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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Aug 07. 2021

양손으로 매콤하게 비벼 후루룩

**안녕하세요 유자 마카롱입니다. 다음 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한 편의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새 직장과 일이 조금 익숙해지면, 다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글을 들고 와 찾아뵐게요. 구독자님들, 좋은 주말 주일 보내세요! :) **


"자기야, 이거 봐 봐!" 

6주 동안 머리를 자르지 못한 고랑이의 머리는 고무줄로 묶으면 사과머리가 될 만큼 길어져 본인 앞머리를 손으로 묶어 원시인 소년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벌써 시드니는 다시 락다운이 이제 7주 차에 접어듭니다. 락다운 동안 미용실은커녕 장을 보는 것도 집 밖 10킬로 이상도 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전에 8킬로쯤 떨어진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곤 합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이 락다운 동안 이직을 하여 100프로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에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했고, 고랑이의 직장은 문을 닫은 상태여서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보내준 무릎까지 오는 수면 바지를 입은 고랑이는 저만큼 길어진 꽁지머리를 한채 매일 땅끄 부부 영상을 보며 운동을 한 뒤, 본인이 어릴 때 좋아하던 만화 영상과 슈퍼 히어로 연속극을 챙겨보며, 집안일을 도맡아서 합니다.

락다운과 재택근무

재택근무는 시간이나 비용을 아껴주기도 하지만, 일에 집중도나 상황에 따라 내가 자율적으로 정하지만 효율성 있게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일과 직장은 전에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업무라 더 빨리 적응해서 팀의 흐름과 방식에 따라가려고 몰입을 하다 보면 수시간 앉아서 모니터만 바라보게 되고, 여러 나라의 시차를 따져가며 일을 해야 하니 평소 생활패턴보다 모든 것이 더 몇 시간 빠르게, 혹은 몇 시간 더 느리게 진행됩니다.


더군다나 락다운이 길어지면서, 일주일 내내 집을 벗어나지 못한 채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늘 그래도 식탁에서 고랑이와 앉아서 직접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던 저녁 시간과 점심시간은 점점 줄어들어 시간을 쪼개듯이 식사를 뒤늦게 하다보니 저의 건강을 걱정하는 고랑이의 한숨이 늘어납니다. 물론, 그 마저도 어려운 날에는 일 중간중간 과일이나 삶은 계란 같은 간식에 잔소리를 양념으로 덧붙여 챙겨주는 고랑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더해집니다.


"오늘은 내가 꼭 점심에 맛있는 거 해줄게! 오늘 같이 점심 먹자!"

아침 근무 중에 마시는 레몬차 티백에 새 찻물을 채우러 잠깐 나왔다가 쭈욱 쭈욱 스트레칭도 해보고, 화장실도 잠깐 다녀온 뒤 고랑이에게 말해 봅니다. 며칠새에 더 길어진 꽁지머리를 한 고랑이는 '정말?' 이라며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물어봅니다. 제가 '젓가락만 준비해줘.'라고 했더니 한국음식 전문가가 다 된 고랑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오! 국수다 국수!" 


락다운 시작 때 담았던, 냉장고에 작은 장독대 모양에 담았던 열무김치를 꺼내서 한 입 크기로 썰어봅니다.

냉장고에 남았던 오이도 조금 썰어보고, 김치 양념 국물에 참기름, 간장, 식초와 레몬즙을 쪼르륵, 고춧가루를 더한 뒤, 작은 무 한토막을 강판에 갈아서 시원함을 더해줍니다. 옆에서 눈치 빠르게 국수를 삶을 물을 올려준 고랑이는 국수를 얼마큼 넣냐고 물어봅니다. 고랑이가 국수나 파스타를 좋아해서 2인분 국수를 넣으면 정말 6인분을 만드는 재주가 있거든요.

비빔국수


국수가 여러 번 끓어오를 때마다 찬물을 넣어서 꺼뜨려준 뒤, 얼음물을 준비해 잘 익은 국수 면발을 기다란 머리를 감기듯 고루고루 헹궈주며 탱탱하게 씻어줍니다. 국수에 남은 밀가루 전분기를 잘 빼주어 체에서 물기를 꼭 빼준뒤, 양푼에 준비해 두었던 양념과 열무김치에 두세 번에 국수를 둥글게 말아주듯 나누어 비벼줍니다. 

 

예쁘게 국수 똬리를 틀어주어, 하얀 국수의 결을 예쁘게 그릇에 올려준 뒤, 군침이 도는 빨간 양념장을 김치와 함께 중앙에 올려주면 더 예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손으로 국수를 비비는 촉감이 그리워서 양푼을 살짝 돌려주며 오른손으로 한번, 왼손으로 한번 양손을 번갈이 국수를 스냅을 돌리듯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하며 잘 비벼줍니다. 


양손으로 비비니 더 맛있게 잘 비벼진 비빔국수를 넙적한 그릇에 무심하게 올려봅니다.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리고, 비빔국수에 빼놓으면 정말 서운할지도 모르는 삶은 계란을 반으로 잘라 국수에 살짝 눌러주듯 균형을 잡아서 돌로 된 소원탑마냥 조심히 올려줍니다. 양념 국수에 김을 부셔서 먹거나 싸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고랑이는 본인이 먹을 김 한팩을 이미 준비해서 젓가락과 함께 식탁에 올려 상을 준비해둡니다.


집 뒤편 창가의 햇살 좋은 풍경


금세 뚝딱해서 뚝딱 후루룩 먹은 비빔국수에 입에 남은 매콤 새콤달콤함을 잠시 머금어 봅니다. 오늘은 해가 좋아 창문을 열고 나와 햇볕에 뜨근하게 잘 데워진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고, 뒤편 우편함까지 약 스무 보쯤을 햇살을 등진 채 걸어가 봅니다. 빈 우편함을 확인하고는 다시 스무 보쯤 천천히 집으로 걸어 들어와 기지개를 쫙 켰다가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일광욕 중인 저희 집 고양이 맥주와 소주의 모습을 잠시 지켜봅니다. 이윽고 점심 휴식을 위해 맞춰두었던 알람이 울립니다. 오랜만에 점심 내내 즐긴 매콤 새콤함을 잠시 뒤로한 채, 남은 업무를 다시 시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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