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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un 26. 2017

왕의 숲, 창덕궁 후원(昌德宮 後苑)에서

6월, 비밀의 화원(秘苑)을 거닐다

Prologue


습기 가득 머금은 공기.

한 두 방울 떨어지다, 보슬보슬 흩뿌리는 비.


고소한 흙냄새, 향긋한 풀냄새가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후원(또는 비원) 초입에 서니, 언덕 위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푸른 녹음이 내 두 눈을 빼곡히 채우던 그때,

해설사 선생님의 목소리도, 조잘조잘 떠들던 아이들 웃음소리도 천천히 멀어진다.


한 발 내딛는 순간,

그들이 걸었던 길을, 그때의 그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후원 초입. 푸르른 녹음(綠陰) 속, 돌담길이 정겹다
그 때의 왕들과 나란히 거닐다..
창덕궁 후원(昌德宮 後苑)


지난 1997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창덕궁.     


그 창덕궁의 뒤뜰, 후원은 조선 초기 태종이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환도하면서 짓기 시작했다(1406년).     


이후 세조가 후원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閱武亭)을 건립하였는데(1459년), 그 자리가 현재의 부용지(芙蓉池)인 것.     


후원 초입에서 조금 걸어 들어오자, 바로 보이는 첫 풍경.


그 아름다움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부용지 & 부용정
연못 위,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무늬가 사랑스럽다

부용지는 사각형 연못과 그 가운데에 원형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적 형태라고 한다.     


정조는 이 곳에 규장각(奎章閣, 1777년)을 지었고, 기존 택수재(澤水齋, 숙종 1792년)를 헐고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부용정(芙蓉亭)으로 바꾸었다.     

                  

해설사 선생님과 관광객들이 서 있는 곳은 영화당(暎花堂, 광해군 1610년).

왕이 입회한 가운데, 지방시험에 합격한 선비들이 모여 과거시험을 치르던 곳.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해설사 선생님

영화당 동쪽 춘당대(春塘臺)라는 넓은 마당은 무과 시험이 시행되었던 곳이다.     

원래는 담장이 없고 매우 넓었다고 한다. 굽이치는 소나무가 인상적

부용지 북쪽의 주합루(宙合樓, 정조 1777년)는 ‘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라는 뜻.     

주합루는 복층 구조로, 1층에는 왕실 직속 도서관인 규장각, 2층에는 열람실 겸 전망 좋은 마루가 펼쳐져 있다.


높이를 달리하였기에 어느 방향, 어느 거리에서든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는데, 무엇보다도 건축물의 규모가 과하지 않아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던 곳.

면학 분위기로는 최고인 듯

‘물고기와 물의 문’이라는 뜻의 어수문(魚水門, 정조 1776년)은 주합루로 올라가는 문으로, 왕만이 출입할 수 있고 신하들은 어수문 양 옆 협문으로 드나들었다. 즉 임금을 물에, 신하들은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君臣)은 서로 융화하는 관계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어수문(魚水門). 뗄레야 뗄 수 없는 물(임금)과 물고기(신하)의 관계

춘당대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두 번째 연못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 숙종 1692년)’에 이른다.


연꽃이 가득 핀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던 곳.     

혼자 왔다면 이 곳에 좀 더 오래 머물러, 녹음 진한 풍경에 한껏 취했을 터.


그러다 문득, 마음 맞는 좋은 이들과 정자에 둘러앉아 향긋한 연잎차 한 잔 마시고픈 마음이 일렁거려 차마 발걸음이 떼지질 않았다.


그 시절 왕들도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애련정에 앉아 연꽃을 우두커니 바라보면, 온전히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오랜 벗이 그립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련정의 붉은 기둥, 검푸른 기와, 초록 연잎이 극강의 조화를 이루는 풍경
정자에 앉아 연잎차 한 잔 하고파..
나무뿌리마저도 너무 근사한..

애련지를 지나 조금 걸어가면 한반도 지형을 닮은 연못인 관람지(觀纜池)(또는 반도지(半島池))와 존덕지가 있는 세 번째 연못가에 다다른다.

