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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ron 하의정 Aug 01. 2024

낚시에 성공한 고양이

길고양이 솔_3

꿈을 꾸었다. 고양이 30마리가 내 앞에 모였다. 길냥이 ‘솔’을 만난 지하 주차장에 각종 무늬와 털색을 가진 고양이가 우르르 모였다. 많은 고양이에 놀라면서도 놀아줄까 하여 “이리 와!” 외치며 주차장 반대편으로 뛰었다. 고양이들이 나를 따라 뛰었다.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는 고양이 무리 속에 ‘솔’이 보였다. ‘솔’은 날아오르듯 내 얼굴 높이까지 뛰었다. 난 ‘솔’을 쓰다듬으며 주차장 끝까지 신나게 뛰었다.


꿈에서 깨기 싫었는지 늦잠을 잤다. 눈을 뜨고도 간밤 꿈 생각을 하며 한동안 누워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이상한 꿈이었다. 빈 밥그릇 편지만 남기는 길냥이 ‘솔’을 못 본 지 한 달이 넘어, 보고 싶고 궁금하던 참이었다. 현실에서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데 꿈에서는 솔을 쓰다듬다니.... 보드라운 털의 감촉이 손끝에 남아 있는 듯 했다. 


‘솔’을 주차장에서 만난 계절은 모든 것이 얼어버리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어느덧 반년이 흘러 이제는 모든 것을 태울 듯 뜨거운 계절이 왔다. 태양이 열기를 뿜기 시작하는 낮 시간은 반소매 밑으로 내놓은 팔이 바싹하게 구워지는 듯 따가웠다. 길가 화단에서 쉬고 있는 까치도 입을 벌리고 더운 숨을 내뱉었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솔’이 얼마나 더울지 상상도 안 됐다. 


더위에 늘어져서인지 회사 일이 밀렸다. 그래서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날도 많았다. 밤 11시에 ‘솔’도 오지 않으니 시간을 훌쩍 넘겨 밥그릇만 놓고 오는 날이 잦았다. ‘왜 꿈에 나타났을까?’ 꿈에 나온 ‘솔’을 생각하며  밤 11시 17분. 아파트 정문을 빠른 걸음으로 통과했는데,  아파트 1층 현관 옆 어둠 속에 앉아 나를 보고 있는 익숙한 고양이가 보였다. ‘솔’이었다. 


“어어? 솔?! 기다려! 금방 다시 올게!” 


아파트 우리 동 앞에 갑자기 나타난 ‘솔’에 당황하면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뛰어 들어가 밥그릇들과 사료, 물, 참치를 챙겨 들고 바로 내려갔다. 가 버렸을 거란 내 예상과 달리 날 보더니 그제야 일어나 현관 옆 필로티 공간으로 걸어갔다. 난 따라가 멀찍이 기둥 옆에 사료와 물그릇을 놓아 주었다. ‘솔’은 하루 종일 목이 말랐는지 놓아준 참치물을 쉬지 않고 할짝이더니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갈증이 해소된 듯 입맛을 쩝쩝 다신 ‘솔’은 아파트 현관 앞 정원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에 본 ‘솔’이 반가워 맞은편 의자에 나도 앉았다. ‘날 기다렸나? 설마... 집을 안다고? 우연이겠지.... 희안하네....’ ‘솔’은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인지 가끔 귀를 쫑긋거리며 내 눈을 한참 마주쳤다. 어둠 속에 ‘솔’의 눈이 빛났다. 


고민이었다. 밥그릇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계속 놓아준 지하 주차장? 새 장소인 1층 필로티? 편한 장소를 선택하라고 밥그릇을 더 장만해 양쪽 장소에 밤 11시 밥그릇을 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깜짝 놀랐다. 양쪽 장소에 깨끗하게 비워진 밥그릇 편지들이 굴러다녔다. 이 많은 양을 ‘솔’이 다 먹는다고? 


기온이 한여름으로 점점 더 가까워졌다. 지하 주차장에는 안 보이던 고양이들이 많이 보인다. 치즈색 고양이가 나타났다. 입가가 누런 고양이도 보였다. 도토리 색 고양이도 멀리서 날 지켜봤다. 온몸이 하얀데 검은콩이 등에 박힌 듯한 무늬의 고양이도 왔다.  지하 주차장 밥자리는 목이 마른 친구냥들에게 양보했고, ‘솔’은 1층 필로티에 종종 나타났다.

 

이쯤 되니 나는 ‘솔’이 쳐 놓은 낚시에 걸린 것 같다.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밀당의 고수로 내 애간장을 태웠다. 꿈에 나타나 설레게 하더니, 집 앞까지 찾아와 깜짝 놀라게 하고, 목 마른 친구냥들도 소개했다. 늘어지지 말고 더 열심히 일하라며 하악질도 한다. 고양이 사료값이 몇 배로 나간다. 탈탈 털리고 있다. 제대로 걸렸다. 

 







     솔 : “어이 사람! 내 사냥 솜씨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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