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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Jan 08. 2018

성격 차이 2

열두 번째 이야기. 발디비아(Valdivia)

“굳이 이 험한 데서 갑자기 따로 다녀야 할 것까지 있어? 그리고 불편한 기색을 좀 드러낼 수도 있지. 너도 어느 정도 인정하면 되잖아. 나도 내 표현이 과했다면 사과하고.” 하지만 용우는 이미 마음을 굳힌 것처럼 보였다. 나와 같이 있고 싶지 않고 혼자 갈 길을 가겠다고 했다. “나 두고 가지 마. 그러면 저녁에 숙소에는 오는 거야?” 용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가지 말라며 눈물을 마구 흘리는 나를 뒤로했다. 잔뜩 상처받은 용우의 표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용우에게 수모를 줄 일이 아니었다. 마치 나는 도덕적으로 옳기만 한 사람인 마냥 가르치려 했다. 굳이 상처를 주어야 했을까. 용우가 더 섬세하고 마음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도 아는데. 십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용우가 떠나간 것이 너무 무서웠다. 물리적으로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용우를 앞으로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면 어쩌지 싶은 분리불안증이 찾아온 것이다.     


내게 분리불안증이 있는 건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일이 무엇보다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온통 분리불안과 관련된 것들로 가득 차있다. 갓난아기 때는 나를 절대 혼자 두고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한다. 그 잠깐의 시간을 아기가 못 견뎌해서 그랬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집 앞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 나갔다 오는 시간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 사이에 엄마가 없어질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도, 동생이 학원 갔다 돌아올 시간이 넘기 시작하면 학원에 전화해 학원버스가 무사한 거냐고, 동생에게 무슨 일 없는 것이냐며 확인 전화를 했다.      


성인이 되면서 다 나은 줄 알았던 분리불안증은 용우가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면서부터, 그리고 치안이 불안한 남미에서 함께 여행을 하면서부터 다시 나타났다. 얼마 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용우가 콜라를 사 온다며 길거리에서 나를 기다리게 한 일이 있었다. 사람이 북적이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큰 대로변이었다. 밀도로만 따지면 강남역 10번 출구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해인아 잠깐만 여기 있어. 더우니까 나 혼자 얼른 다녀올게.” 용우는 빠르게 다녀오고 싶어 했고 나는 붙잡을 새가 없었다. 그대로 멀어져 가는 용우를 시야에서 놓칠 새라 나는 뚫어지게 용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인파 속에 용우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분명히 저기 보이는 상점으로 들어가 콜라를 사고 지금쯤이면 계산을 하고 나와야 하는데.’ 10분이 지났는데도 용우는 오지 않았고 나는 혼자 울기 시작했다. 납치를 당했으면 어쩌나, 가다가 칼 강도를 만났으면 어쩌나, 머릿속으로 소설을 쓰며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발을 동동거렸다. 오분이 더 지났고 용우가 저쪽에서 콜라를 마시며 느긋하게 오고 있었다. 패닉이 된 나를 보고 적잖이 당황한 용우는 처음 들어간 곳에서 콜라를 팔지 않아 큰 대로가 끝나는 지점까지 가서 구해온 것이라며 나를 달랬다.      


발디비아에서는 마음이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서 보이지 않으니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용우는 심적으로 나를 미워하고 있는 상황,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다 보이지 않게 멀어진 상황이었다. 용우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미안해했던 감정, 후회하던 감정은 싹 사라지고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날 우리는 숙소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화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끝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에서는 나를 떠나지 마. 그러면 나는 네가 너무 미워져.”


해산물과 과일이 매우 풍부하기로 유명한 발디비아. 매일 아침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용우가 화해한 후 게를 참 맛있게 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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