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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Jul 06. 2021

락다운이지만, 갓김치 열무김치


설마 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호주의 많은 지역들이 또다시 락다운(봉쇄령)이 내려졌습니다. 고랑이의 다이어트를 위해 집밥으로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저희 커플은, 그래도 기념일만큼은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고 몇 주간 손꼽아 기다렸는데 아무래도 올해는 집에서 여유롭게 기념일을 즐겨봅니다. 


일단 2주간 고랑이는 회사를 가지 못하게 되었고, 얼마 전에 이미 회사 사정으로 썼던 얼마 남지 않은 연차에 무급휴가를 쓸지도 모르는 상황에 울상 짓는 이모티콘을 잔뜩 보냅니다.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마스크를 쓰고 퇴근길에 한인마트에 들려 장을 간단히 보고 락다운을 보낼 준비를 하기로 합니다.



"자기야, 이 귀여운 무는 무슨 뭐예요?"

볶음용 국물용 멸치와 북어 말린 것, 두부, 한국 고구마 그리고 고랑이가 좋아하는 마늘쫑과 순대 등을 담으며 장보는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는데 고랑이가 갑자기 기다란 초록색 줄기를 들고 옵니다. 꽤 오랜만에 보는 귀여운 무 모양의 열무 이더라고요. 정말 작은 무같은 열무의 뿌리 부분에 웃음이 나왔다가 아직 열무김치를 먹어보지 못한 고랑이에게 새로운 김치를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자리 잡은 제법 싱싱한 갓도 한 다발 집어 듭니다. 


열무김치, 갓김치

엄마 집에 가면 빨간 김치통 가득 국물이 자작하게 올라와 연보라색 양파가 달큼하기 까지 한 열무김치, 작은 독 모양의 제법 깊게 익은 갓김치를 나무젓가락으로 조심조심 꺼내서 줄기 부분을 가위로 잘라서 밥에 올려먹으면 정말 밥도둑이 따로 없던 갓김치 생각에 입에 침이 절로 고입니다. 둘 다 해본 적이 없는 김치이지만, 그래도 고랑이에게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락다운에는 김치만큼 식비를 줄일만한 효자 아이템이 없기에 장바구니에 빨간 파란 고추도 넉넉하게 채워 계산을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데치고 소분해서 냉동실에 얼리거나, 남은 야채들은 저녁에 볶아먹을 용도로 한입거리로 썰어둔 뒤 본격적으로 싱크대에 물을 받아 야채 전용 칫솔로 열무를 깨끗하게 씻어줍니다. 줄기와 뿌리가 이어지는 부분은 특히 칫솔의 솔을 야무지게 잘 사용해서 몇 번 헹군 뒤, 제법 잘 손질된 갓과 열무는 굵은소금과 함께 재워두도록 합니다. 



냉동실에 남아있던 새우젓도, 제법 물러서 주스로 갈아 마실까 싶었던 배와 사과, 두툼하게 소분해두었던 무, 한인마트에서 사 온 통통한 고추를 어슷 썰기를 하고, 지난주부터 자주 사용하던 보라색 양파를 잘게 썰어가며

락다운 상황에 대한 뉴스를 챙겨보며 갓김치와 열무김치를 만들 준비를 합니다. 


이전 락다운 때마다 오이소박이와 감을 넣은 물김치, 배추김치, 총각김치를 담그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조금 축 쳐질듯한 기분이지만 새빨간 고추 빛깔과 귀퉁이를 잘라먹어봅니다. 제법 아삭하지만 질기지 않은 갓과 열무의 상태에 입꼬리가 금새 올라가며 이 시간을 잘 보내보자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도와주고, 만드는 방법을 메모하는 고랑이를 보니 이번 락다운도 잘 지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며칠 실온에 갓김치와 열무김치를 보물단지처럼 하루에 몇 번이나 살펴보는 고랑이는 거품이 살짝 보글보글 잘 올라왔다며 잘 익은 것 같다고 두 개의 김치통을 한쪽 겨드랑이에 사이에 끼고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겨울햇볕이 제법 잘 드는 날,  창을 활짝 열고 청소를 하는 동안 쌀을 잘 불렸다가 뜨끈한 밥을 한 뒤, 김과 계란 프라이에 갓김치와 열무김치를 올려 간단한 점심을 먹어봅니다. 저는 말하지도 않았는데 고랑이가 참기름병을 가져오더니 비빔밥같이 비벼먹으려 하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집 밖을 거의 나가지 못하는 락다운이지만, 김치 하나에 웃을 수 있으니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봅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라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갓김치와 열무김치 사진을 찍어 보내봅니다. 

다른 곳에서 다른 계절을 살고 있지만,  갓김치와 열무김치를 먹으며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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