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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Nov 02. 2017

까보뽈로니오

아홉 번째 이야기. 까보뽈로니오(Cabo Polonio)

 브런치 작가 이름을 까보뽈로니오로 정한 것은 여기서 한 경험이 다른 어느 곳보다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울퉁불퉁한 바위 해변을 마주한 사구, 그 위에 위치한 까보뽈로니오는 우루과이 정부가 지정한 자연보호구역이다. 이 때문에 마치 정원이 딸린 대 저택처럼 까보뽈로니오의 입구는 해변에서부터 차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까보뽈로니오를 찾은 관광객들을 해변으로 실어 옮기는 2층 트럭만이 이곳에 통행이 허락된 유일한 차량이었다. 트럭 위에 앉아 30분 동안 사구를 바라보노라면 콘크리트를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천천히 빨려 들어가는 놀라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까보뽈로니오.
까보뽈로니오의 입구에서 2층짜리 트럭을 타고 까보뽈로니오의 중심지로 이동할 수 있다.
까보뽈로니오 입구에서 중심지로 가는 길은 대저택의 정원을 몰래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프랑스식 말고 영국식 정원.
저 멀리 보이는 까보뽈로니오의 마을.

 까보뽈로니오는 남미 히피들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도 전기도 허용되지 않는 비밀 낙원에는 바다사자 군락지 앞의 커다란 사구 위에 수십 개의 민박집이 흩어져있는데,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숙소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에게는 판잣집에서 모닥불 온수기를 쓰며 겨우 목욕하고 밤이 되면 촛불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 조차 즐겁다. 해변에 앉아있으면 바다사자가 수십수백 마리씩 모여 울어대고, 끝없이 뻗은 완만한 해변에서는 따뜻한 산들바람이 기분을 좋게 한다. 칵테일을 한잔씩 마시며 모닥불 앞에 삼삼오오 모여 히피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에 집중하자면 오늘 밤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등대에서 바라본 까보뽈로니오의 전경
까보뽈로니오의 유일한 정류장.
바다사자들은 하루종일 울어댄다.
바위 위가 따뜻해서 누워있다가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부분의 집들은 얇은 벽의 가건물이다.

 매혹적인 분위기에 완벽하게 도취된 2박 3일의 시간을 보내고 해변에서 까보뽈로니오의 입구로 돌아 나왔다. 그제야 입구 주차장 가득 서있는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번호판의 지역도 제각각.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한 히피 차림의 사람들은 여기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타고 까보뽈로니오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 주차장에서부터 까보뽈로니오의 사구까지 타고 온 트럭에서 이 모든 사람들은 갑자기 히피로 바뀐 것일까?

 히피가 무슨 자동차를 타냐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히피는 조금은 비싼 이름이 된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비싼 이름의 히피들은 어딘가에서 그렇게 분투를 하며 남몰래 이 감정을 가슴속에 숨겨두었다가 이렇게 한번씩 꺼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히피가 실천이 아니라 액세서리에 가까워졌음에 실망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히피펌’ 따위를 보고 옛날에 이미 실망했었을 것이다. 까보뽈로니오 안에 있을 때 내가 느낀 해방감은 결코 거짓말은 아니었다. 해변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눈 필름 메이커 히피, 작가 히피, 변호사 히피, 의사 히피들이 나에게 보인 애정과 관심들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마음속에 몰래 품고 있는 삐딱함은 비싼 이름의 자유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서린 것은 사실이었다. 멀어지는 까보뽈로니오의 입구를 바라보며 ‘죽기 전에 꼭 한번 더 와야지.’와 ‘내가 또 언제 여길 오려나.’라는 생각이 교차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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