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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Nov 04. 2018

다시 여행으로

열다섯 번째 이야기. 서울->콜카타(Kolkata, India)

2016년 12월 말

 

 밤새 학기말 리포트를 작성하고 곧바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 우리는 피로에 지쳐있었다. 중국에서 무려 두 번의 환승이 있었지만 어느새 인도 콜카타 공항에 도착했다. 쾌쾌한 냄새의 새벽 콜카타 공항은 웬일인지 실내가 뿌연 매연으로 가득 차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동이 틀 때까지 공항에서 버티기로 한 우리는 대합실로 들어가려 했지만, 총을 둘러 맨 군인이 출국 티켓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며 우리를 막아섰다. 제대로 된 편의 시설 하나 없이 딱딱한 철제의자에 기대어 아침을 기다리게 된 우리는 왜 또 이런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캠퍼스커플이 된 우리는 지겹게도 붙어 다녔다. 전에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CC를 했었다는 해인과 구남친을 지나가면서 목격했을지도.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는 공강 때도, 시험 기간에도, 밥 먹을 때도 항상 함께였다. 하지만 서울은 여행지가 아닌 일상을 위한 도시였고, 밀라노에서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하루종일 함께 있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조절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주말에 종종 국내 여행을 다녔다.  '관계 회복'이라는 목표의식(?)을 갖고 주말에 기분좋게 다녀온 후 주중에 다시 지겨운 싸움이 반복되는 식이었다. 

 별 이유 없이도 함께 있는 게 자연스러워지자, 약속을 잡는 게 별 이유가 되었다. 스케줄을 만들 때는 해인에게 허락을 구해야 했고 그럴 때면 약속과 해인 중에 뭐가 더 중요한지 꼬박꼬박 답해야 하는 실험에 들었다. '우리는 매일 보니까'는 맞는 말이지만 해서는 안 될 금기어였다. 건강한 거리를 되찾고 싶던 나에게 해인은 항상 건강한 거리의 기준이 뭔지 물었다. 물론 객관적인 기준 따위는 없었고 우리는 많이 싸웠다.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 자체를 고통스러워했던 해인은 나를 점점 구속했고, 나는 그럴수록 더욱 도망갔다. 


 우리도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커플 상담을 받았고, 만나는 횟수를 제한해보며 노력했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관계의 첫 단추가 꿰어졌던 시작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구도 의지할 곳 없는 외딴곳에서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지냈던 시간들이 해인이 나에게 점점 의존하게 만들진 않았을까.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좀 더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우리를 다시 여행길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로 여행을 할 거였으면 인도는 아니었다. 인도는... 서로의 적당한 거리는 무슨, 둘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조차 없었던 여행. 쇠똥을 밟고, 사기를 당하고, 이상한 곳에 끌려가 한대 얻어맞았던. 한나절 연착된 기차를 바닥에 누워 기다리며, 설사병 때문에 쥐가 다니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서로를 묵묵히 지켜보게 한 여행. 콜카타 공항 구석에 누워 뿌연 실내를 쳐다보며 동이 트길 기다렸던 여행 첫날, 말로는 내년에도 우리 잘해보자고 했지만 지금 누워 있는 이곳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왔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던 나였다.


첫 날, 공항에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잠들어 버린 해인의 발에 장난을 쳤다. 여행을 많이 다닌 해인은 발이 늘 거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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