한반도를 닮은 연못

반도지에서 배를 타고 즐기다가 잠시 배를 정착하고 쉬던 곳으로 추정되는 관람정(觀纜亭).  


고요한 연못 위에 작은 배 하나 띄우고, 흘러가는 물결에 그저 몸을 맡기고픈 생각이 들었던 곳.

추측컨대, 정쟁에 몸과 마음이 지쳤을 왕들에게 이 곳은 분명, 최적의 힐링 장소였을 것이다.

정자 바닥이 부채꼴 모양인 게 주요 특징

6각정인 존덕정(尊德亭, 인조 1644년)은 지붕이 두 겹으로 만들어져 독특하며, 그 옆에 250년 된 은행나무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영험함까지 느낄 수 있다.     

특이한 6각 겹지붕
후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

존덕지와 관람지 사이의 다리를 건너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옥류천(玉流川).


이 일대는 왕의 우물인 '어정(御井),' 소요암 외에도 소요정, 용산정, 태극정, 청의정 등 여러 정자가 세워져 있다.

돗자리를 깐 듯한, 소요암

많은 정자 중에서도, 궁궐 건물 중 유일하게 초가지붕인 청의정(淸漪亭)이 유독 눈길을 끈다.

초가지붕과 초록 벼들의 조화가 멋진 정자

청의정 지붕은 정자 앞에 마련된 작은 논에서 임금이 직접 심은 벼를 추수한 후 볏짚을 엮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농업을 장려하고 민생을 챙기는 것이 임금의 으뜸된 도리임을 강조하는 것이었으리라.


논고랑 사이로 까맣게 보이는 자그마한 올챙이떼.

따님들이 올챙이를 잡아보겠다고 애쓰는 사이,

어느덧 창덕궁 후원 기행의 마지막 코스만 남아 있었다.

올챙이, 그대로 멈춰라!

사대부 사가(私家) 형식으로 지어진 연경당(演慶堂, 1828년).   

사랑채, 안채, 안 행랑채·바깥 행랑채, 서재, 정자, 연못 등을 갖춘 주택건축으로, 99칸집이라 불리고 있으나 실제 규모는 109칸 반이라고 한다. 연경당은 사랑채의 당호(堂號)이자 집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

연경당에서 공연이 열릴 때, 여기 앉아서 관람

이 곳에서는 단청(丹靑)으로 치장하지 않고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간직한 자연색 그대로의 목재를 볼 수 있다.

오래된 나무껍질에서 자라나는 이끼를 '나무 콧수염'이라 부르는 따님~

담장이 낮고 나무가 많은 데다 넓은 마당이 펼쳐진 이 곳에서 왕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구중궁궐 속 갇힌 삶이 아니라, 유년시절 자유롭게 마당을 뛰어놀던 때를 그리워하진 않았을까.

평범함 속 안락함을 꿈꾸진 않았을까.

 

그 앞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따님들을 보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정스러운, 나지막한 돌담
돌담을 돌아 나오며

창덕궁 후원을 나와 그냥 가기 아쉬워 들른 인정전(仁政殿, 태종 1405년).                     

역대 왕들이 정무를 행하고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등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건물. 임진왜란 때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선조 때 복구공사를 시작하여 광해군(光海君) 즉위년(1607년)에 다시 건립
내 눈엔, 지붕 끝자락 꽃문양이 눈에 쏙~하고 들어오더라는..

한 시간 반 동안 후원을 돌았기에 휴식이 필요했던 우리.

인정전 앞 계단에 앉아 정답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창덕궁 후원 기행을 훈훈하게 마무리.   

  

Epilogue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린 날.

갈라진 내 마음엔 촉촉한 꿀비가 내렸다.   


유한한 삶 속,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얼마나 누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흘러가는 시간 속, 내 눈 앞에 존재하는 이들을 그때그때 온몸으로 사랑하기로 했다.


후텁지근한, 습한 공기가 사랑하는 이들의 '함박웃음 체'에 걸러지면서 시원하고 상큼한 풀꽃 내음으로 변화하는 순간,


내가 한 발, 그들에게 다가가니

6월의 아름다운 신록(新綠)이 내게로, 우리에게로 왔다.


6월의 창덕궁 후원, 가을에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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