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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Jan 01. 2018

생각대로 안되더라도 1

열한 번째 이야기. 바릴로체(Bariloche)

 해인이가 숙소를 고르는 방식은 이렇다. 우선 론리 플래닛의 설명을 한번 읽어본다. 론리 플래닛의 설명이 나쁘지 않았으면 1차 통과. 그러고 나서 호스텔 월드의 댓글 수를 보고 평점을 확인한다. 이용 후기가 웬만큼 쌓여 믿음직해 보이면 2차 통과. 거기에 평점이 8점대 이상이라면 3차 통과! 이런 엄격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도 해인에게 선택받지 못한 호스텔은 바릴로체의 Hostel 41 Below가 유일하다.


 늦은 밤에 바릴로체에 도착했다.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바릴로체는 파타고니아 지역답게 밤이면 패딩이 필요했다. 더운 날씨에 금세 젤라또가 녹아내리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생각하며 혹시 감기에 걸릴까 옷을 더 단단히 여며 입었다. 장시간의 버스는 아무리 여러 번 타도 적응이 되지 않았고, 찝찝한 몸을 데워줄 핫 샤워가 간절했다. 서둘러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격 대비 최고의 평점을 자랑하는 Hostel 41 Below. 도착해보니 이미 호스텔 라운지에는 샤워를 마치고 노곤하게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핫초코를 마시는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어느새 시침은 9에 가까워졌고, 여권을 제시하고 안내를 기다리며 여행자들과 간단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호스텔에 도착하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안내를 받지 못하자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오늘 예약이 꽉 차 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한참을 난감한 표정으로 예약자 명단을 뒤적거리던 스탭이 말했다. 해인은 말도 안 된다며 재차 대꾸했다. “여기 우리 예약 캡처해놓은 거 안 보여요? 예약을 해놨는데 손님을 미리 받아버리는 게 어딨어요? 우린 이미 돈도 다 냈는데...” 피곤했던 해인은 잘 모르겠으면 사장님을 불러달라고 재촉했다. 호스텔 측의 실수로 점점 시간이 늦어지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물가가 비싼 바릴로체에서는 최대한 짧게 머무르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빨리 쉬고 내일 있을 트래킹을 준비해야 했다. 결국 호스텔의 사장이 우리를 직접 응대하기 위해 나타났는데 오자마자 우릴 보고 하는 말이 이상했다. “혹시 Haein Kim이세요?” 해인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며 묻자 사장이 말했다. “아니 아무리 우리 호스텔이 성수기 때는 예약이 어려워도 1년 전부터 예약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상황은 대충 이랬다. 안 그래도 사장은 오늘과 똑같은 날짜로 1년 후의 예약 건이 들어와 의아해하던 찰나, 혹시 몰라 방을 남겨두었는데 아홉 시가 되도록 손님이 오지 않자 그냥 손님을 받아버렸던 것. 해인이의 아이폰에는 내년도의 오늘 날짜로 결제된 스크린샷이 저장되어있었다. “지금이 극 성수기라서 방을 따로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 호스텔의 로비에서 하루를 보내게 해드리고 싶지만, 성수기의 바릴로체가 그런 식의 불법영업이 너무 성행해서 경찰이 매일 밤 단속을 와요. 짐을 맡아줄 수는 있지만 숙소는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 합니다.”


 혹시 모를 노숙을 대비해 침낭만을 챙겨 나와 1시가 넘도록 동네의 거의 모든 숙소를 돌아봤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고급 호텔까지 물어봤지만 성수기의 바릴로체는 만실이었다. 결국은 시내에서 한참을 떨어진 지저분한 호스텔에서, 술 냄새와 안 씻은 겨드랑이 냄새에 쩔은 세명의 프랑스 남자애들 사이에서, Hostel 41 Below의 1.5배의 가격에 해인과 나는 쭈그리고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방을 찾아 걷던 3시간 내내 해인은 계속 죄인이었다. 미안해 용우야 미안해 용우야. 나는 언젠가 이런 글을 쓸 생각으로 쿨하게 해인을 용서해줬다. ‘그럴 수도 있지 해인아. 지나면 다 추억이야, 근데 너무 춥다ㅠㅠ’


어설픈 자전거 크루. 낮의 바릴로체는 항상 맑고 깨끗하다.
힘들고 지쳤던 밤. 사진 한장을 남길 여유는 없었나보다. 남아있는 사진들에는 아름다운 장면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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