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이야기. 바릴로체(Bariloche)
바릴로체에서는 나우엘 우아피 국립공원 내의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꼭 타라고 들었다. 바릴로체의 경치를 남미 최고로 치는 몇몇 여행자들이 말해준 것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여행지를 누군가가 강력하게 추천하면 저렇게 흥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나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대도시(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오래도 눌러앉아 있었으니 자연을 마주하고 싶다고 용우에게 말했다. 그대로 우리는 꽤 먼 길을 버스로 달렸고, 꼬박 스물여섯 시간 후에 버스에서 내리니 공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2년 동안 그리워했던 파타고니아의 청량한 공기였다. 모든 것이 깨끗한 공기에 씻겨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바릴로체에서 하루를 할애해 둘이서 25km 정도 되는 구간을 자전거로 돌았다. 산을 타고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반복했다. 내려갈 때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기분이었고 올라갈 때는 허벅지 힘이 달려 자전거를 끌고 힘겹게 올랐다. 몇 번은 호숫가에 들러 물을 마시고 다리를 쉬게 했다. 자전거를 내려놓고 카약킹을 할 때는 설산이 눈앞에 펼쳐진 넓은 호수에 우리 둘 뿐이었다. 용우가 노 젓는 소리만 있었다. 조금 높은 지점에선 아마도 생애 최고의 풍경을 보았다. 계속되는 환상적인 경치를 옆에 끼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반복되는 행위가 하루의 중심이었고 이렇게 단순한 것에 집중하는 날에 우리는 대화를 유독 많이 했다. 산장에서 며칠 그렇게 지내며 우리는 나름대로 고요한 휴양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도착한 날 한바탕 난리가 난 뒤의 일이었다.
실수를 한 것이 내가 아니라 용우였다면 우리는 바릴로체에서 기분 좋게 자연을 즐길 수 있었을까. 상황이 해결된 후에도 용우를 계속 탓하고 슬슬 긁다가 분위기가 안 좋아졌을 확률이 컸다. 실수를 한 게 나여서 다행이었다. 나조차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상황에서 용우는 우리가 숙소를 찾을 때까지 불편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추운 곳에서 잘 곳도 없이 나무 밑에서 침낭 하나로 버티며 자야 했을 수도 있었는데. 바릴로체에서 가장 전망 좋고 인기 좋은 호스텔을 내가 발 빠르게 예약했다며 오기 전부터 실컷 생색을 내던 나 자신이 한심했다.
자정은 이미 넘어있었다. 그날 밤 바릴로체에서 우리가 남는 침대가 있는지 물어보지 않은 숙소가 과연 있었을까. 기적적으로 침대가 두 개 남은 도미토리에 겨우 각자의 등을 붙였을 때 건너편 2층 침대에 누워있는 용우가 그렇게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화 한 번 내지 않고 불안감도 내비치지 않다가 겨우 누울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지쳤을지.. 용우는 내게 어떤 할 말도 없어 보였다. 자기 전 애정표현도 하지 않고 너무도 담담하게 잘 자라고, 고생했다고 말하고는 건너편 침대에서 혼자 바로 자는 일은 절대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잠시 마음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알았다. 용우는 이 밤을 이렇게만 넘길 것이고 내일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와 자전거를 타러 갈 거라는 것을. 자전거를 타면서는 지도를 봐주고 최근에 들은 팟캐스트의 재미있는 부분을 내게 더 재미있게 말해줄 것이고 저녁에는 스테이크를 구워줄 거라는 걸 알았다.
여행에선 그 어떤 것도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는데 용우는 여행에서 유일하게 내가 예측하고 기댈 수 있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