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나비,루 서원 이야기(2)
몇 달 전에 몇몇 지인들과 함께 경상북도 안동의 병산서원(屛山書院)을 갔었다. 함께 한 이들 중에 건축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몇 분 있어서 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조선 유교 문화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가 서원인데, 병산서원은 지금까지 남겨진 서원 중에 가장 탁월한 건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 만대루(晩對樓)라는 멋진 누각이 있다. 서원 안쪽에서 만대루를 바라보면 일곱 개의 격자 틀로 강 건너편에 있는 병산이라는 산을 감상하게 된다. 사실 병산은 기세가 강하여 감상하기가 쉽지 않은데 만대루라는 우아한 누각을 통해서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처럼 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은 종종 자연을 보면서 회피하거나 정복할 대상으로밖에는 보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훌륭한 건축물들은 그런 자연을 인간에게 부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고 소중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 내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이제 조선의 서원은 이제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건물을 가능하게 했던 정신이 더는 계승되고 있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서원이 감당했던 기능이 우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요청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병산서원을 세웠던 유성룡의 시대에도 그랬듯이 오늘 날도 똑같다. 나라도 개인도 시끄럽고 혼란스러우며 앞길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사실 인류의 어느 시대가 살기에 팍팍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서원 안에서 행해졌던 일은 읽기와 읽은 것을 해석하는 일의 반복이다. 왕과 중앙 정치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현실과 다른 새로운 것을 옛 책을 탐닉하면서 꿈꾸었으리라. 그런 차원에서 후에 쇄국정책으로 유명한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폐쇄시키는 령을 내렸던 역설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물론 병산서원은 그때도 훼손되지 않고 명성을 유지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읽기는 무서운 일이다. 세계가 있는 그대로 고착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방향이 없이 머물러 있는 세계는 그 자체로 지옥이다. 허무와 권태의 늪이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책들은 그러한 지옥을 깨부순다. 누군가가 충실하게 읽기로 하면.
비유하자면 우리는 서점을 병산서원으로, 그 안에서 읽는 책은 만대루로 기능할 것을 꿈꾼다. 서원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를 경험하듯이 서점에 들어서는 이들은 그저 그런 매일 멍하게 지나던 골목이 아닌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경험한다. 책을 읽고 함께 해석할 때,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하나의 기둥을 형성하고 지붕을 형성하여, 이 세계를 경이롭게 바라보게 되는 하나의 창을 만들어 낸다.
이 세계는 병산과도 같이 무시무시하고, 예측되지 않고, 헤아리기 어려워서 두렵다. 그러나 읽기와 해석하기라는 건축물로 이 세계를 바라보면 이 세계가 얼마나 경이롭고, 복된지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을 제대로 감상하게 될 것이다.
우리 나비,루 서원은 그렇게 공간의 구조를 새롭게 세워가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이곳에 모이는 이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풍경의 일부로 작동할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읽고 내는 해석의 소리 하나하나가 대안적인 세계로 가는 사닥다리, 계단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인생의 풍파 속에 고단하여 안쓰럽게 쉼을 청하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을 꿈꾸게 하는 통로가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