져. 넌 어떻게 그걸 버텼냐."
"모르겠어. 그냥 진짜 하루하루 버틴거같아. 그러면서 괜찮다고 최면을 걸었지. 그게 근데 최면은 최면이지 진짜로 나아지는건 아니야. 하루 안자면 그 다음날이나 그 다음 다음날에 몰아서 두배로 자잖아. 그런거 같은거야. 언젠가는 다 돌아와. 그 우울함이. 내가 쓸모없는 인간 같다는 자괴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 같은 무기력이 찾아오는 날이 생겨버렸어. 난 돈없는 생활에서 벗어난지 1년 반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우울함에 빠져들어. 사실 회사가 정상화되고 난 직후엔 더 심했어. 상담소 문턱까지 갔었는데 상담소 가는것도 힘들어서 못갔어. 너무 힘든데 왜 힘든지 도통 모르겠는거야. 회사가 엄청 나쁜데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딱히 힘들게 한것도 아니었어. 그냥 다 너무 평범했는데 나혼자 죽는소리 내고 있는거야. 진짜 그땐 너무 우울해서 잡에가면 맨날 울었어. 울다가 우는 내 모습이 너무 서글퍼서 더 울게 되는 거 알아? 그러고 살았어. 옆에 있는 남편 괴롭히면서. 나 좀 여기서 끌어올려 달라고 메달렸어. 남편이 뭐 전문 상담사도 아니고 우울증 걸린애를 어떻게 낫게 하겠어. 그런데도 계속 메달렸어. 엉망이었던것 같아. 지금도 사실 완벽히 나아진건 아냐. 그냥 엉망인 날과 좀 괜찮은 날로 나뉘었지. 우울함이 찾아오는 날엔 참으면 안돼. 막 울고 짜증내고 내 부정적인 감정을 다 털어버려야해. 그렇지 않으면 또 넘어가. 우울함이라는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서 나타나면 진짜 답도 없어. 조금씩 엉망인 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로 위안삼아 견디는거야. 근데 웃긴데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게 된다? 이 모든걸 이겨낼 힘은 내 안에 있다고. 나 그말 되게 믿어. 내 안에 다 있다는거. 난 그냥 찾기만 하면 된다는거. 말처럼 쉬운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기댈 수 있는 말인것 같아. 남한테 있지 않고 나한테 있다는게 말야. 그러니까 버틸 수 있는 거겠지."
"그래 버티는거 밖에 없을 때도 있는것 같아. 우리 언제 산책이라도 가자. 그냥 마냥 걸으면 다 잊어버릴 수 있을것 같아. 아주 잠깐 잊는거라도 그냥 그러고 싶어."
"그래 그러자. 우리 서로가 서로를 산책시켜주자. 가만히 있음 절대 안나갈꺼 같으니까."
"하하 응 그러자. 산책하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