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자, 영원히
타이난의 유적
하늘에서 보슬비가 흩뿌리는 오후, 쓰덴우먀오(사전무묘, 祠典武廟)를 나오며 우리는 본격적으로 타이난 유적 기행을 시작했다.
* 이동 경로
츠칸러우(적감루, 赤嵌樓) - 국립대만문학관 - 쿵쯔먀오(공자묘, 孔子廟)
츠칸러우(적감루, 赤嵌樓, Fort Provintia, 1653년)
타이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츠칸러우'는 네덜란드인들이 대만 점령(1653년) 당시 축조했던 '프로방시아 성(普羅民遮城)'이라는 요새로서, 현재 대만의 중요 유적 중 하나.
청조시대 반청복명(反清復明) 세력을 이끌던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군을 격퇴(1661년) 한 후 행정관청으로 사용하였으나, 지진(1862년)으로 인해 허물어져 성벽 하단만 남았고,
이후 그 위에 유교 사원(문창각, 文昌閣)과 도교 사당(해신묘, 海神廟)이 세워졌다고 한다(1886년).
유교 사원인 문창각(文昌閣)은 학문/교육을 주관하는 신을, 도교 사당인 해신묘(海神廟)는 바다의 신인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모시는 곳.
문창각을 둘러보며, 세상 어딜 가나 자식들 교육에 모든 정성과 에너지를 쏟는 부모 마음은 한결같고, 시험성적을 잘 받으려는 학생들의 마음도 대동소이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해신묘에서는 바다로 나가는 이들의 안전을 신들께 비는 풍습 또한 만국 공통인 듯하여, 사람 사는 게 어디든 유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국립대만문학관(國立台灣文學館, 1916년)
오락가락하던 보슬비가 그칠 때 즈음, 자전거를 숙소에 반환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닿은 곳은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인 '국립대만문학관.'
이 곳은 대만 최초의 문학관(1916년 건설, 1997~2003년 보수)으로서, 식민지 시대부터 현대까지 연대별로 대만 문학이 총정리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그 날, 2층 전시실에서 대만 작가 '周定山(저우 딩 샨)'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周定山(1898-1975) : 식민지 체제 하 지식인 및 권력층의 위선과 고통받는 대중의 애환 등을 주제로 사실주의 작품을 쓴, 현실참여/저항문학을 대표하는 대만 작가
내가 알고 있는 대만 작가는 룽잉타이('사랑하는 안드레아', '눈으로 하는 작별' 외 다수) 뿐이라서, 전시회 주인공에 대해 잘 알진 못했지만,
조용한 분위기 속, 수백 년 전 외세의 총칼에 쓰러져간 타이난 원주민들을 생각하며 지은 그의 시를 읽을 땐(대만 친구의 도움을 받아), 마음 한 구석이 저릿저릿해 왔다.
외세 침입과 통치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대만과 한국.
우린 분명, 서로를 보듬을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쿵쯔먀오(孔子廟, Confucius Temple, 1655년)
국립대만문학관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더 걷다 보면 대만에서 최초로 설립된 공자 사원이자 1급 유적인 '쿵쯔먀오(孔子廟)'를 만날 수 있다.
이 곳에서 수많은 고급 인재를 배출하였기에, 최고의 학교라는 의미에서 '전대수학(全臺首學)'이라고 불린다.
붉은 문을 들어선 후 대성방(大成坊)을 지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100년 넘은 나무들이 무성한 넓은 정원도 만날 수 있다.
속이 시끄러울 때 이 곳을 찾아 찬찬히 걸으면, 내 안의 혼란함이 금세 차분하게 가라앉을 것 같은 분위기.
고도(古都) 특유의 고즈넉함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타이난 유적기행을 마무리하고 근처 가게에서 '펑리수(파인애플 케이크)'를 사고 있을 때, 시원하게 스콜이 한번 내려주었다.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 등 우리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내 버리려는 듯.
여행의 시작과 끝을 비로 시작하여 비로 마무리를 하게 되니, 왠지 이번 여정이 우리의 힐링을 위한 '신성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타이난 음식 기행
사실, 우리의 타이난 음식 기행은 이른 아침 자전거 유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만두류, 국수류, 어죽(rice congee), 전병 등 간식거리, 동과차(冬瓜茶), 디저트 등 우리가 맛보았던 여러 가지 다양한 음식 중 5가지만 소개해 볼까 한다.
(1) 자전거를 타고 아침 공기를 가르며 처음 들렀던 곳은 '리엔더탕삥푸(連得堂餅舖)'라는 전병 전문점.
어떤 전병이든 1인당 두 봉지만 살 수 있는 곳.
골목 깊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골목 입구에서부터 전병 굽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곳.
달걀 맛, 해조류 맛 두 봉지씩 사서 자전거 바구니에 담고 본격적인 먹거리 사냥에 나섰다.
