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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ningHa Apr 16. 2019

오늘도 화장을 하고 거실로 출근을 합니다

마흔에 엄마 사람 되기 ep01.

새벽 5시 50분, 남편의 시끄러운 알람이 울린다. 
어제 미열이 있던 아기는 새벽 내내 보채고 간신히 5시에 분유를 먹이고 재운지 20분이 지난 시간, 어김없이 남편의 알람이 울렸다.


잠시 선택의 귀로에 놓였다. 
잘 것이냐? 씻을 것이냐?
피곤해, 아이 잘 때 옆에서 잘 것인가? 아니면 지금 안 씻으면 못 씻을 수 있으니 샤워를 할 것인가? 아침부터 머리속에서는 이런저런 셈을 하며 고민을 한다.
 
나의 선택은 씻기로 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난 후 좋아하는 바디로션을 발랐다.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눈에 붙어있던 잠도 조금은 씻겨 내린 듯하다.
 
다시 선택의 귀로에 놓였다.
안경을 쓸 것인가? 콘텐트 렌즈를 낄 것인가? 
집에 있을 건데 누가 볼 거라고 그냥 안경 쓰고 있자, 아니야 그래도 렌즈 끼고 있는게 아이 볼 때도 편하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안경 속 내가 아닌 나로 있고 싶어하며 결국 렌즈를 끼고 화장대에 앉았다. 

아이가 50일 즈음이 지나고, 그 즈음에 조리원과 친정집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50일 전의 일들을 나열해보라 한다면 아마 너무 힘들다, 하루가 쳇바퀴같이 돌아간다, 미칠 것 같다, 내가 과연 엄마의 자격이 있는가, 이러려고 아이를 그리 낳고자 했는가 등등 별의별 생각들의 나열이다. 그나마 아이가 밤에 점점 자는 시간이 길어지고, 나 역시 눈을 부칠 시간이 길어지면서부터였을까

난 아침에 일어나 씻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는 바쁜 직장인처럼 말이다.
풀메이크업은 아니더라도 그대로 회사를 가도 이상하지 않을,
평소 직장 출근할 때처럼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은 사람 같아 보였다. 화장하지 않은 민 낯만으로 빛이 나고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그런 모태 미인도 아니고 마흔이라는 나이를 속일 수도 없었다. 하루가 쳇바퀴 돌아가듯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달래고를 하염없이 반복하다 보면 나를 챙길 시간이 없다. 푸석푸석한 얼굴, 늘어난 티셔츠, 티셔츠에서 나는 아이 분유 냄새…이런 모습의 나를 쳇바퀴 돌 듯 계속 본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곤욕이었다.


그랬다, 점점 자존감이 떨어졌다

회사에 나가서 커피 한잔 들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시작하던 아침의 나는 이제 안녕이었다. 어제 입은 옷 그대로 자고 일어나 또 그 옷 그대로 씻지 않은 내 모습을 매일 매일 본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서 난 아침에 화장을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누구를 만나려고 하는 화장이 아닌 나를 위해서, 나에게 보여주려고, 나의 자신감과 마주치려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그 자존감으로 아이에게 한껏 미소를 지어준다. 물론 타인이 볼 때는 이러나저러나 똑같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었다. 이제는 관절 아파서 잘 신지 못하는 하이힐을 신었을 때 생기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집에서 하는 간단한 화장만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도 새로운 시작이구나, 거울을 보며 ‘개구리뒷다리~~’하며 억지로라도 웃어 본다. 그 모습이 웃겨서 그냥 웃음이 나온다.


화장을 한 후, 어제와 다른 옷으로 갈아 입는다. 
이 또한 누가 나를 보겠느냐만은, 막티와 막바지를 벗어두고 어제 홈쇼핑에서 6벌에 4만 9천원하는 티셔츠 중에서 색상을 하나 골라 입는다. 오늘 날씨에는 이 색이 어울리겠군하며 굳이 외출하는 것처럼 옷을 갈아 입는다.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에 이런 작은 선택을 나에게 주는 것만으로 작은 기쁨이었다. 오늘 입은 옷에 아이침과 분유가 묻어 고유 향수가 되어 남겠지만, 오늘 하루 아이와 잘 보냈다는 감사한 흔적일 것이다.


아이 낳으면 원래 그래
잠도 못자고, 못먹고, 못입고, 나 챙길 시간 없고 말이야.
그랬다, 사실이었다. 아침에 씻고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가는 그 별 것 아닌 일들이 오늘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별 것 아닌 것들이 중요한 일이 되는 것, 별 것 아닌 것들로 작은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만 챙기면 되었던 나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한 것인 줄 몰랐던 그랬던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실컷 힘들다 투정하려고 쓰던 글을 끄적이다 보니 더욱 알게 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는 것을
@4월의 봄, 작은 봉오리에서 피어나는 꽃을 자세히 봐야 그 아름다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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