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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Nov 03. 2019

[지극히 사적인 전시회 답사기](14)

(14) 일본의 사과가 중요한 이유 – 아이치트리엔날레 ‘평화의 소녀상’

 할머니의 첫 마디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위안부 아니에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 방송국도 바쁘게 움직였다. 필자 역시 긴급 아이템 제작에 투입되었다. 불매운동 현장과 일본 현지 반응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PD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흩어져 취재를 했다. 이번 이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강제 징용 피해 당사자도 빠뜨릴 수 없었다.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이후로도 계속 된 여러 합의문과 해석들 그리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대법원 판결까지. 과거 취재 기록들을 뒤져서 원본 자료를 찾아 읽고, 확인하고, 이해하고, 외우기를 이틀 만에 하려니 머리가 복잡했다. 현재 소송을 맡고 있는 변호사를 먼저 만난 터라 나의 머릿속은 개인 청구권과 승소 가능성에 대한 논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 동안 합의문에 허점은 없었나. 계속 법적 논리와 해석들 의심하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촬영팀을 보자마자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소송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할머니가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를 선을 그어 구분하는 말을 더 쏟아 내셨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언어들은 할머니를 오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마치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은 그런 부류가 아닌 ‘깨끗한 여인’이었다고 해명하려는 것 같았다. 생각지 못한 인터뷰 진행이었다. 이 피해자 어르신을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지 혼란이 왔다. 고민이 표정으로 드러났나 보다. 동행한 시민대표가 ‘강제피해 어르신도 이렇게 말하는데 위안부 끌려가신 분들은 삶이 어땠겠냐’며 인터뷰를 잠시 끊는다. “어르신, 위안부 할머니들 더러운 사람들이에요?”하고 그는 물었다. “아니지, 아니지. 그 때는 내가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하고 싸우고 그랬지.” 할머니는 일본에 끌려간 피해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한때 위안부 할머니들을 색안경을 끼고 봤던 것을 후회하고 있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말끝에 자신은 위안부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피해자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선과 등급. 위안부 할머니들은 피해자들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 취급을 당했을 것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상상조차 못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말에 두 시간동안 귀 기인 이후에 비로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졌다. 할머니는 일본에 끌려가 월급을 못 받은 것에 대한 분노보다 ‘일본 갔다 온 여자’, ‘위안부 여성’이라는 프레임으로 규정되어 나머지 삶도 평탄치 못했던 것에 원망이 컸다. 약혼자와는 파경을 맞았고, 일부러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 타지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 생활도 원만하게 하지 못했다. 이웃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벽을 느끼며 살아온 시간들을 이야기하면서 씩씩해 보였던 할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할머니를 직접 만나니 강제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할머니들이 왜 그렇게 죽기 전에 일본의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일본에서 지낸 시간은 짧게는 18개월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가족, 결혼, 자녀, 노년의 인생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지금도 시장에 가면 위안부 할머니로 통한다. 팔십 평생을 따라다닌 동정과 색안경. 배상 소송에 대해 나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무장하고 접근한 취재였지만, 방송이 끝나고도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같은 여자로서 위로하고 싶은 감정이 한참 남아있다.          


 그 때문일까. 유독 요즘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사로 지켜보는 전시가 있다.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예술제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됐다. 소녀상 철거에 항의한 한국 작가들의 전시 작품도 철거가 결정되었다. 시위와 논쟁이 계속되자 주최 측은 전시 사흘 만에 전시회 자체를 폐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시회의 부제는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이다. 미술도 표현이 어렵지만 사과는 순수하게 진심을 담아 표현하기 더 어렵다. 뻔하지 않은 표현으로 온 마음을 다해 당사자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혹시 피해자가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게 눈치를 보며 해야 하는 것이 사과인 것을.... 필자 역시 위안부 어르신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외면과 내 감정만 생각했던 이기심에 대한 미안함을 전해야할지, 그 조차도 너무 가벼워서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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