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지만 괜찮습니다.

by 윤영

출근과 동시에 부장님으로부터 메신저가 왔다.

"윤영님, 내일 팀장님께 이 내용으로 발표를 해야하는데 자료 초안 오늘 퇴근전까지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자동응답기처럼 대답을 한다.



어쩔 땐 ‘부장님도 사정이 있겠지’ 하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또 어떤 날엔 ‘이걸 이제 알려주면 나는 퇴근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며 속으로 온갖 화를 다 낸다. 이제는 기계가 되어, 화조차 나지 않는다. 전날이라도 알려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아직 읽지 못한 메일을 확인할 뿐이다.


"윤영님, 이번주 보고 이렇게 써서 냈는데 근거 자료 좀 만들어줘요. 괜찮죠?"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같으면 괜찮겠냐? 보고할 때는 확인도 안하고 마음대로 해놓고'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표정을 최대한 감춘다.


"네, 괜찮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동료들에게 마음을 터놓는 건 그 순간뿐이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어질까 봐, 점점 더 입을 다물게 된다. 그렇게 나는, 조용하고 묵묵히 일을 열심히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하루들이 쌓이다, 조금도 풀어지지 않는 날엔 이 굴레에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온다.


나는 정말 괜찮은걸까?

왜 솔직하지 못한걸까.

고과때문에?승진, 연봉, 평판?


누군가는 말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사회 생활이 원래 다 이런거고,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는거고, 버티는게 이기는 거라고. 뻔하디 뻔한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회사 일에만 몰두하다 자신과 가정을 등한시하고 모든게 늦어버린 후에야 뒤늦게 후회하는 그런 사람은 되기 싫은데 말이다.


아직도 내가 사는 세상은 오래된 드라마 안에 갇혀있는걸까?

아니면, 그 드라마같은 세상을 내가 만들고 있는걸까?




"오늘은 회의가 많아서 자료 만들 시간이 부족합니다. 기존 자료와 데이터 전달드리겠습니다."


"아뇨, 부장님.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자료가 있을텐데, 확인해봐야합니다. 다음에는 중간에 점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직장 상사의 권력은 언제 생겨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떠오른 답은 이것이다.


모두가 침묵할 때.

그리고 그 침묵을, 모두가 불편하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때.


그의 권한과 책임을 넘어선 권력은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모두가 조금씩 공들여 쌓아올린 결과다. 말하지 않는 팀원, 묵묵히 따르는 분위기,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안전장치가, 나를 도리어 가두는 셈이다. 사실은, '안 괜찮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누군가 말해주길 기다렸던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의 권한을 넘어선 권력을 만들어주며, 제발 나를 봐달라고, 인정해달라고 하는 아이 한 명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용기를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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