(2) 대만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시장 먹자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우리가 선택한 '오징어 쌀국수집.'
오징어만 넣고 그 외 양념을 일절 가하지 않고 끓여내어 담백하면서도 약간 단맛이 나는, 게다가 쫀득한 식감이 살아있는 쌀국수 면까지.
부담 없이 담담한 맛이 내 입에 잘 맞아, 국물을 끝까지 쪽쪽 다 떠먹었던 기억.
(3) 다음은 대만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디저트 가게 ‘Chun(純薏仁).’
율무, 단팥, 말차, 떡으로 그리 달지 않게 만든 디저트 ‘바이위홍또우이런(白玉紅豆薏仁)’을 먹으며, 대만 친구에게 한국엔 눈꽃빙수가 있다고 설명하느라 내 입이 분주했던 시간.
(4) 흥미롭게도, 시장을 이동하다가 대만 친구가 예전부터 이야기했던 ‘골든 김치’를 맛 볼 기회가 있었다.
나의 모든 기대와 예상을 깨고 내 입맛에 너무나도 잘 맞아서 무척 놀라웠던, 상큼하면서도 간간함이 어우러져 맛있는 샐러드를 먹는 느낌이었다.
한국의 빨간 매운 김치가 대만으로 가서 '노란 상큼 샐러드'로 진화한 것 같아 살짝 대견한 마음도 들었던 순간.
(5) 마지막으로, 타이난 하야시 백화점으로 가는 길에 만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소월(度小月) ‘딴자이멘(담자면, 擔仔麵).’
대만의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딴자이멘은 닭뼈나 해산물을 우린 육수에 면을 넣고, 다진 돼지고기, 새우, 부추, 고수, 훈제 달걀 등을 얹은 국수.
이 유명한 음식은 타이난 어부들이 고기가 잡히지 않는 흉어기를 넘기고자 국수를 만들어 팔았던 데서 시작되었다 한다.
보기보다 기름지지 않고 진하고 깊은 국물 맛이 굉장히 중독성이 있었다.
당일 저녁, 타이난을 떠나 타이베이로 이동하면서, 그리고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도 그 맛이 혀끝에 맴돌았던, 흔치 않은 경험을 했었다.
대만 친구 덕에, 지하 10층에서 잠자고 있던 '식욕'이라는 녀석이 오랜 동면을 끝내고 비상하기 위해 꿈틀대고 있음을 느꼈다고나 할까.
좋은 음식에서 비롯된 좋은 에너지가 내 몸과 마음의 기력 회복을 돕고, 앞으로 나의 미션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더 좋은 기운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친구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위로와 치유
대만에 머물렀던 이틀 동안 우리의 평균 취침시간은 새벽 3시, 기상시간은 오전 7시 반.
이 곳 저곳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고, 숙소에 돌아온 후에도 우린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마음을 나누었다.
2015년 봄, 매년 개최되는 국제회의에 대만 대표단, 한국 대표단으로 참여하면서 처음 만난 우리.
첫 만남부터 무언가 '통'하는 느낌 때문에, 나이와 국적, 언어 차이를 떠나 금세 '친구'가 되었다.
공식적인 회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날 밤엔 어김없이 호텔방이나 근처 바에서 만나, 맥주 한 잔과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우리였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동안 미처 몰랐던 서로의 깊은 아픔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난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드러난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입김과 사랑의 연고를 발라주었던 시간.
그 순간, ‘위로와 치유의 정령’이 우리 곁에 내려와 앉는 느낌이었다.
서로의 내면을 응시하며 아픔을 공유한 덕분이었을까. 쉽게 드러낼 수 없었던 상처가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아물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 더 즐겁고 행복할 일만 남았음을,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언제, 어느 곳에 있든 우린 서로를 느낄 수 있음을,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서로가 앞으로의 삶을 변함없이 지지하고 응원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Outro
귀국할 생각에,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이 넘쳐흘렀던 대만에서의 마지막 날 밤.
그럼에도, 우린 한껏 웃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시간의 끝을 부여잡고 있었다.
사랑과 우정, 행복이 가득했던 이번 여행으로 에너지가 바닥났던 내 배터리는 충전 완료.
다시 또 꿋꿋하게 살아갈 ‘깡’을 얻었다.
여행은 이렇듯, 기대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선물을 주는 것 같다.
그것도 진하고 감동적으로.
이 기분 좋은 끈적함이 그리울 때, 다시 짐을 싸고 문지방을 가볍게 넘어서는 거겠지.
다시 행복하고 싶을 때, 떠나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나비처럼 가볍게 훨훨.
"I have no doubt that you are on the right path and you're going through the process of transforming yourself to be a butterfly. Being through the process is not easy, BUT, you're not alone because we're connected." (내 친구 Samantha의 메시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