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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Jul 09. 2018

미완의 바르셀로나

열네 번째 이야기. 바르셀로나(Barcelona)

 여행이 끝나고 난 뒤 바르셀로나를 가장 많이 언급해온걸 보면, 이 곳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주기 위했을지도 모른다.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더 오래간다는 걸 해인이는 알고 있었나 싶다. 다음번에 다시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온다면 반드시 혼자 올 것이라고 여러번 다짐했다.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다, 반드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밤에 더 웅장해진다.

 나에게 바르셀로나는 꿈의 장소였다.

 어릴 적 엄마 따라 시장엘 갔다가 얻어낸 아동용 국가 도감이 한 권 있었다. 그 책은 스페인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으로 설명했다. 착공한 지 100년이 넘었고 아직도 완공되려면 한참은 걸린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우뚝 솟은 옥수수 모양 첨탑처럼 기괴하게 느껴졌다. '완공 예정인 2026년 전에는 반드시 내가 가보고 만다.' 그렇게 대성당은 10살 남짓된 아이의 버킷리스트 첫 줄을 장식했다.

 두 번째는 FC바르셀로나. 끊임없는 메시vs호날두 떡밥에서 여지없이 메시의 손을 들어온 나였다. 예매 후 모바일 입장권을 수시로 열어보면서, 내가 FC바르셀로나를 (네이마르를! 이니에스타를!! 메시를!!!) 직접 목격한다는 사실에 며칠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Camp Nou에서. 드디어 소원 풀었다.


 그런데 해인이가 심상치 않았다. 발렌시아를 떠나오는 버스에서부터 감정 기복을 드러냈다. '싫어, 쉴래, 귀찮아' 여행 내내 한번도 하지 않던 부정적인 말을 골라하기 시작했다. 남미에 있는 내내 쉼없이 긍정 에너지만 뿜어왔지만 무슨 이유인지 눈에 띠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다가올 해인의 생일을 근사한 도시에서 보내게 되어 기뻤지만, 그전까지 기분이 돌아올지는 미지수였다. 해인이의 기분을 바꿔줄 멋진 장면을 고민하며 우울한 해인 옆에서 조용히 선물을 검색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함부로 연인끼리 여행을 떠났다가 틀어진다는 말은 우리에겐 우스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의 꿈을 뭉개고 있는 해인 앞에서 내 인내심도 점점 닳아갔다. 속이 뒤집어져 가면서도 구 남친과의 추억이 담긴 여행지까지 따라간 내가 바보라고, 마음 속 계산기는 견적을 내고 있었다. 내 기분을 알리 없는 해인은 걷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신호를 기다리다가 뜬금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조금이나마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왜 이 도시가 싫은지에 대해서만 말했다. 이런 쇼핑만을 위한 도시는 싫다고 일장연설을 떠들고는, 역시 빔바이롤라가 스페인이 싸다며 매장마다 들어가보는 해인. 방법을 바꿔가면서 나의 바르셀로나에 재를 뿌려댔다. 해인을 두고 하루쯤은 자유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엉성한 날들을 보내고, 그래도 오늘만큼은 해인이가 주인공인 밤을 맞아 몰래 선물을 준비하고 장을 봐왔다. 나빴던 기분을 (내 기분도) 한 번에 만회해주고 싶었다. 해인이가 쉬는 동안 한 구석에서 요리를 하고 어설프지만 준비한 케익에 초를 붙였다. 생일상을 받아 든 해인의 낯빛이 점점 밝아지자 성공의 직감이 들었다. 여기에 해인이가 눈여겨보며 몇 번을 집었다 놨던 그 옷을 눈앞에 꺼내 놓는 순간!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모습에서 드디어 내일 제대로 도시를 만끽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려졌다.

생일을 맞은 해인. 이때까지만 해도 웃고  있었다.

 '고마워, 니가 최고야!' 얼마나 갖고 싶었던 옷인지를 설명하는 해인을 보며, 속으로 해인이의 생일과 나의 여행에게 축하를 보냈다. 해인을 더 쉬게 두고 설거지를 마무리 한 뒤 이 여세를 몰아 같이 내일의 계획을 세워 보자고 말하며 해인에게 다가갔다. 잠시 졸고 있는 듯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해인의 들썩이는 등줄기, 들썩들썩. 아... 또 우네... 또 울어... 아... 나도 이제 집에 가고 싶다... 시간은 없고 바르셀로나는 더이상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쉬움만 남은 바르셀로나를 뒤로하고 우리의 시간은 한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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