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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윤씨 Mar 12. 2020

나비, 나루 그리고 나비루

작은 책방 나비, 루 서원 이야기(3)


세 번째 이야기, '함께 꾸리는 일의 수고와 즐거움'(1)

 





원래는 지인 몇몇이 모여 놀 수 있는 아지트를 꾸리고 싶었다. 뭐, 모든 남자들의 꿈이 아니던가. 모여서 같이 음악도 듣고, 축구경기도 보고, 게임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치맥도 하고.



장난 삼아 친구 두 놈하고 동네 부동산에 가보았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매물이 많아서 놀랬다. 옥탑도 가보고 1층엔 카센터가 있는 건물 4층의 빈 사무실도 가보고. 여럿이 돈 좀 모으면 재미있는 공간을 꾸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일 마음에 드는 장소는 1층에 있던 어떤 자그마한 카페였다. 권리금을 고려하지 않아서 엄청 싸다고 잠시 착각했던.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친구 1 : 기왕 장소를 꾸민다면 우리끼리만 노는 폐쇄적인 공간보다 여러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카페 같은 거 해보면 어때? 차를 파는 게 목적이 아닌 사람을 만나 수다도 떨고, 같이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말이야.


다른 친구가 말했다.


친구 2 : 어, 사실 나 로망이 하나 있어.


나 : 뭔데?


친구 2 : 나중에 돈 좀 모이면 독립서점하려고. 한 3년 뒤를 목표로 돈 모으는 중.


다 같이 : 그걸 뭐 나중에 해? 지금 당장 해보자. 우리 다 책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잖아.


친구 2 : 어 진짜? 나는 그럼 완전 좋지!


: 그럼 정말 추진한다! ㅋ



돌이켜 생각해보니 무더운 초여름날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던, 커피보다 탈지우유 향나는 아이스크림이 훨씬 맛있던 그 카페에서 남자 셋이 앉아서 다 같이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그런 이야기를 쉽게 내뱉었던 건 큰 실수였다.









얼마 뒤에 외국에서 10년 정도 살다가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급작스레 신변을 정리하고 들어온 친구를 만났다. 보자마자 말했다. 조만간 친구들하고 독립서점 같은 거 해보려고. 그 친구의 눈빛이 빛났다. 나도 할래. 오 좋아, 여럿이 하면 더 좋지. 설상가상이었다. 이젠 물러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모이면 허황된 이야기를 즐긴다. 실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 철학, 문화, 세계정세 등등. 쓸데없거나 무모한 기획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남성이 여성보다 기대수명이 짧은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무모한 일을 이야기하는 걸로 끝내기는 하는데, 아주 가끔 실행에 옮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면 무모하고 위험한 남자들의 여러 행동을 볼 수 있다. 아, 그런데 나는 남자들의 그런 면이 역사를 발전시켰다고 굳게 믿는다. 아님 말고.)



http://blog.naver.com/auntie77306/221438386255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직업이 제각각인 남자 다섯 사람 여자 두 사람이 함께 서점을 꾸리기로 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여자 사람 두 분이 껴서. 우리 같은 남자들은 옆에서 브레이크 걸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한적한 골목이어서 좋다. 종종 이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는 차들이 있기는 하지만.



잠실 쪽이 좋다고 해서 지하철 잠실새내역과 삼전역 근처를 뒤지다가 몇 주만에 드디어 좋은 곳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옆골목은 각종 상가가 들어선 곳인데, 여기는 주거용 빌라들이 들어서있는 골목이었다. 바로 옆에 놀이터도 있고, 거리도 조용해서 좋았다. 주차도 전용으로 2대나 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빌라 사이에 있는 인테리어 사무실이었다. 옆은 지금도 성황리에 운영 중인 동네 미용실.



이전에 이곳을 쓰던 이들은 인테리어 일을 하는 분들이었는데 십 년 정도 계셨다고 한다. 조금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잘 청소하면 될 것 같았다. 11월 초에 계약하고 11월 중순부터 슬슬 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뭐 어떻게든 정리하면 서점이 되겠지.




카페에서 냅킨에 그린 도면. 원래 위대한 기업은 다 이렇게 시작한다고.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인테리어 도면





처음에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는 이곳에서 멋진 모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정말 착각이었다.   




애초에 세웠던 야심 찬 계획. 시간이 지나며 이 계획은 터무니없는 것임이 밝혀졌다.




보통 인테리어를 할 때 목적과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의 공간을 나무와 흰색의 색감을 주로 사용하여 거실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걸 목적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적게 쓸 것.


문제는 우리 중 누구도 인테리어 관련 일은 고사하고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회사원, 대학교직원,  주부, 외국에서 공부하고 사업하다가 이제 막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실정에 어두운(?) 커플 등등.


그래도 막, 그냥, 무턱대고, 어떻게 하면 되겠지, 이런 마음으로 했다.


결론은 하면 되기는 된다. 생각처럼 잘 안 돼서 그렇지.      







초배지 제거에는 왕도가 없다. 물 뿌리고 무작정 긁어내는 길 밖에는.




일단 초반에 가장 힘들었던 일은 전에 사용했던 사람들이 붙여 놓았던 벽지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겉장은 쉽게 떼어졌다. 그러나 초배지(콘크리트 벽면에 다른 벽지를 바르기 전에 기초 작업으로 붙이는 얇은 벽지)를 제거하는 작업은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주변에 물어보니 그 작업은 별다른 기술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일일이 사람이 붙어서 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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