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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Nov 27. 2018

[나의 지극히 사적인 전시회 답사기] 서예

③처음 만난 서예의 세계 - <명필을 꿈꾸다>展



                                                                                                  이채PD

 

  <진품명품>을 연출하는 젊은 PD로서 신기한 일이 있다. 프로그램이 방송된지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골동품의 감정평가를 의뢰하는 문의 전화가 아직도 일주일에 몇 번씩 걸려온다는 점이다. 집집마다 몇 십 년씩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골동품 보다는 고(古)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는 서비스 차원에서 지역 사회에 찾아가 제작하는 코너가 ‘출장감정’이다. ‘출장감정’의 의뢰품들은 대부분이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투박하고 거칠다. 추정감정가도 몇 십 만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그 의뢰품들의 가치가 어떻든지 간에 보자기에 꽁꽁 싸서 가져오기도 하고, 여행용 캐리어 가방에 담아 오기도 한다. 시골 마을의 경우 경운기나 리어카에 싣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역 촬영을 하면 100여명의 시청자가 200여개의 고미술품을 의뢰하기도 한다. 모이는 의뢰품의 품목은 병풍, 그림, 가마, 도자기, 비녀 등으로 다양하다. 이 중 가장 많이 모이는 의뢰품은 ‘서예’와 ‘서책’이다. 


  동양미술 보다는 서양미술이 더 익숙한 PD에게 가장 어려운 아이템도 ‘서예’이다. 감정위원들이 분야별로 의뢰품 감정을 할 때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장르도 ‘서예’이다. 하지만 고미술 시장에서 서예나 서책의 가치는 도자기나 그림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왜긴 왜겠어? 한자를 모르니까 감상할 줄 모르는 거지”하고 자문위원님이 툭 던진다. 


 한자를 정규 과목으로 배우지 않은 세대인 ‘나’도 독음을 대략 추측해서 읽어야 하는 수준임을 고백한다. 곡선으로 마구 흘려 쓴 초서체는 도대체 읽으라고 쓴 글씨인지, 예술작품으로 감상하라고 그린 그림인지 해석하다가 울화통이 터질 때가 많다. 나에게 ‘서예’는 피하고 싶은 아이템이지만, 가장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장르이다 보니 피할 수 만은 없었다. ‘도대체’ 서예의 기본은 무엇인지 기초부터 닦고, 그 전에 흥미부터 갖자는 생각에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명필을 품다’ 전시회를 찾았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비해 아기자기한 외관과 잔디밭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전시관 입구에 쓰여 있는 한자들이 나의 마음을 눌렀다. 전시회의 프롤로그를 또 읽고, 또 읽었지만 처음 들어보는 ‘임서, 첩학, 비학’이라는 단어들과 ‘건륭제, 가경제’ 같은 중국의 황제들의 이름은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등학생 딸아이에게 무작정 역사책을 읽으라고 했는데, 딸아이도 책상 앞에서 나와 같이 두통을 느꼈겠구나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나 보다.

 

 관람객이 없는 전시실을 혼자 몇 바퀴를 돌며, 서예 작품들 주변을 꾸역꾸역 바라봤다. 같은 내용의 글들이 쌍을 이루며 나란히 나열되어 있는 것을 눈치 챘다. 대다수가 중국 서예가 ‘왕희지’의 글씨체를 똑같이 따라 쓴 작품들이었다. 전시된 작품의 제목 조차도 ‘왕희지의 <필진도>를 사자관 이수장이 따라 쓴 글씨’‘왕희지의 <난정서>를 김정희가 따라 쓴 글씨’라고 되어 있으니, 전시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이건 결국 ‘흉내내기’일뿐 뭐란 말인가. ‘결국 한국의 문화는 중국에서 온 셈이구나’ 생각하니 서예 장르가 더 재미없게 느껴졌다.


<왕희지의 '난정서'를 김정희가 따라 쓴 글씨>



<왕희지의 '악의론'을 오준이 따라 쓴 글씨>


 괜히 왔다는 후회가 밀려오려 할 때, 전시관 후반부에서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덕온 공주의 손녀가 쓴 글씨 연습 자료’가 그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즈음으로 추정되는데, 아직 한글이 정착되지 않아서 인지,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 연습장 같았다. 그 옆으로는 ‘만석군전’ 소설을 정조의 부인 효의왕후 김 씨가 베껴 쓴 연습장도 있었다. 현재의 한글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웬지 어설퍼 보이는 글자 모양과 한 글자 한 글자 힘들여 쓴 붓글씨들을 보니 귀엽기도 하고 작은 감동도 밀려왔다. 
 벽을 따라가며 작품들을 볼수록, 서체들이 점차 현재 한글의 모습을 띄었다. 궁녀들이 편지지 뒤의 자투리 공간에 베껴 쓴 한글 소설부터 ‘국민학교’와 ‘문교부’가 존재하던 시절의 한글 연습장까지. 그냥 글을 베껴 쓴 것이 아니다. 글씨체까지도 똑같이 따라 쓴 것이다. 이제야 ‘명필을 꿈꾸다’ 전시의 컨셉인 ‘임서’의 뜻을 알게 되었다. 고전 서예 작품을 따라 쓰는 것을 의미하는 ‘임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한자 임서 뿐만 아니라, 17세기 추사 김정희의 서체를 따라하는 단계를 거쳐, 20세기 초 한글 따라 쓰기의 교본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전시회의 프롤로그를 살펴봤다. “앞선 서예가들이 수백 수천 번의 ‘따라쓰기’라고 하는 지난한 모방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창조해 가는 도약의 과정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한글 서체의 무한한 가능성과 가치를 발굴해 나가길 빈다”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롭게 연출하느라 지치기도 하고, 자심감도 점차 잃어가는 16년차 PD에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서예 전시회가 뭔가를 던져주는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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