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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Sep 25. 2017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일곱 번째 이야기.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그날 나는 또 한 번 화가 났다. 혼자 있었다면 분명 엄청 재미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신났을 것이고, 리우 데 자네이루 문화예술의 한 복판에서 제대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에 심통이 났다. 자기(용우)도 분명 지금껏 브라질을 즐기고 있었으면서, 왜 그 현장에서 우리는 관찰자로만 남았어야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괴롭다. 

    

종일 걷다가 라파(리우 데 자네이루의 한 지명)에 도착한 우리는(지금 생각해보면 ‘나는’이 더 맞는 것 같지만)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라파 지역을 상징하는 수많은 아치로 만들어진 흰색 다리와 리우 무장 경찰(Bope)의 빈민촌 거주민들에 대한 무단 살해에 항의하는 퍼포먼스 시위 단체, 한쪽에는 줄지어 서서 공연 입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브라질 하면 빠질 수 없는 길거리의 타악 연주 잼 세션까지, 이 모든 것들을 탁 트인 광장에서 한 번에 볼 수 있었다.      


나는 특히나 더 기대감에 차 있었다. 2014년에 리우에서 혼자 여행할 때 자꾸 나와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 브라질 친구의 부담스러운 행동으로 그의 집을 뛰쳐나왔고, 이후 리우를 떠날 때까지 기분이 쭉 저기압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늘 마음속에 불편하게 남아있던 리우를 떨쳐버릴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었다.     

나도 브라질리언 방식의 진한 인류애를 느끼고 싶었다고.

우리는 광장 뒤편에 있는 복합 문화예술 센터(Fundicao Progresso)를 지나칠 수 없었다. 안에서 또 다른 리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두웠지만 활기찬 건물 안으로 들어 가보니 중앙에 보이는 넓은 계단의 양쪽에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게 다인 줄 알았다. 노래가 너무 신나 용우와 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계단 밑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밖에서 건물로 들어온 사람들이 자연스레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계단에 있던 사람들과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자유롭게 가벼운 입맞춤이나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집중해서 그들이 내뱉는 말들을 들어보니 그것은 프리 키스를 외치는 소리였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또 그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쇼걸)이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과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표정을 현장에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가득 찬, 순수하고 인류애적인 눈빛을 서로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껏 가벼운 입맞춤과 키스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 계단에 뛰어오르고 싶었다. 브라질 문화를 어느 정도 경험해 본 나는 이것이 이들의 상식에서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알았다. 그리고 용우를 향해 확신에 가득 찬 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얼른 가자. 대신 난 여자한테만 입을 맞출게. 괜찮지?”     


그 순간 용우의 낯빛이 조금 변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 제안에 기분이 상했다고 토로했다. 상대가 여자여도, 내가 다른 사람과 입맞춤하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내가 그동안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용우의 반응이었다. 힘이 쭉 빠졌지만 나는 그 순간 너무나 프리 키스를 하고 싶었기에 설득을 해 보았다. 끝내 용우는 이해를 하지 못했고 기분이 각자 상해버린 우리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시시하게 계단을 올라왔다. 옥상까지 그대로 올라와보니 계단에서 키스를 하고 올라온 사람들이 라파의 전경을 즐기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옥상에서도 누군가는 춤을 추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그림을 전시했으며 모두들 술을 마셨다. 하지만 나는 이전처럼 그곳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가 없었다. 이곳의 분위기에 젖어들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자연스러운 의식(?)을 그냥 지나쳤고 이렇게 완벽한 노을과 분위기 속에서 철저히 소외된 기분을 느꼈다.     


아직도 라파를 생각하면 조금 분하다.

싸우고 올라온 옥상에서 나와 떨어져 있던 용우를 찍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얄밉다.


산에 올라 찍은 리우의 일부. 이파네마 해변이 넓게 보인다. 리우는 멀리서 봐도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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