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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Feb 04. 2018

왕의 숲, 만추(晩秋)의 창덕궁 후원

늦가을의 절정을 맞이하다

Prologue


지난 11월, 초록빛 창덕궁 후원을 방문한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들른 이 곳.


https://brunch.co.kr/@juliakimcued/71

대만에서 온 친구에게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한국 궁궐과 전통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벼르고 별렀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찬란했던 그 풍경에 오히려 내가 더 홀려버린 느낌이랄까.


겨울이 오면, 눈 덮인 그곳을 다시 찾고 싶단 생각이 새록새록 들던 시간.


창덕궁 산책


이른 아침, 그곳에 도착했을 때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국인들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모두들 마지막 단풍 구경을 놓치지 않으려 모여든 것 같았다.


다행히, 매표소 직원분들의 빠른 손놀림 덕분에 얼마 기다리지 않아 입장할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했다.


인정전(仁政殿)


창덕궁 초입부터 예쁜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기 시작했는데


쌀쌀한 공기에도 불구, 인정전에서 본 푸른 가을 하늘은 내 눈과 마음, 가슴까지 탁 트이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인정전


후원 관람 예약을 한 터라, 여유 있게 시간이 남은 탓에 창덕궁과 인근 창경궁까지 친구와 함께 걷고 또 걸었다.


내가 아는 얕은 역사 지식을 총동원하여 친구에게 이들 궁궐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예전엔 창경궁에 식물원과 동물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땐, 얽히고 설킨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또한 들려주게 되었다.


그 당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놀라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후원(後苑)으로


예약된 시간이 되어 후원으로 이동한 우리.


초입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 

이제 시작!

후원 초입. 울긋불긋 물든 나무들

후원의 단풍은 그 빛깔이 사뭇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색깔의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건지.


햇살이 닿는 곳마다 나뭇잎 색이 조금씩 바뀌어, 그 빛깔에 홀린 듯 한동안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색의 변화가 경이로운 단풍나무
햇살 아래 붉은 빛 가득


부용지(芙蓉池) & 주합루(宙合樓)


11월의 부용지와 주합루는 6월의 푸르른 녹음 속 모습과는 꽤 다른 느낌.

알록달록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부용지 위 연잎은 온데간데 없고

그때 부용지를 가득 덮었던 연잎은 사라졌지만, 눈부신 가을 햇살을 등에 업고 연못을 마주한 주합루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애련지(愛蓮池) & 애련정(愛蓮亭)


관람지(觀纜池) & 관람정(觀纜亭)


후원 풍경 중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들어온 것은 오색빛 나무 아래로 보이는 관람정과 관람지의 풍경.

가만히 서서 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관람정 & 관람지


존덕정(尊德亭) 옆 은행나무


지난 여름, 초록 옷을 입었던 '대왕' 은행나무가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그 자태를 뽐내던 모습.


노란빛이 눈부시다

내 친구 사만다는 노랑(은행나무), 파랑(하늘), 빨강(단풍잎), 흙색(나무줄기)을 버무리면 '김치'가 될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너무 사랑스러운 친구 모습에, 예상치 못한 비유에, 나 또한 깔깔웃음으로 답변할 수밖에.

빨.노.초.파.갈색 = 김치 ^^


청의정(淸漪亭)


청의정 앞뜰 벼는 가을 추수 후, 다시 심었다고 했다.


초록빛 벼가 청의정 지붕 색, 주변 단풍색과 조화롭게 잘 어울려 보였다.



소요암(逍遙巖)




단풍잎 사이 햇살


Epilogue


이른 아침 창덕궁의 공기는 초겨울만큼 차가웠으나, 정오에 가까워질수록 살에 닿는 햇살의 촉감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부드러워, 


대만 친구와 함께 한동안 그 햇살 아래 서서, '나무들의 색 잔치'를 즐기곤 했었다.


대만의 뜨거운 태양빛만 알고 있던 그녀에게, 늦가을 한국의 햇살은 따스하고 온화하여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열어주는 듯했다.


이 땅에 살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햇살의 느낌이 달라지는 걸 이토록 신기해하며 온 몸으로 흡수한 적이 또 있었을까.


그 날, 친구와 나를 포근하게 감싸던 창덕궁 후원에 내린 특별한 햇살, 

앞으로도 오랜 시간, 그 느낌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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