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침대 자리가 아침 일찍 정리되더니 하루 종일 비어있다. 온통 하얀 병실 안에서 파란 하늘이 보이는 창가 자리다. 그 자리가 탐이 났지만, 배정된 자리를 바꿀 순 없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그 자리에 머물며 창가 밖 하늘을 구경했다. 시간이 파란 하늘 구름처럼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불 꺼진 병실 안을 체크기계 끌고 들락날락 거리는 간호사들로 잠을 못 자고 있다. 옆 침대가 소란스러워 시계를 보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다. 길게 쳐진 커튼을 살짝 들췄다. 굵은 펌 머리가 멋진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한숨을 연달아 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창밖을 쳐다보며 서 있다.
“아주머니, 거기 환자복 갈아입으시면 되고요. 의사는 아침 7시쯤 회진하세요.”
나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튼을 닫았다. 잠시 뒤 아주머니는 병실 문을 닫고 나갔다. 큰 짐가방을 침대 위에 펼쳐 놓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나가버려 그날 밤 볼 수 없었다.
“여기 환자분 어디 가셨어요?”
“어젯밤 오셔서 바로 다시 나가셨어요.”
아침 7시보다 훨씬 일찍 온 담당 의사와 인턴 의사들이 기록지에 무언갈 끄적이더니 어수선하게 병실 밖을 나갔다. 그리고 20분 뒤 병실로 뛰어 들어온 아주머니는 나에게 물었다.
“의사선생님 왔다 갔어요?”
거친 한숨을 연거푸 내쉬는 아주머니는 침대에 펼쳐진 짐은 정리 안 하고 나에게 사과 한 알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미국에서 어제저녁 늦게 도착했다. 병원에 오자마자 응급으로 여러 검사를 받았다. 피곤함에 코를 많이 골 것 같아 병원 근처 호텔에서 쉬고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구름 한 점 흐르지 않아 볼 것 없는 창밖을 내다보며 사과 한 알을 통째로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10시가 되자 담당 의사가 빠른 걸음으로 왔다. 아주머니는 혈변을 얼마 전부터 보았는데 어젯밤 병원 도착 후부터는 정상 변이 나온다고 했다. 그밖에 여러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는 피검사 등 모든 검사에서 깨끗하게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번에 재발한 거면 4차인데 이쯤 되면 암도 살아있는 세포라 학습이 되어 숨어버린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놀라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담담했다. 이런 경우 얼마나 남은 거냐고 했다. 의사는 희망을 품고 다시 치료해 보라는 말을 녹음기처럼 꺼냈다. 주변 신변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6개월이냐 3개월이냐 알려달라는 말에 의사는 암 환자는 ‘늘 정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늘 정리하는 삶’
그 말을 휴지버리듯 툭 내뱉고 손목시계를 흘깃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숨소리도 낼 수 없다. 아주머니의 거친 한숨 소리만 들린다. 창문을 등지고 눈만 껌벅거리며 서 있던 아주머니는 펼쳐져 있던 짐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나갔다.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나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완치라는 건 없는데 그래도 참 안심되는 단어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급작스러운 죽음. 시한부로 정해진 죽음. 명을 다 채우고 죽는 죽음. 아침엔 사과를 꼭 먹으라던 그 아주머니 말 따라 사과 한 알을 씻어 우적우적 씹으며 모니터 앞에 앉았다. 책상 옆 창밖을 본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느리게 흘러간다.
“멋쟁이 아주머니. 잘 가신 거죠? 차마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못 꺼내 인사도 못했어요. 그곳은 어때요? 이제 안 아픈 거죠? 오늘은 하늘이 참 파랗게 예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