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불안을 바람에 흩트리다
누가 불혹이 되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는가!
마흔이 되면 불혹이라 했다. 불혹을 네모 상자에 검색해 본다.
불혹 [不惑]
나이 40세를 이르는 말.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논어》〈위정편〉에 언급된 내용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 불혹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와 만났으니 이 어찌 안정적이고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외치고 싶지만 실상을 그렇지 못하다. 나는 지금 정신이 혼미하며 갈팡질팡하며 판단을 흐리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나의 내면과 불쑥 불쑥 만나서 실은 힘들기도 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매일 감정의 그래프가 요동을 치며 움직이고, 그 감정 안에서 스스로 평정심을 갖고자 애쓰는데. 그것 참, 애쓴다고 되는게 아니더라. 다양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 자주 그 감정 속에 매몰되고 만다. 하루는 행복하고 하루는 우울하고 하루는 충만하고 하루는 헛헛하고, 순간 순간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고 그 감정을 마주하는 나는 어찌하지 못하는 작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지금 아이를 낳지 않고 육아휴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다고 가정해보면 난 평온했을까? 아마 지금 ‘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대로 살고 있는게 맞는가’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감정이 요동치고 불안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소중한 아이를 만나서 정신줄이라도 잡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이에게 고마워야 하는 건 아닌지.
회사는 늘 조직개편 중, 나이 많은 사람 집에 가세요
회사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회사 소식을 간간히 접하면서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관점과 젊은 리더로의 세대교체를 통한 위기 극복과 도약이 회사에서 바라는 것일 거다. 물론 숨겨진 수익률 계산이 있겠지만 필요성에는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늘 툭하면 쉽게 바뀌는 조직 개편에 구성원들은 늘 불안해할 수 밖에 없다. 충분히 공감되고 이해되지 않은 상태라면, 특히 더욱 더 말이다.
“아무개 팀장이 보직 해임 되었다더라, 삼진아웃, 알아서 그만두라는 거겠지”
“직급은 높은데 팀장 타이틀 없는 사람들, 집에 가라고 하더라”
“누구? 그 분 벌써 그만두셨지..버틸 수 있었겠어?”
회사 다니면서 늘 조직개편은 있어왔고 누군가가 집으로 보내지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다. 그 때마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지금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런 위치에 있다고 주변에서 자각을 시켜주니, 회사에서 잠시 멀어져 육아휴직 중에 있던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쿵당쿵당…….’ 가슴이 갑자기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복직을 했을 때 나의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닌지, 지금은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거론되는 것이 아닌지 생기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니 불안했다. 실력 없으면, 성과 없으면 조직에서 나오는게 맞다. 구질구질하게 회사에 동냥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애써왔고 노력하고 성과도 내고, 중간 관리자로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히 했는데 만약 회사에서 당신은 이제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을 대체할 당신보다 능력있는 젊은 구성원들이 많다. 회사에서 더 이상 당신의 위치는 없다라고 한다면??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니 이리 억울할 수가 없다.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상상을 하니 가슴이 턱턱 막혀왔다.
벌어 먹일 가족이 있어 당장 그만 둘 수 없습니다.
대리 시절, 퇴사를 결심하고 선배들에게 듣던 말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더럽고 치사해도 회사에 충성해야 하는, 아니 고마운 회사에 충성하는 분들이었다. 그리고 늘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하면 어떡하나를 고민하는 아버님, 어머님이었다.
퇴근한 남편이 아이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그러나 웃음 뒤에 파김치가 되어 절어진 모습을 숨기지는 못했다. 피곤 해 보였다. 함께 아이 목욕을 시키고, 늦은 밥을 먹고 남편은 쌓인 설거지와 집안일을 뒤로 한 채 잠시 누워 쉬었다가 정리를 하겠다고 했다. 처음엔 그러라 했는데, 자꾸만 남편이 그냥 잠이 들어 버린다. 피곤한 것은 알겠지만 나도 하루 종일 집에서 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슬슬 화가 막 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복직을 해서 회사를 다니면 이런 상황에서 더욱 짜증이 날 것 같았다.
참자 참자하며 책상 정리를 하는데, 남편이 회사 교육을 받았는지 끄적 끄적한 종이가 있었다. 지금 나의 머리 속엔 무슨 생각이라는 질문에 대한 생각이 적혀 있었다. 적은 키워드 중에 ‘우리 소중한 아기, 미래 걱정…’을 보면서 뭔가 짠하게 감정이 밀려왔다. 그제였나...남편이 카톡에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줄께, 이런 멘트 좀 그런가?’라고 했다. 뭔가 더 짠하게 감정이 밀려왔다.
얼마나 애쓰고 있는걸까...남편은 지금처럼 소중한 시간을 아이랑 함께 보내면 좋을 것 같다며 육아휴직하고 싶다했다. 하지만 다녀 온 후 자리가 없겠지?하며 남편은 웃었고, 나도 그렇겠지라고 동의했다. 그 메모, 카톡 메시지를 받고 난 후, 남편에게 저녁에 젖병을 닦거나 하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본인이 가능한 상황일 때는 하게 두고, 누워 잠시 쉬겠다 하면 예전처럼 화내지 않았다.
벌어 먹여야 하는 가족이 있어 그만두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위해 잠시 휴직도 못하고 그렇게 우리는 일을 하고 있다. 신입사원 때였나, 팀장에게 물었다. 왜 회사를 다니세요? 돈 벌려고 다니지라고 팀장은 대답했는데, 그 대답에 실망을 했다며 친구랑 대화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우린 돈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 그래 맞다. 나와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회사를 다닌다.
그런데 돈 벌기 위해서 회사에 계속 붙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괴로울 것 같다. 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일하는게 즐겁고 재미있고, 회사가 학교는 아니지만 내가 성장하고 있어서,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어서 회사를 다닌다라고 늘 이야기 해왔고, 면접 볼 때 제가 성장할 수 있는 회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 해 오곤 했다. 몇 번의 이직 과정을 통해서 웬만한 회사는 다 비슷 비슷하구나를 깨달으며 지금의 회사에서 생각보다 오래 다니고 있다. 힘들다 힘들다 칭얼 거려도 하는 일에 대한 나름 전문가로써 자부심도 있고 재미있게 일했다. 즐겁게 일하면 성과는 쫓아온다 생각했고 스스로 성과를 내었다 생각하고 그렇게 인정 받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었다면?이라고 질문을 던지니 불안했다.
복직 잘 할 수 있을까? 이제 이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인들은 나에게 회사도 복잡하고 안 좋은 상황이니 최대한 복직을 늦게 하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런데 진짜 내가 돌아갈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면서 그 소용돌이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 중에 복직하러 회사에 가서 팀장과 상담했더니, 당신이 와도 해야 할 일이 없다고 퇴사를 권고 받았다는 내용을 읽었는데, 세상에 이게 남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분은 퇴사를 한 후 더욱 멋지게 회사를 차려서 살아가고 계셨다. 나라면 선택할 수 있을까? 멋지게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이 또한 걱정과 불안이 들었다. 이런 심정을 글로 쓸까 말까 마음 속에 지우기를 몇 번했다. 이런 불안함을 들키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복직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 복직이라는 좁은 프레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고 싶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을 가치 있는 일이라고 내 마음이 이야기 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에 고민을 하려 한다.
나를 가슴 떨리게 하는 일인지, 조직인지, 회사인지 두드리며 주체적으로 회사를 다닐 것이야라고 불안한 마음을 툭 밀어 내 본다. 설령 이 질문에 지금 회사가 그렇다라고, 지금 회사의 네임벨류와 안정성에 스스로 속일지라도, 속이는 스스로를 눈감지 않고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끈질기게 질문 할 것이다. 너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하고 있는지. 남이 나를 멋대로 판단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는 조직 구성원을 개인으로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좋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회사의 비전에 공감하지 못하는데, 나에게 그만한 대접을 해주지 않는데 있을, 제대로 일할 구성원은 이제 적다. 다들 딴 생각을 하며 건성건성 끄덕이며 구멍 나지 않을 만큼만 일할 것이다. 구성원은 개인으로 존중 받고, 존중 받은 그 개인은 마땅히 치열하게 고민하여 조직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공감이 되어야 원하는 목표를 이룰 것이다. 회사는 개인과 가족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애씀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며 공감하는 회사에 진정한 몰입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좋은 인재들은 그런 회사에 입사하거나, 그런 회사를 차리거나, 조직을 떠나거나, 국가를 떠나거나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좋은 인재라 할 수 있는가라고 자문해 본다. 부족하면 채울 것이고, 남에게 업혀 가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노력해 왔고, 앞으로 노력할 것이다. 겸손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니 용기를 낼 것이다.
쓰고 보니 조금 비장하다. 불안한 마음을 잠시 내려 놓으니,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 복직 전에 미리 걱정하지 않고 복직 후에 흔들리지 않을 용기를 충전해 본다. 조용히 호흡에 집중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 본다. 내일 다시 흔들리지언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